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평
몇 년째 아침 신문을 펼치거나 저녁 뉴스를 켜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숫자들이 있다. "반포 원베일리 평당 2억 시대", "국민평형도 60억 돌파", "'100억 클럽' 초고가 아파트 속출" 등등. 유명 연예인 부부의 부동산 자산이 1,000억 원을 훌쩍 넘고, 또 다른 톱스타는 수백억 원대 빌딩을 매입했다는 소식은 이제 ‘가십(gossip)’을 넘어 경제 뉴스의 한 자리를 차지한다. 미디어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화려한 거래들을 끊임없이 중계하며, 마치 이것이 부동산시장의 심장 박동인 것처럼 포장한다.
이러한 보도들은 대중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지금이라도 아파트 구매 대열에 합류하지 않으면 영원히 뒤처질 것이라는 불안감, 평범한 월급만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부동산을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닌 일확천금의 기회로 여기는 투기심리이다. 미디어가 그려내는 부동산 시장은 언제나 뜨겁고, 가격은 영원히 우상향할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화려한 거래 소식들이 과연 대다수 시민이 체감하는 주택시장의 현실을 반영하는가? 아니면, 특정 의도를 가지고 정교하게 꾸며진 신기루에 불과한가?
보이지 않는 손(?) ¹
언론의 주택 시장 보도가 유독 고가 거래에 집중되는 현상은 단순한 편집 관행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한국 언론의 지배구조에 깊이 뿌리내린 구조적 이해관계, 즉 '건설 자본'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한 편향을 넘어, 언론의 공적 기능을 사적 이익 추구의 도구로 변질시키는 근본적인 이해상충 문제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에 시달리던 언론사들은 생존을 위해 외부 자본 수혈이 절실했는데, 이 틈을 파고든 것이 바로 건설사들이었다. 실례로 호반건설 (서울신문, 전자신문), 중흥건설 (헤럴드경제), 태영건설 (SBS) 등 굴지의 건설사들이 신문사와 방송사의 대주주이며, 그렇지 않은 건설사들도 ‘광고 게재’를 무기로 언론 보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주주의 사업을 홍보하거나, 비판적인 기사를 삭제하고, 심지어는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지방정부를 압박하는 보도를 쏟아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²
건설 자본과 언론의 관계는 단순히 부정적인 기사를 막는 '방패막이' 역할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훨씬 더 적극적인 비즈니스 전략, 즉 '공생적 이윤 창출의 고리'로 작동한다.
이 시스템의 작동 방식은 명확하다. 첫째, 건설사가 소유한 언론사는 부동산 시장이 항상 활황인 것처럼 보이는 기사를 지속적으로 생산한다. '신고가 경신', '역대 최고가'와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통해 시장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킨다. 둘째, 이러한 보도는 잠재적 주택 구매자들에게 '지금 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 이른바 'FOMO 심리’를 자극하여 '패닉 바잉(panic buying)' 현상을 유도한다. 셋째, 이렇게 인위적으로 부양된 수요는 결국 대주주인 건설사가 분양하는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을 높이고, 미분양 리스크를 줄여준다.
분리된 주택 시장: 통계의 진실
언론이 조명하는 화려한 스펙터클 뒤에 가려진 주택 시장의 진짜 모습은 통계 데이터 속에 숨어 있다. 2025년 상반기 서울 아파트 거래 데이터를 분석하면, 언론 보도가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는지 명확히 드러난다.
동 기간에 서울 전체의 아파트 거래 42,339건(계약해제 제외)을 가격대별로 분포를 살펴보면, 가장 많은 거래가 이루어진 구간은 5억 원에서 10억 원 사이로, 전체의 약 35%에 해당하는 14,954건이 이 구간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언론이 주목하는 50억 원 초과 거래는 397건으로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평균 매매가격은 약 13억 2천만 원이지만, 이는 소수의 초고가 거래가 전체 평균을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린 결과다. 대다수의 거래는 평균보다 훨씬 낮은 가격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오른쪽으로 긴 꼬리를 가진 비대칭 분포'의 형태이다.
부동산 뉴스의 단골 소재인 강남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의 아파트 거래 데이터를 보자.
동 기간에 강남구의 총 거래 7,274건 중 가장 빈번한 거래 구간은 15억 원에서 20억 원 사이(1,252건, 약 17%)이며, 평균 가격은 약 24억 5천만 원이다. 하지만 언론은 2025년 상반기 강남 최고가인 160억 원대 거래(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전용 71평)나, 서울 전체 최고가인 290억 원대 거래(성수동1가 아크로서울포레스트 82평)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이는 마치 F1 경주를 중계하면서 그것이 서울 시민의 평균적인 출퇴근 때 운전 모습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통계적 현실은 우리가 '아파트 시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결코 단일한 시장이 아님을 보여준다. 대다수 시민이 자신의 소득과 자산 상황에 맞춰 참여하는 ‘일반적 아파트 거래시장’과, 언론이 집중 조명하는 극소수 자산가들의 ‘초고가 아파트 거래 시장’은 완전히 다른 논리로 움직이는 별개의 세상이다. 서울 전체 거래사례의 1% 이내 또는 강남3구 거래 사례의 10% 이내에 속하는 약 40억 원을 초과하여 매매되는 아파트들이 속하는 시장을 초고가 시장으로 볼 수 있다.
거래금액 5~35억원가량의 일반 시장은, 일상 주변에서 마주치는 웬만한 보통사람이 자기 재산 규모의 부침에 따라 ‘접근 가능한’ 아파트 매매 시장으로 볼 수도 있지만, 초고가 시장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른 바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³가 작동하는 시장이다.
베블런 효과의 영역: 과시를 위한 시장
언론이 집중 조명하는 초고가 주택 시장은 왜 일반적인 시장 원리와 다르게 움직이는가? 그 해답은 베블런 효과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장은 ‘거주’라는 본원적 가치가 아닌, 과시와 차별화라는 사회적 욕망이 지배하는 별개의 영역이다.
베블런 효과란 특정 재화의 가격이 상승할수록 오히려 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소비자가 상품의 사용가치 뿐만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사회적 지위와 부를 함께 소비하기 때문이다. 높은 가격 자체가 그 상품을 소유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위 증명'이 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를수록 소수의 상류층에게는 더욱 매력적인 자기과시의 수단이 된다.
이 특별한 시장에 참여하는 이들은 평범한 시민이 아니다. 1999년생이 63억 원에 달하는 아파트를 전액 현금으로 매수하거나, 1985년생 부부가 110억 원짜리 주택을 현금으로 사들이는 사례들은 이 시장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첨단 기술기업의 지분 매각, 가상화폐 투자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신흥 자산가(young & rich)이거나, 부모로부터 막대한 자산을 편법 증여 받은 이들이다. 비전통적 방식으로 부를 축적한 이 사람들에게 수십억 원짜리 아파트는 자산 포트폴리오의 일부일 뿐이며, 대출 가능 여부는 구매 결정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서울의 최상위 부동산 시장이야말로 베블런 효과가 가장 극적으로 발현되는 무대다. '아크로리버파크', '래미안원베일리'와 같은 소위 '명품 단지'들은 단순한 아파트가 아니라, 그 자체로 성공과 부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이 단지들의 아파트 가격이 '신고가'를 경신했다는 뉴스는 잠재 구매자들에게 구매를 단념시키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그 단지의 희소성과 상징적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명품 보증서'처럼 작용한다.
한편 일반 시장에서 회자되는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선호 현상은 합리적 투자전략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남들과 구별되고 싶은 욕망이 투영된 베블런 소비의 아류(亞流)로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초고가 시장의 베블런 현상은, 앞서 말한 ‘건설자본과 언론’의 시장 조작 또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통하여 일반 시장에 영향을 준다. 대중의 인식 속에 “주택가격은 영원히 우상향하게 되어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면서, 주택시장의 불안정을 증폭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
신기루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국의 주택 시장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건설자본의 이해관계가 투영된 언론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 현실 주택시장은 대다수가 속한 '실수요 시장'과 극소수 자산가들의 '베블런 시장'으로 분리되어 있다. 진정한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주택 소비자가 똑바른 눈으로 시장을 보아야 하고, 정책 당국도 새로운 접근법을 가져야 한다.
정책 당국은 시장이 하나가 아님을 인정하고, 각 시장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즉 주택시장 분리 정책(Segmented Market Policy)를 공식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초고가 시장이 전체 주택 시장에 미치는 왜곡 효과를 차단해야 한다. 초고가 시장의 자유로운 거래나 가격 형성을 용인하되, 세법 상 고급주택 ⁴의 범위를 현실에 맞춰 개정함으로써 초고가 주택의 취득 부담에 관한 조세정의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 밖에도 2009년 이후 바뀌지 않은 재산세의 세율 누진구조를 현실화하여, 일반 주택의 부담을 낮추고 고가 주택일수록 부담을 좀 더 높이는 방향으로 개정하는 등 포괄적인 법령 재정비가 필요하다.
동시에 저소득층이나 청년 세대를 위한 저가의 공공 또는 민간(비영리) 임대주택 보급 확대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 등 실수요자들이 ‘주거 사다리’를 오를 수 있도록 돕는 ‘생애 주기에 맞추는 내 집 마련’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주택 소비자 역시 언론이 만들어내는 불안과 탐욕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비판적인 미디어 해독 능력을 갖춰야 한다. 강남의 100억대 아파트 거래 소식이 내가 사는 동네의 아파트 가격이나 나의 구매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나와는 다른 규칙과 자본이 지배하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니까.
진정한 주택시장의 안정을 위해서, 주택소비자들이 미디어가 만들어낸 신기루에서 벗어나 현실에 입각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성숙한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왜곡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으로 시장을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불안과 박탈감의 굴레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주거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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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래 ‘보이지 않는 손’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시장에서 개인이 행하는 이기적 이익 추구 활동이 의도치 않게 사회 전체의 공익과 효율적인 자원 배분으로 이어진다”는 시장경제의 자율 조정 원리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쓰인 ‘시장 조작’ 또는 ‘가스라이팅’의 의미가 아니다.
(2) 미디어오늘, ‘건설·금융 자본이 언론을 삼키고 있다’, 2022.05.19.
(3)일반적인 상품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량이 줄어든다. 이와 달리 베블런 현상은 상품의 가격이 오르는데도 오히려 수요가 증가하는 비정상적인 소비 현상이다. 소비자가 자신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고가의 상품을 선호하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명품이나 고급 자동차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4) 지방세법 시행령 제28조제1항제4호에 ‘고급주택’의 정의에, 공동주택은 “전용면적 245㎡(복층형의 경우 274㎡)초과하면서 취득 당시의 시가표준액이 9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악용하여, 초고가 주택인 청담동의 PH129, 성수동의 아크로서울포레스트, 한남동의 나인원한남이나 한남더힐 등이 전용면적을 기준보다 0.03~0.07㎡(A4용지 반~1장 크기) 만큼 좁혀서, 고급주택에 대한 지방세 중과대상에서 빠져 있다. 이처럼 실제 이들 아파트의 시가가 수십억~수백억원에 이르는 만큼 이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 (금액 규정을 시가 평가 50억원 이상으로 상향한 뒤, 면적이나 금액 중에서 하나라도 기준에 해당하면 고급주택으로 다루어 취득세를 5배 중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