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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높은 수도권 집값, 하락 안정 어렵다

부동산 시평

by 하얀자작

이재명 정부가 6.27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에 이어 9.7 ‘주택공급 확대방안’을 내놓았다. 먼저 6.27 대책은 가계부채 관리라는 명분 아래,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수도권 기준 6억 원으로 일괄 제한하고, 소유권 이전과 동시에 시작하는 전세에 대한 대출을 금지하는 등 주택수요 규제로 평가받는다. 기존처럼 선별적인 규제 방식을 버리고, 소득이나 주택 가격을 따지지 않고 일괄 적용하는 초고강도 규제를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라 요즘 수도권에서 집값이 일시적으로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어진 9.7 대책은 135만호 주택 공급(착공 기준) 확대와 LH 조성 토지에 직접 공공주택 시행이라는 적극적 공급대책을 들고 나왔다. LH가 직접 시행사가 되어 2030년까지 수도권에 매년 27만 호, 총 135만 호를 신규 공급한다. 정부 나름대로 공급 신호를 보내 당장 눈 앞에 몰려 있는 주택 수요를 심리적으로 약화시키고, 시간적으로 분산시켜서 대응해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소득으로 감당 안 되는 너무 높은 아파트 가격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단순한 주기적 과열을 넘어 소득과 주택가격 간의 구조적 연결이 단절된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다.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핵심 지표인 주택구입부담지수(HAI) ¹와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 ²이 이러한 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HAI는 소득의 25%를 주택 대출 원리금 상환에 쓰일 때를 100으로 정하는데, 이 수준을 그 가구의 주택담보대출 상환능력의 한계선으로 삼는다. ‘HAI=100’은, 이자율의 변동성을 감안하여, 국제적으로 PIR 5-7배로 치환되며, 이 구간이 가정경제를 저해하지 않는 한계 PIR 수준으로 여겨진다.


서울 등 수도권의 현실은 오래 전부터 이 기준에서 심하게 괴리되어 있다. 서울의 중위 PIR은 꾸준히 8-15배에 머물렀다. ³ 2021년 12월에는 19배라는 경이적인 수치까지 치솟았다. ³

이는 중간소득 가구가 서울의 중간가격 주택을 구매하기 위해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9년을 모아야 한다는 의미로, 평범한 주택의 가격 수준이 가계 소득이라는 펀더멘털과 완전히 단절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전국 평균 PIR은 수도권에 비해 뚜렷하게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비수도권 주택가격이 가계는 물론 지역경제 순환을 해치지는 않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 경제자원의 절반 이상이 집중된 수도권에서 가계가 소득과 자산 대부분을 주택에 묶어두게 만들어, 정상적인 소비나 저축 활동을 위축시키고 실물 경제의 선순환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수도권 안에 한국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며, GDP의 절반이 산출되며 소비의 75% ⁴가 이루어진다. 이런 속에서 한국 가정 경제와 부동산 정책의 과제는 명확하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가계가 주택에 자기들 소득과 자산을 올인(all-in)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소비나 저축 활동을 함으로써 실물경제 순환에 도움이 되는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려면 지나치게 높은 서울 및 수도권의 PIR을 한계 수준 이내로 끌어내려야 한다는 명제로 이어진다.


주택 시장 조절을 위한 험난한 역사


한국 부동산 정책의 역사는 하나의 일관된 역설(paradox)을 보여준다. 주택경기 침체기에 정부가 내놓는 규제 완화와 부양책은 주택 가격을 효과적으로 상승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경기 과열기에 도입된 어떤 규제책도 번번히 가격 안정을 달성하는데 실패했다. IMF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규제 완화는 집값 폭등의 도화선이 되었고, 뒤이어 등장한 종합부동산세 도입 등 고강도 규제도 이미 불붙은 상승세를 억제하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LTV·DTI 규제 완화 등 공격적인 부양책으로 하락 조정 중이던 시장을 재점화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20여 차례가 넘는 고강도 규제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유례없는 폭등으로 정책의 무력함을 증명했으며, 서울에 집중된 규제는 투기 수요를 수도권 외곽 및 지방 광역시로 밀어내는 '풍선효과'를 불러 그 위기를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가격 조정기에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즉시 전방위적 규제 완화를 통해 시장의 '연착륙'을 유도하며 주택가격 하락을 방어하려는 정치적 선호를 명확히 보였다.
한편 역사적으로 한국 주택 시장의 의미 있는 하락 조정은 정부의 의도적인 정책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직 경제 시스템 전체를 강제로 디레버리징(de-leveraging)하는 몇 차례 거대한 외부 충격의 결과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실질 주택 가격을 13% 이상 폭락시켰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약 3년간 서울의 PIR을 11배 이상에서 9배 미만으로 낮추는 의미 있는 변동을 가져왔다. 가장 최근인 2022-2023년의 조정은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에 발맞춘 한국은행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촉발되었으며, 19배까지 치솟았던 서울의 PIR을 불과 1년여 만에 11배 미만으로 급락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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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역사는 정부 정책의 심각한 경기 방어 집착과, 국가경제 운영 상의 도덕적 해이를 드러낸다. 모든 주요 조정기에 정부의 핵심 기조는 시장이 스스로 정상화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연착륙' 또는 '경기 부양'을 목표로 규제 완화를 시행하는 것이었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에게 정부가 결코 큰 폭의 가격 하락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학습 효과를 낳고, 주택 시장에 대한 암묵적인 '정부 보증'을 형성하여 호황기에 과도한 레버리지를 부추겼다.


새 정부의 대책이 효과를 낼 수 있을까?


서두에 언급한 현 정부의 가계부채 억제에 의한 주택수요 관리 대책, 대규모 주택공급계획 발표를 통한 수요 이연 정책은 주택시장 정상화에 별 효용이 없을 것 같다. 즉, 주택가격이 천천히 하락하여 적정 수준에 이르도록 연착륙시키고, 경제적 자원이나 유동성을 실물경제 쪽으로 유도하여 가계소득을 상대적으로 높임으로써 PIR을 한계수준 이하로 끌어내려 국가경제 시스템을 정상화해야 하지만, 국내외 환경이 녹녹치 않다.
우선 대출 억제를 통한 가격 하향 안정 시도는 주택 구매수요를 줄이겠지만 동시에 ‘갈아타기’로 생기는 재고주택 공급도 줄여 새롭게 축소 형성된 ‘유효수급시장’에서 새로운 가격을 결정하게 되는데, ⁵ 시중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가격 하락을 기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수도권 135만 호 공급 계획과 같은 장기 대책은, 발표와 실제 입주까지의 긴 시차로 인해 당장의 시장 불안 심리를 해소하여 수요를 이연시키는데 역부족이다. 또한 과거 경험에 비추어 실현 가능성(정책 이행률)이 높지 않아 공급 불안 해소에는 한계가 있다.


앞으로 거시경제 환경도 좋지 않다. 생산가능인구의 정체 내지 감소, 고령인구의 폭증은 내수와 잠재 성장률에 지속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핵심 제조업의 해외 이전 가속화와 탈세계화 흐름 역시 국내에서 양질의 일자리와 투자 기회를 감소시키고 수출 시장의 확대를 저해할 것이다. 이 같은 장기적이며 구조적인 경제 약화 요인들은 정부가 주택 시장 안정화보다는 경기 부양을 우선시하는 확장적 정책 기조를 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것 같다.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경기 침체 방어가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필연적으로 재정지출 확대와 유동성 공급으로 이어진다. 이는 COVID-19 팬데믹 동안 급증하여 글로벌은 물론 국내적으로 아직 해소되지 못한 과잉 유동성을 더욱 악화시켜 엄청난 ‘자산 버블 붕괴’을 초래할 만한 여건을 만든다.


시장 참가자들이 스스로 경제환경 변화에 대비해야


아직 해소되지 못한 COVID-19 이후 부풀어 오른 자산 버블이 언젠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시나리오가 높은 확률로 예상되고 있다. 관건은 이 순환을 막으려는 헛된 노력이 아니라, 이를 건설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정부는 직접적인 가격 통제 시도를 포기하고, DSR 규제를 일관되게 적용하여 금융 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침체기가 도래했을 때, 건설 및 부동산 부문에 대한 무조건적인 구제금융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대신, 이 시기를 부실 건설사의 구조조정을 유도하고, 비생산적인 부동산 투기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부문으로 자본이 흘러가도록 금융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주택 가격이 가계 소득과 조화를 이루는 수준까지 충분히 하향 조정되도록 허용하는 것만이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경제 활력을 되찾는 길이다.

한편 주택소비자는 주택 구매 때 지나친 대출 의존에서 벗어나 자기 가계의 소득으로 감당 가능한 주택을 선택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구매할 주택을 투기 대상이 아닌 주거의 본질적인 기능에 초점을 맞춰 접근해야 한다. 또한 다가올 경기침체나 자산버블 붕괴에 대비하여 부동산에 집중을 피하고 가능한대로 경기 방어적인 자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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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택구입부담지수(HAI) =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액÷25%)÷가구 소득
(2) 주택가격 대비 소득 배율 (PIR) = 주택가격 ÷ 가구 년 소득
(3) KB부동산 통계 및 KB국민은행 주택(아파트)구입대출 취급 데이터에 기초.
(4) 산업연구원의 ‘수도권ㆍ비수도권 간 발전격차와 정책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신용카드 결제액 중 수도권 비중이 75.6%인데, 대형 전자상거래 업체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 도소매업 매출이 수도권에 편중되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2022.08.02.)

(5) Alfred Marshall의 “유효수요와 유효공급에 의한 시장가격 결정” 시스템이 부동산이나 주식 시장의 가격결정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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