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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보는 거울: 과거 그리고 미래

오래된 미래, 10년 후 세계사

by 하얀자작

필자가 읽은 책 중에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와 구정은의 『10년 후 세계사, 두번째 미래』는 묘하게 두 책의 내용이 연결되는 것 같고, 나로 하여금 한 방향을 쳐다보도록 만든다.

두 저자 사이에 나이 차가 있고, 지리적 거리도 있으며 만난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나마 두 책의 출판 년도가 24년 차이가 나니, 세상에 먼저 나온 책으로부터 모종의 힌트가 전해졌는지 알 수 없다.

『오래된 미래』는 인도 히말라야 라다크 지역의 전통적 삶을 통해 현대 문명의 문제점을 되짚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가치를 제시한다. 이 책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급자족과 공동체 중심의 삶을 살아온 라다크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탐구하며, 급격한 서구식 개발과 현대화가 이들의 지속 가능하고 행복한 공동체를 어떻게 해체시켰는지를 지적한다.

한편 『10년 후 세계사, 두번째 미래』¹는 미래를 추상적으로 예측하기보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글로벌 이슈들을 세밀하게 분석하며 과거와 미래의 연결고리를 탐구한다. 이 책은 사회 변화의 흐름을 '기계와 일', '사람과 지구', '자본과 정치'라는 세 가지 큰 축으로 나누어 분석하며, 현재의 선택과 행동이 미래의 역사를 결정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두 권의 책은 시공간을 초월해 인류가 직면한 근본적인 질문, 즉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떤 미래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한 권은 특정 전통 사회의 역사적 변화를 통해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 다른 한 권은 현재의 글로벌 동향을 분석하여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할 것을 촉구한다. 이러한 역사-인류학적 연구와 현대 사회경제 분석의 병치(竝置)는 사회의 진화와 그 도전 과제를 탐구하는 강력한 관점을 형성한다. 이는 복잡한 미래를 이해하는 데 과거의 패턴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이 두 책이 제시하는 과거의 지혜, 현재의 경고, 그리고 미래를 위한 우리의 책임 있는 행동 과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실천적 방향을 생각해보자.


『오래된 미래』: 라다크의 지혜와 잃어버린 균형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히말라야의 작은 지역 라다크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급자족했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라다크 사람들이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서도 적은 노력으로 행복하고 여유로운 삶을 영위했다고 묘사한다. 이들은 농사를 가족 단위로 필요한 만큼만 짓고, 부족끼리 서로 돕고 농산물을 나누며, 하루 일과도 짧았다. 특히 '스트레스'라는 개념조차 없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안정된 공동체를 유지했다. 이러한 '스트레스 없는 삶'은 단순히 흥미로운 문화적 특징을 넘어, 전통 사회가 ‘생산성과 물질적 축적’보다 ‘행복과 공동체적 조화’를 우선시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인류가 현대적 경제 체제를 채택한 것이 정신 건강과 공동체 결속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시사한다.
1970년대 말부터 라다크에 현대 문명과 글로벌 경제가 유입되면서 전통적 삶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했다. 인구가 급증하고 공동체의 결속력이 약화되었으며, 젊은이들은 서구식 물질문명에 매료되어 공동체 생활을 등지고 경쟁과 개인주의에 내몰렸다. 그 결과 삶의 만족도와 정신적 안정이 흔들리게 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개발'과 '진보'라는 이름으로 행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가치를 파괴하고 공동체의 자립성을 앗아 갔음을 지적한다. 이는 다른 지역의 전통적 공동체도 역시 착취적인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면서 한편으로 전통적 가치가 체계적으로 약화되는 전 세계적인 패턴을 보여준다. 바로 근대 이후 광범위하게 팽창한 신식민주의적 경제 구조와 그것이 다양한 지역 문화 및 생태계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축소판이다.
라다크 사람들의 삶이 단순히 과거 회고적 이상향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추구해야 할 지속 가능하고 인간적인 미래의 모델이라고 호지는 주장한다. 기술 발전이 인간을 더 바쁘고 불행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는 점에서, 라다크 삶의 여유와 공동체 의식이 갖는 의미를 강조한다.

(표지) 오래된 미래.jpg


『10년 후 세계사』: 현재의 문제와 미래의 경고


구정은의 『10년 후 세계사』는 미래를 추상적으로 예측하기보다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글로벌 이슈들을 세밀하게 분석하며 과거와 미래의 연결고리를 탐구한다. 이 책은 사회 변화의 흐름을 '기계와 일', '사람과 지구', '자본과 정치'라는 세 가지 큰 축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일자리와 노동의 변화: 플랫폼 노동,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등 기술 혁신으로 인해 전통적 일자리가 무너지고 노동 환경이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다룬다. 특히 ‘제로아워’ ²(최소 확보 근무시간 없음)'와 호출노동과 같이 일의 본질적 변화가 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심층적으로 살핀다. 기술 발전이 효율성과 혁신을 약속하면서도 노동 시장의 불안정성과 불평등을 동시에 심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기술적 '진보'와 사회적 형평성 사이의 엇갈린 긴장을 초래하며, 기술이 사회적 거버넌스 없이는 본질적으로 이롭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후 위기와 사회 문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확산, 유전자 편집, 기후 변화, 인구 절벽, 지방 소멸 등 인간과 지구가 직면할 미래의 재난과 도전 과제들을 다룬다. 이러한 글로벌 환경 변화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당면한 과제임을 강조한다.
불평등과 민주주의의 위기: 빈부 격차, 사회적 분열, 포퓰리즘 현상, 그리고 민주주의가 자본과 미디어 권력에 의해 잠식되는 현상에 주목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치, 경제, 미디어계의 권력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10년 후의 변화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대신,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과 행동을 하는지가 미래의 역사를 결정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미래를 수동적인 예측의 대상에서 능동적인 행위의 대상으로 전환시킨다. 미래가 기술 발전이나 기후 변화와 같은 막을 수 없는 힘에 따라 결정되는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집단적인 방향 결정에 의해 형성되는 유연한 구성물이라는 뜻이다.

(표지) 10년 후 세계사.jpg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통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의 이야기가 과거의 역사가 어떻게 오늘의 사회 문제를 만들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과거의 통찰은 구정은의 『10년 후 세계사』가 경고하는 미래 예측과 맞물리며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인류가 현재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게을리하면 기후 위기, 사회 분열, 기술 소외 등 심각한 미래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라다크의 과거가 현대의 문제를 만들었듯이, 우리의 무관심과 안일한 선택은 미래 세대에게 더 큰 짐을 안길 수 있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지혜로운 접점은 '지속 가능한 현재'에서 찾아야 한다. 이 두 책이 서로 다른 접근 방식에도 불구하고 '지속 가능한 현재'라는 개념으로 수렴한다는 점은, 이것이 단순히 이론적인 이상이 아니라 역사적 관찰과 미래 예측 모두에서 도출된 긴급하고 실용적인 명령임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서 '지속 가능성’은 좁은 의미의 환경문제적 차원이 아니라. 경제, 사회, 심리적 차원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사회적 패러다임으로 확장된 ‘지속 가능성’이다.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길


세상 모든 일이 과거와 달리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인류와 자연 사이의 균형은 이미 깨졌다. 지구 기후의 극심한 변화와 생물의 멸종은 이제 대단한 소식도 아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와 첨단 기술이 결합하여 지역간, 국가간, 기업간, 인간 사이의 불평등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유럽 등 이른 바 선진국 세계는 물론 개발도상국들에서도 구성원 간 갈등이 극심해지고 그 결과 국가나 집단 안에서 제 지지세력을 결집하여 ‘스트롱맨’이 권력을 차지하는 게 다반사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과거가 현재의 거울”이라는 교훈을 무시하면 필연적으로 과거의 실수를 더 크고 파괴적인 규모로 반복하게 될 것이다. 미래를 향한 현명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이는 후손들이 겪을 문제를 최소화하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장기적인 지구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방향을 수정해야 할 독특한 도덕적 의무를 가진 세대인 것이다.
우리가 설계하고 만들어 갈 제대로 방향 잡힌 미래 모습을 상정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에 기초하여 오늘날 우리가 지향할 대상과 행동을 제대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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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정은과 공저자들은 2015년, 2021년 그리고 2025년 세 차례에 걸쳐 같은 제목의 책을 개정 출판하였는데, 그중 2021년 판(부제: 두번째 미래)이 이 책들의 중추로 보인다.
(2) 제로아워 계약은 최저 근무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계약 형태를 뜻한다. 흔히 플랫폼 노동자들의 무분별한 착취와 연관되어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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