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건'을 보고와서
울버린 마지막 시리즈 '로건'
울버린을 열정적으로 좋아하진 않지만, '다크 나이트'에 이은 또 하나의 히어로물 명작이 나왔다는 평을 듣고 영화를 봤다.
생각보다 우울했고,
생각보다 잔인했으며,
생각보다 매우 슬펐다.
멋진 액션신이 기반이 되는 마블 특유의 히어로 영화 느낌보다는, 주인공이 제일 많이 두드려 맞는 영화였다. '다크나이트'의 시리즈 배트맨보다 더 두들겨 맞는 주인공이라니.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감정은 답답함보다는 먹먹함이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두들겨 맞으면서도, 묵묵히 자신이 지켜내야 할 어린 아이와 자비에 교수를 끝까지 책임지려는 로건에게서 우리 부모님이 보였기 때문이다.
로건은 돌연변이로 태어나 갖게 된 초능력을 오직 사회 질서를 지키기 위해 써온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협력도 해오고, 개인의 행복보단 더 큰 이념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히 살아온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2029년, 로건과 같은 돌연변이는 척결해야 하는 대상이고, 정보는 되려 이들을 감시하고 억압하려 한다.
나의 부모님은 1970년대 유신시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시대, 1990년대 IMF 등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세대이다. 이 시대들을 꿰뚫는 공통점은 '집단을 위한 희생'이 당연했던 시기라는 점이다. 함께 민주화를 이뤄내야 했고, 민주화를 이뤄내니 경제적 위기가 국가에 닥쳐 이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로 금을 팔며 나라에 돈을 모아줬다. 개인의 행복을 누리기보단 집단과 국가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게 당연했던 시절을 살아오신거다. 그들에게는 늘 '가족'을 위해, '자식'을 위해, '회사'를 위해, '나라'를 위해라는 책임이 주어졌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어떤가. '개인과 취향의 시대'다. 그러면서 그들의 책임감은 어느새 '꼰대의 전유물'이 됐다. 개인이 행복을 주장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었던 이 과정에서 흘린 그들의 피와 땀방울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영화 초반부터 로건은 찰스에게 퉁명하게 굴고, 그를 짐짝 취급한다. 그 이유는 후반에 등장한다. 초능력자 자비에 교수조차도 나이가 들며 치매에 걸리게 된다. 한 시대를 이끈 뛰어난 리더가 말년 치매에 걸려 초라해진 모습을 보는 것이 꽤 낯설었다.
2016년에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는 직전까지 많이 아프셨다. 70대가 되어서도 노래를 배우러 다니고, 매일 산책을 하시며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셨던 외할아버지에게 병마가 찾아온건 참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1년여정도로 외할아버진 꽤 오랜 시간 고생하셨다. 우리 부모님은 일주일에 몇번을 청주-부산을 오가며 외할아버지를 돌봤다. 특히 엄마가 고생을 했는데, 때론 엄마는 체력적 정신적으로 힘듦을 호소하기도 하고, 한숨을 곧잘 내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할아버지를 돌보는 일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다.
우리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 있는 건 적어도 생존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생존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이 시대 기반을 누가 이룩했는가. 그건 결코 대통령 한명의 힘으로도 되지 않고, 특정 엘리트 집단 때문도 아니다. 기꺼이 커다란 목표를 위해 개인의 자아보다 '부모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역할을 다해온 '우리 부모님'들이 이룩한 힘이다.
나부터 이 가치를 외면하고 살아온것은 아니었나. 로건을 보고나니 부모님에 대한 간질간질한 미안함이 찾아왔다. 돌아가는 길에 카톡을 하나 보냈다. 아직은 전화로 이 맘을 전달하기엔 부끄러움이 앞설 때인 탓이다.
이 글은 2017년 3월에 최초로 쓰여졌습니다. 다이어리에 있던 글을 브런치로 옮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