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세상 돈 세상
벌써 골든타임이 지났다
한국 사회는 저출산 문제를 심각한 국가적 위기로 인식하고 있으며, 다수 국민이 그 심각성에 공감한다. 이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주요 원인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수렴된다. 첫째, 경제적 부담과 소득 양극화다. 주거, 양육, 교육비 등 높은 생애 주기 비용은 출산을 기피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한다. 둘째, 자녀 양육 및 교육에 대한 부담감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적 측면을 넘어 양육의 질, 과도한 사교육 경쟁 등 비경제적 스트레스 요인을 포함한다. 이 외에도 불안정한 고용 시장, 여성의 경력 단절을 야기하는 경직된 기업 문화, 일-생활 균형의 어려움, 그리고 변화된 사회 가치관(만혼,비혼 증가, 개인주의 확산) 등이 복합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약 380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투입했으나, 출산율은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는 정책이 문제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단순 현금 지원 위주의 정책은 높은 주거비, 불안정한 고용, 성 불평등적 사회 문화 등 복합적인 사회 구조적 압력을 상쇄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또한, 정책의 파편성, 부처 간 시너지 부족, 단기적 성과주의도 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회 전반의 인식과 문화 변화를 유도하는 데 실패한 점도 중요한 한계로 지적된다.
국내외 인구학자 및 국제기구들은 한국이 저출산 문제 해결의 '골든 타임'을 이미 경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이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 장기화되면서 가임기 여성 인구 감소 등 인구 구조의 불가역적 변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막대한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미미한 정책 효과는 이러한 진단에 무게를 더한다. 따라서 현재의 정책적 대응은 단순히 출산율 반등을 넘어, 인구 감소가 가져올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적응 및 충격 완화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시점이라는 함의를 갖는다.
동아시아 모든 나라가 겪고 있는 베이비붐의 명과 암
20세기 후반에 걸쳐 동아시아 각국은 모두 짧은 기간에 출생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베이비붐(baby boom) 현상을 겪었다. 중국은 대약진운동이 중단된 1960년부터 산아제한에 착수한 1975년까지 약 4억명이 태어났다. 일본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1947~1974년에 베이비붐이 일어났다. 그리고 한국은 한국전쟁이 끝난 후 1955년부터 시작되어 1974년까지 베이비붐 시대였다고 본다.
동아시아에서 베이비붐은 산업화와 경제 성장에 큰 역할을 했지만, 그 다음에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초래했다. 베이비붐 세대는 대량 노동력으로 빠른 산업화, 도시화, 교육투자, 소비시장 확대 등 이 지역에서 경제 도약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후 출산율이 급락하고 인구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사회보장 부담이 증가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인해 경제 성장 둔화, 부동산·금융시장 불안, 세대 갈등, 노인빈곤 등 복합적인 사회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우리가 뉴스에서 자주 보는 베이비붐이나 그에 따른 ‘인구 불이익(population onus)’ 현상이 동아시아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베이비붐 현상이 동아시아나 또 다른 특정 지역에 국한된 특유의 현상은 아니었다.
인구 변동의 역사적 물결
인류의 역사는 인구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폴 모랜드(Paul Morland)가 그의 저서 'The Human Tide'에서 정리했듯, 국가는 보편적으로 '고출산-고사망'의 전통 사회에서 시작하여 사망률이 먼저 하락하는 '인구 폭발' 시기를 거친다. 이후 도시화와 교육 수준 향상으로 출산율이 감소하며 '안정 및 고령화' 단계에 진입하고, 결국 출산율이 대체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인구 감소' 국면을 맞이한다. 이는 특정 국가의 특수한 현상이 아닌, 선진국들이 공통으로 겪어온 거시적 흐름이다.
이러한 4단계 변화를 앞으로 논리 전개를 위하여 7단계의 순환 주기로 재구성¹해보자. 그리고 선진국의 역사적 경험을 이에 맞추어 살펴보기로 한다. 이로부터 한국이 직면한 심각한 인구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다. 나아가 위기 극복을 위한 해법도 모색하고자 한다.
인구 구조 변화는 다음과 같은 7단계의 순환적 흐름으로 옮겨 간다.
전통적 인구균형: 높은 출생률과 높은 사망률이 상쇄되어 인구가 장기적으로 정체되는 농경 사회에서 인구균형이 유지된다.
인구도약/폭발: 의학과 위생의 발달로 사망률이 급감하지만, 출생률은 과거 수준을 유지함으로써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인구압력: 급증한 인구로 인해 자원, 공간, 고용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긴장과 갈등이 심화된다.
소극적 인구균형: 출생률마저 점진적으로 감소하여 인구 성장세가 둔화되고 안정을 찾는다.
인구둔화: 저출산과 고령화가 본격화되며 인구가 순감소세로 전환된다.
인구충격: 과소 인구와 초고령화로 인구문제가 사회 시스템(연금, 복지), 경제, 나아가 국가의 지속 가능성에 심각한 위협으로 등장한다.
새로운 인구균형 또는 인구위기: 인구충격에 대응하는 국가 정책과 사회 시스템의 적응 여부에 따라 새로운 안정 상태를 찾을 기회가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더 큰 위기에 직면한다. 이는 사회ㆍ경제의 붕괴 또는 혁명이나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전통적 선진국의 인구변동 경험
역사적으로 서유럽, 미국, 일본 등 전통적 선진국들은 모두 이와 유사한 경로를 밟았다.
서유럽은 18~19세기 산업혁명과 의학 발전에 따라 '인구 도약'을 경험했고, 20세기 초 도시화 과정에서 '인구 압력'에 직면했다. 이후 출산율이 안정되며 '인구 균형'을 찾았으나, 20세기 후반부터는 예외 없이 '인구 둔화'와 '인구 충격'의 단계에 진입했다. 이에 대응하여 적극적 이민정책을 펴 ‘다문화 사회’를 구축하였지만, 인종ㆍ종교 갈등 만연 등 전환기 진통을 겪고 있는 중이다.
미국은 인구의 변동을 외부로부터 이민 유입을 조절함으로써 적응해 온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그다지 큰 부작용 없이 ‘다인종 사회’로 변모해왔다. 그럼에도 국토가 너무 넓어 각 주별로 인구 불균형이 점점 심해지고 있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들의 대응 방식은 '새로운 균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서유럽과 미국은 적극적인 이민 정책을 통해 노동력을 확보하고 다인종·다문화 사회로의 전환을 택했다.
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이민에 보수적이었던 일본은 얼마 전부터 로봇·AI와 같은 자동화 기술 도입을 시도하고 외국인 노동자 확대를 병행함으로써 인구충격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이 너무 늦어 새로운 균형으로 가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한국의 인구 위기: 진단과 해법
현재 한국은 '인구 둔화'를 넘어 '인구 충격' 단계에 깊숙이 진입한 상태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는 생산력 저하와 내수 수요 위축이라는 두 가지 치명적인 부작용를 낳고 있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총인구의 감소와 소비 성향이 낮은 고령층의 증가는 내수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다. 일부 이론가들이 일부 베이비붐세대가 ‘액티브시니어(active senior)’라서 경제 쇠퇴를 보충할 수 있다고 보고 있지만, 그 잠재력을 과대 평가한 면²이 있다.
일반적으로 인구위기를 해결하는 길은 다음 세 가지의 길이 있을 수 있다.
출산력 제고: 이는 가장 근본적이고 이상적인 해법이다. 그러나 수십 년간의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산율 반등은 요원하며, 설사 성공하더라도 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최소 한 세대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이는 장기적 목표로 추진하되, 당면한 위기의 직접적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
기술 혁신 (AI, 로봇): 생산력 저하 문제에 대응하는 유력한 보완책이다. 자동화와 효율화를 통해 인력 감소분을 일부 상쇄할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모든 노동을 대체할 수는 없으며, 특히 제조업, 건설, 서비스업 등 현장 인력이 필수적인 분야의 공백을 단기간에 메우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민 확대: 이는 생산력 저하와 내수 위축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직접적인 방안이다. 외국인 이민자는 즉각적인 노동력 공백을 메우는 생산요소이자, 국내에서 생활하고 소비하면서 내수 시장을 떠받치는 소비자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다.
필연으로서의 다인종ㆍ다문화 사회
결론적으로 한국의 인구 위기 대응은 출산력 제고라는 장기 과제와 함께, 기술 혁신과 이민 확대라는 두 개의 단기·중기적 해법을 병행하는 전략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생산력과 내수를 동시에 보충해야 하는 시급성을 고려할 때, 이민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정책 수단이 된다.
대규모 이민 유입은 필연적으로 한국 사회의 인종적·문화적 구성을 근본적으로 바꾸게 될 것이다. 이미 한국의 ‘이주배경인구’ 비율은 '다문화 사회'의 기준점인 5%(OECD 정의)에 근접하고 있으며, 2040년에는 7.8%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³된다. 생산인구 감소를 보충하기 위해 이민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다인종 사회로의 전환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외국인이 많아지는 현상을 넘어, 사회 시스템, 정책, 문화,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를 요구하는 구조적 전환이다.
새로운 인구 균형을 향한 여정
한국이 겪을 인구충격은 고통스럽지만, 선진국들이 먼저 걸어간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 위기 극복의 열쇠는 출산율 회복이라는 단기에 실현될 수 없는 이상(理想)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이민’이라는 현실적 대안⁴을 과감히 수용하는 데 있다. 특히 이민 확대는 단기적인 노동력 보충을 넘어, 국가 경제의 축소를 막는 핵심적인 전략 수단이다.
따라서 한국의 다인종ㆍ다문화 사회로의 이행은 더 이상 가능성의 영역이 아닌, 다가올 미래의 필연적 선택지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관리하고, 갈등을 최소화하며, 모두를 위해 앞으로 '새로운 인구균형'을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지혜를 모으는 것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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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폴 모랜드도 인구 변화 단계를 세부적으로 7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음을 'The Human Tide'의 Part 2~Part 3에서 발견할 수 있다.
(2) 참고로 일본 노년층들은 자녀들의 은퇴 후를 걱정해 소비를 줄이고, 자신의 기대수명이 늘어나 금융자산을 길게 보존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겨레, ‘일본 80대 씀씀이 더 줄인다…’, 2024.07.29.)
(3) 통계청, ‘내ㆍ외국인 인구추계: 2022~2024년’, 2024.04.11.
(4) 물론 언어·문화적 동질성 때문에 중국ㆍ러시아의 재외동포 유입이나 미국ㆍ일본의 재외동포 역이민을 좀 더 선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여야 하며, 상대국가도 인구문제를 겪고 있어 외교적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 북한의 인구 활용은 '통일'이라는 극도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깔려 있으며, 실현된다 하더라도 그 앞에 막대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통합비용이라는 거대한 숙제가 놓여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