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직장을 선택할 때 두는 가치
모두를 만족시키는 가치는 없다
내가 첫 직장을 선택할 때엔, 길어지는 취업 준비 생활에 압박감을 느꼈던 점도 한몫했지만, 어쩌다 보게 된 SBS 스페셜 다큐멘터리가 결정적이었다.
2016년, 커져가는 배달 시장에 대한 리서치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는데, 그때 잠시 스쳐간 회사를 보고 ‘이 회사, 성장 가능성이 엄청나겠는데?’ 싶어 당장 지원했고, 운이 좋게도 꼭 2주 뒤 입사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한 사기업이 제공하는 유/무형의 가치나 서비스가 모든 고객의 환대를 받을 수 없다. 아무리 큰 기업이 좋은 제품을 제공한다 할지라도 - 이를테면, 이 글을 읽게 해 주는 독자님의 휴대전화나 노트북 같은 하드웨어부터 브런치 플랫폼, 그리고 그 플랫폼에 진입할 수 있게 해주는 통신사까지 -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으며, ‘불만족 고객 voc (내지는 ‘고객의 소리’)’는 어디서든 터져 나오게 마련이다.
나에게 없는 줄 알았던 애사심이란 게 사실은 내 좌심방 우심실에 깊게도 숨어 있었는지, 나는 이런 볼멘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치 내가 잘못한 게 있는 것 마냥 가슴이 아팠고 속이 상했다. 이 회사가 대응해야 하는 ‘고객’은 비단 앱을 통해 진입하는 사람 외에도 자영업자, 라이더, 공공기관, 페이먼트사 등 한 둘이 아니므로 미움받는 데 두려움이 누구보다 큰 나 같은 인간은 좀처럼 속상함과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어렵기도 했다.
내가 기획한 아이디어로 사내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론칭이나 업데이트를 하고 시장 반응을 살피는 날엔… 공들여 키운 연예인을 데뷔시킨 소속사 마음이 비슷할까 싶다. 무관심이 괜히 서운하기도 한 걸 보면 말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이직하게 된다면 다시는 사업자등록증과 영업신고증을 보고 싶지 않다.’
‘모두의 환대를 받는 서비스는 아니더라도 욕은 덜 먹는 걸 하고 싶다.’
인간 존재에 가치를 둔 서비스
바로 이직할 생각은 없었는데, 회사에 퇴사 통보를 하고 나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 많은 제안을 받았다. 첫째로는 감사하게도 내가 회사를 못 다녀서 굶어 죽진 않겠구나 싶었고, 두 번째로는 왜 이까짓 일로, 내가 퇴사를 못해서 옥상 위까지 올라갔었나 싶었다.
최종 면접까지 진행할 의사를 밝힌 곳은 총 세 곳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이 세 회사와 함께할 의사가 생긴 데에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바로 ‘사람’에 가치를 둔 회사란 점이었다. ‘사람’의 취향을 잇는 서비스, 생산인구 대부분이 ‘노인’인 농업을 좀 더 편하게 가꿀 수 있는 서비스, 그리고 ‘인간 생애 주기’에 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가치를 찾는 서비스. 세 곳 모두 마음에 들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작성한 회사 중 가장 마지막 회사에 큰 끌림을 느껴 이런저런 연봉 오퍼도 마다하고 그 회사로 선택했다.
합격한 지 한 달 정도 되어 이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새로 출근한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는 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스트레스 중 가장 큰 편에 속한다는데,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이전 브런치 글에서 언급한 ‘내가 가장 존경하는 팀장님이자 나의 인생 롤모델’인 선배와 조직학 개론에 빠삭한 나의 오랜 동료 선배가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회사에 선배를 소개해 드렸을 때, 긍정적으로 받아주신 대표님과 내가 이직할 회사와 서비스, 가치를 잘 골랐다며 칭찬해주고 이직 과정에서 같이 이 회사를 알아보다 ‘유레카!’를 외치며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 준 선배들 덕이다.
이번에는 -이번만큼은- 죽을 만큼 하지 않을 거다.
같이 잘 살려고 일할 다짐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