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브런치 글을 보고

일단 죄송합니다

by 짱강이


나는 논리정연하고 박진감 넘치며 동시에 감성이 담긴 글을 써내는 게 가능한 인간이다.


대뜸 자랑이냐?

글쟁이로서는 자랑이겠지.. 그러나 내 인생의 대부분이 글로 이어져 왔고, 그 뒤에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몰라야 한다.


굳이 서술하진 않겠으나, 나는 내 자율 신경을 끊어 먹어 가며 왕복 4시간의 대치동 학원을 다녔고, 끝끝내 그 대단하신 ‘서울대 박사 출신’ 선생들로부터 글로 인정을 받았다. 병적인 불안과 강박을 항불안제 1077468개로 틀어막아 가며, 늘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는 손으로 기본 1000자 단위의 논설문을 써낸 결과였다.

학력주의자는 아니지만, 평생을 책만 보고 논문을 쓰고 지겹도록 글, 글, 글과 엮여 왔을 이들이 나의 얼굴만 봐도 어! 하는 게 기뻤다. 동시에 불안했다. 나락은 늘 행복 곁에 있으니.

그래서 항상 흥민이 월드클래스 아닙니다 하는 손웅정 감독마냥, 우리 콩딱지 그 정도 아닙니다 글 진짜 못 써요 아주 눈뜨고 못 봐 줄 지경으로 못 씁니다

하고 다녔다.


당시 내 생일 날 너무 바빠서 그런 생각도 했다.

왜 하필 내가 지금 태어났을까... 좀만 늦게 태어나지. 글쓰기도 바빠 죽겠는데.


그렇게 자학과 즐거움과 자괴감과 고통을 넘나드는 모든 감정으로 그 시간을 버텨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언제 어딜 가나 글로 인정받고, 또 그걸 동력 삼아 성찰과 도약을 하고, 그런 생을 살아 왔던 영혼의 목표 중 하나가 있었다.

바로 ‘브런치에서 글쓰기’

브런치 작가 되기도 아니고, 정말 브런치에서 글쓰기.

나는 브런치 글을 몇 번 접해 봤기 때문에, 브런치가 블로그마냥 아무나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럴수가!

이곳에도 등단, 합격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글을 쓸 자격이 주어졌다.

조금은 오.. 싶었으나, 뭐 하란 대로 했다.

묻는 게 참 많았다. 근데 고루한 질문들뿐이었다.

그저 표면적으로 내 글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형식적인 질문들.

당시 아르튀르 랭보를 추앙하는 나로서는 어딘가 반항심이 들었다.

질문이 재미없으니 내가 재미있는 답변을 내놔야지.

그래서 되는 대로 써내려갔다. 내 반골 기질을 팍팍 넣어 가며, 대치동식 단정한 문장과 내 본연의, 지리멸렬하고도 심오한 문장을 섞어 써냈던 것 같다.

딱히 간절함도 없었다. 재수없다면 죄송합니다 일단 들어 보세요

모종의 일들을 계기로 나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연습을 했으며, 어느새 갈망하는 것이 없는 인간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나마 원한 게 있었던 건 얼마 전 대선 때.. 음


희망따위 버리고 살면 좌절도 없다. 오히려 쿨하고 아량 넓은 인간이 된다. 어쩌라고 그러든가.. 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써낸 답변은 내게 합격!을 불러왔다. 사실 뭐라 썼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뭐 웬만하면 패스시켜 주겠지.. 하는 알 수 없는 근자감이 있었다. 역시 멍청하면 대담해지는 듯하다.


그런데, 내가 본 브런치 글의 작가는 이 브런치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위해 거의 목숨을 건 수준이었다.

매일 밤낮으로 노트북을 끼고 글만 썼댔다. 오직 브런치 등단을 위해...

사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다.

설마 여기서 자를 만큼 참담한 글을 쓰겠어? 웬만하면 다 통과시키겠지.. 다 내 마음대로 해야지~ 안 되면 다른 거 하지 뭐 하던 나였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등단을 했으며, 브런치 작가로서 고군봉투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듯했다.

그런 그를 보며, 꼰대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글쓰는 습관이 들면 마음이 좀 더 편할 텐데, 너무 애쓰다 보면 지칠 날이 있을 텐데, 하는 젊꼰적 사고가 들어 왔다.

동시에, 쌓아 놓은 글밥은 많으면서 손도 안 대고 브런치엔 간헐적으로 머리를 들이미는 나를 생각했다. 오. 건방지군.

근데 어쩌라고. 이게 내 인생인데.

출판사 사장 겸 작가였던 외조부 피가 어디 가겠나.

난 저렇게 죽어라 노력하는 타입 못 돼.

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결과적으로, 노력형 작가든 자유분방형 작가든 그 어느 형태의 작가든 같은 작가이다. 근데 애초에 나는 작가가 아니다. 그냥 글쟁이다. 작가라는 수식어는 어딘가 낯간지럽고 부담스럽다. 조선 글쟁이 정도가 맞는 것 같다.

그럼에도, 노력으로 작가 자리를 쟁취하려는 이들이 의아하고 신기하며 안 보이는 구석에서나마 응원한다고 전하고 싶다.

글쟁이 콩딱지도 화이팅.

역시나 매가리 없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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