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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ny LEE Dec 29. 2022

[와人너리] 부모님과 함께하는 연말의 데일리 와인

#2. 코노 수르 리제르바 까베르네 소비뇽

"연말엔 집 한 번 안 내려오니?"


2022년이 보름정도 남은 시점에 엄마에게서 문자가 왔다. 원래대로라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본가행을 미뤘을텐데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최근에 시간 여유가 꽤 생긴 덕분이다. 애초에 가기로 맘을 먹고 나니, 본가로 내려가는 길이 귀찮게 느껴지지 않았다. 


환갑이 넘은 엄마의 주요 고민은 건강에 좋은 식단 관리이다. 집에 가니 건강 관련 서적이 여기저기 손때가 묻은채 시선을 끌었다. 마침 나도 요즘 자극적인 음식은 최대한 피하고 있다보니, 본가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이 그렇게 맛있을수 없었다. 하루정도는 연말 분위기를 내고 싶었던 우리는 육전, 샐러드, 그리고 조금 남은 수육에 와인을 한 잔 곁들이기로 했다.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셋이 부엌에서 옹기종기 저녁을 함께 준비했다. 엄마와 아빠는 팀워크를 발휘하여 육전을 구워내고 있었고, 나는 옆에서 페스토 베이스의 부라타 치즈 샐러드와 발사믹 베이스의 토마토 샐러드를 준비했다. 연말에 가족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는 분위기가 따뜻하고 즐거웠다. 


샐러드 준비를 마친 나는 아빠의 와인 냉장고를 열고 고민에 빠졌다. 우리가 준비하는 메뉴와 이 분위기를 잘 살릴 수 있는 와인으로 뭐가 좋을까? 육전과 수육과 같은 육류가 있으니, 레드로 카테고리를 좁히고, 샐러드에서 발사믹 소스가 향이 더 강하니 그 중에서도 산미가 있는 와인으로 골라보기로 했다. 



그렇게 선택된 것이 '코노 수르 까베르네 소비뇽'이다. 빈티지가 2014년이라 잠깐 망설였으나, 다사다난한 올해가 끝나가는 것을 기념하고 싶어서 과감하게 와인을 개봉했다. 


코르크를 여니, 산미가 진득하게 묻어 나온다. 발사믹 식초의 강한 맛과도 잘 어우러질 것 같은 기분에 스스로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자화자찬을 했다. 게다가 육전을 찍어먹을 양념장으로 간장과 식초를 섞어 만들었고, 반찬으로 장아찌가 올라왔으니 이 와인은 일당백이었다. 


엄마, 아빠와 기분 좋게 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을 들이키니 생각보다 꽤 탄닌감이 느껴졌다. 더 부드러워야 음식들과 잘 어울릴 것 같아 '앗'하던 찰나에 아빠가 스월링을 열심히 해보라고 권해줬다. 한참 잔을 돌리고 한 모금 먹으니 와인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부드러워지니 특유의 라즈베리, 자두, 딸기와 같은 붉은 베리에서 날법한 새콤달콤한 향이 더욱 빛을 발한다. 하지만 끝에서는 묵직한 탄닌감이 중심을 잡아준다. 수육과 장아찌, 육전과 초간장, 버터헤드와 발사믹, 부라타 치즈와 토마토의 조합처럼. 




'리제르바'는 코노수르가 생산하는 와인 중에서도 프리미엄 생산 라인으로, '신의 물방울'에 소개되면서 유명해졌다.


올해는 유난히 다사다난한 해였다. 지금은 회복을 잘 했지만 아빠가 크게 아프기도 했고, 소중한 분을 떠나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연말은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내고 싶었다. 이날 저녁은 내가 원하던 연말 저녁이었다. 


꼭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관계지만, 그래도 시간을 꼭 내서 만나야 하는 사람들. 비싼걸 함께 먹어도 좋지만, 꼭 비싸지 않아도 함께 먹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사람들. 엄마, 아빠와 함께 했기 때문에 더더욱 이 와인의 맛을 음미하고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맛은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느냐가 좌우한다고 했던가. 딱 기분 좋게 취한 저녁이었다. 




Winery Notes


칠레의 Central Valley 중 Maipo Valley 에 자리잡은 와이너리 '코노수르 (Cono Sur)'는 영어로 해석하자면 'Cone of South' 즉, 남쪽의 뿔을 의미한다. 이는 세계 지도에 그려진 남미를 형상화하는 모습이기도 한데, 나름 남미를 대표하는 와인을 만들어보겠다는 창업자 의지가 담겨있다. 품질 대비 가격이 좋은 와이너리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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