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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편 Jan 02. 2021

시놉시스는 당신이 만드는 길이다

당신이 간과하는 사소한 것들

창작을 하면 으레 시놉시스는 기본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의외로 시놉시스를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말 기본적인 설정과 주요 인물들, 좀 더 보태자면 키워드 몇 개 써 놓는 경우가 많다.

굳이 내가 이런 서두를 던진 이유를 누군가는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시놉시스의 중요성'이라니, 이 얼마나 뻔하고 진부한 주제인가.

그리고 혹자는 이미 반박할 말도 생각했을 것이다.


"전 즉흥적으로 써야 잘 써요."


일필휘지라, 좋다.

감히 창작의 방식에 대해 편집자가 토를 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문제는 당신이 그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쓸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편집자인 나는 매거진의 첫 글에서도 말했듯이 글의 경제성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경제성에는 '글 쓰다 헤매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것 역시 포함된다.

헤매는 게 뭐냐고?


떡밥 회수 불가, 캐릭터 붕괴, 개연성 없는 반전, 산으로 가다 못해 우주로 가는 결말 등등.


글의 시작이, 소위 말하는 '지름작'일 순 있다.

누군가는 떠오르는 게 없어 답답해하는데 자신에게는 그 영감이 떡하니 왔다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정말 작가에겐 그 영감이 귀하디귀할 것이다.


그런데 당신에게 그 영감이 머무르는 시간은 영원하지가 않다.


생각이 났다면 자신이 앞으로 나아갈 길 정도는 정리하는 것이, 자신의 영감에도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

귀한 자식인데 손에 보이는 대로 옷을 아무렇게나 입혀서 외출시킬 생각인가?

그리고 목적지 없이 헤매게 둘 것인가?


그럼 이제 또 당신은 내게 물을 것이다.


"도중에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어떡해요?"


난 그럼 당신에게 몇 가지를 물을 것이다. 


"나중에 생긴 그 아이디어를 꼭 넣어야 하나요? 그 아이디어가 더 좋다는 확신은요?"

"더 좋은 아이디어가 결국 안 나오고 생각이 막히면 그땐 뭘 쓸 건가요?"


나중에 나온 아이디어는 그때 이미 진행 중인 원고에 맞춰 요리를 해야 한다.

이미 진행 중인 작품이 나중에 나온 아이디어보다 선순위인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고 그 논리로 당연하게도, 지금 원고와 아주 따로 놀아 섞일 수 없는 아이디어는 과감하게 폐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여기에 대한 잔소리는 별개로 또 다룰 예정이다).

왜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분'을 기다리며 당장 쓰는 원고의 완성도를 낮추려 하는 것일까.


그리고 당신의 이런 무성의함(혹은 무신경함)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데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당장 출간 계약을 안 했더라도 작가 명함을 가지고자 한다면 당신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책을 출간하려 할 것이다.

그게 투고의 형태든, 출판사의 스카우트든, 기타 다른 형태든 상관없다.

간혹 시놉시스 없는 작품을 받아볼 때가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상당히 편집자에게도 골칫거리다.


출간 작업을 해야 하는데(혹은 심사를 해야 하는데, 피드백을 줘야 하는데 등등), 편집자가 전체 설정이나 내용을 모른다고 치자.


대뜸 작가가 이건 '반전을 위한 떡밥이에요' 한다거나 '실은 결말 안 정해서 최대한 여러 여지를 주려고요' 한다거나 '일단은 이게 재밌어서 썼는데 이다음부터는 고민이에요' 한다거나 했을 때 편집자는 할 말이 없어진다.

'어쩜 작가로서 저런 무책임한...!' 이런 게 아니다.

'그럼 난 뭘 충고하고 봐줘야 하지?' 이게 문제가 된다는 얘기다.


당신이 차를 운전해 내비게이션을 켰다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당연히 시작 지점과 도작 지점을 내비게이션에 찍게 될 것이다.

중간에 주유소를 들러야 한다면 경유지를 검색할 것이고, 갑자기 커피가 마시고 싶다면 카페를 들렀다 다시 내비게이션을 찍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목적지는 달라지지 않는다.


편집자는 당신의 내비게이션이다.

A루트보단 B루트가 낫겠다거나, 당장엔 커피보다 주유가 급하니까 주유를 선순위로 놓고 경로를 짜자고 한다거나 하는 등의 제안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당신이 애초에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모른다면 내비게이션 역시도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심지어 편집자는 보통 복수의 작가를 상대로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다.

뭔 소리냐 하면, 당신이 헤매면서 부연 설명하는 걸 하나하나 다 들어줄 시간이 없다는 얘기다.

편집자는 계속 당신에게 물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당장 뭘 쓰실 건데요?"


결과물이 없으면 편집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당장 쓰지 않은 원고의 내용으로 상의를 하려면 최소한 잘 짜인 시놉시스라도 제공해야 편집자는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아무것도 손에 쥐여주는 게 없다면, 그건 그거대로 편집자 입장에서 땡큐일 수도 있다.

바쁜 시간을 핑계로 그냥 '교정자'로서의 역할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원고 전체를 파악할 필요가 없는 교정자의 입장이라면, 오천 자 원고 오탈자 교정은 30분이면 족하다.

머리 굴릴 필요도 없고, 그냥 기계적으로 글자만 고치면 되는 것이다.

정말 그 정도로 업무량과 성의 면에서 편집과 교정은 확실한 차이가 난다.


정리하자면, 시놉시스는 작가 자신뿐만 아니라 편집자에게도 가이드 역할을 제공한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 적어도 출간 생각까지 하고 있는 작가라면 시놉시스에 좀 더 심혈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시놉시스 쓰는 게 너무 어렵다며 포기한다면 당신의 편집자가 어느새 교정자로 돌변해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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