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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Dec 18. 2022

심장 제세동기 같은 단짝 친구

나를 살려 준 베스트 프랜드

죽을 땐 죽더라도 이 얘기 하나만 듣고 가!


 1년 전 여름 즈음이었을까, 밤에 한강 둔치에 앉아 마지막을 정리하고 있었다.


 행복했던 순간과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정리하고 뛰어들 타이밍에 대해 고민하려 혼자 앉아 있었다. 그런데 훼방꾼이 너무 많았다.


 “혼자 오셨어요? 저희 두 명인데. 맥주 한 잔 하실래요?”


 3분에 한 번씩 말을 걸어대는 탓에 나의 중대한 순간이 방해받았다. 나도 큰 결심을 하고 이 자리에 온 건데, 그래서 고요하게 내 마지막 순간을 즐기고 싶은데! 코로나19로 10시면 술집이 다 닫는 탓에 달빛 아래 한강은 청춘들로 인해 너무 시끄럽다. 이내 죽겠다는 흥이 다 깨져버려 일단 오늘은 살기로 하고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서 B에게 울면서 전화했다.


 B는 내 전화를 받자마자 소리쳤다.

 “죽을 땐 죽더라도 나 오늘 진짜 웃긴 일 있었으니까 그건 듣고 가!”

 뛰어오는 B를 본 순간부터 웃음이 터져서 ‘그래,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생각했다.



우리 오늘 우정 테스트할까?

 

 21살, 우리는 한창 힙합에 심취해 있었다.


 남들은 클럽 갈 때 예쁜 원피스를 입고 화장을 하고 가는데 너희는 왜 그러고 다니느냐고 엄마가 한 마디 했다. 우리는 ‘힙순이' 명예를 지키기 위해 큰 박스티에 스키니진, 운동화에 챙이 납작한 캡 모자까지 갖춰 쓰고 힙합 클럽을 다녔다.


 돈이 없던 학생 시절이니 ‘밤 10시 전 무료입장' 사인이 걸린 클럽만 갔고, 택시 타고 집에 갈 엄두가 나지 않으니 아침 첫 차가 뜰 때까지 자리에 한 번 앉지 않고 흑인 음악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팔을 흔들었다.

 기숙사 고등학교를 탈출했고 대학교도 인서울로 골인했으니 이 자유가 어찌나 소중한지!

 우리는 ‘적게는' 일주일에 세 번 클럽을 갔다.


 그때 우리가 즐겨하던 것이 이 ‘우정 테스트'다.

 어젯밤에 클럽에 갔다가 오늘 아침에 헤어졌으니 하루 정도는 쉴 만도 한데, 낮잠 한숨 푹 자고 저녁 8시쯤 일어나면 또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서로 몸이 지치고 피곤할 건 당연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 밤도 이 친구랑 같이 놀고 싶었다.


 “오늘 우정 테스트할래? 9시 30분 홍대역 9번 출구.”

 우리의 우정 테스트가 실패로 끝난 적은 거의 없다.


 지하철 출구 계단을 올라 상봉하자마자 10시 전 입장을 위해 젊음의 거리로 무작정 달렸다.

 그 시절 클럽에서 봤던 잘생긴 남자 이야기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를 설레게 하는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우리는 앞으로도 둘이 이렇게 재밌게 살자고, 작은 술집 하나 차려서 마감 후엔 문 걸어 잠그고 술이나 퍼 먹자고 하다가도, 그렇게 살면 돈 한 푼 못 벌기 딱 좋겠다고 했다.



심장 제세동기 같은 단짝 친구


 나에게 친구 B는 말 그대로 내 인생의 ‘심장 제세동기'다.

 내가 우울의 극단에 치달아 몸을 벼랑 끝으로 던질까 고민할 때마다 항상 그녀가 내 허리춤에 밧줄을 채우고 놀이동산으로 끌고 갔다.


 우리는 고등학교 때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어 어떤 친구들은 둘이 어떻게 그렇게 인생의 짝꿍이 될 수 있었는지 궁금해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왕따를 당하던 무렵 그 친구는 옆 반이었지만 교내 독서실에서는 바로 옆자리였다.


 ‘키티’ 고양이 캐릭터를 유별나게 좋아하는 이상한 아이였다.

 자그마한 체형에 하얀 피부, 눈은 또 얼마나 큰지 그 큰 눈을 보면 내 눈 크기의 세 배쯤은 되겠다고 생각했다. 애교 넘치는 목소리로 같이 있는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고, 오리궁둥이를 쭉 빼고 걷는 모습이 귀여운 친구.

 그녀와 독서실 옆자리에 앉게 된 것이 내 인생을 뒤흔들 이번 생에 가장 행복한 수확이 될 줄이야.


 선유도 공원에서, 해운대 앞바다에서, 회사 건물에서 우리는 눈물을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내 편이 돼주니, 나는 가족보다 이 친구에게 더 많은 것을 터놓았고 나도 그녀의 수많은 고민을 함께 짊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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