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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 많은 말띠 Oct 29. 2021

다시, 남해 #1

여전히 백수인 채 다시 남해로


지난 6월 퇴사 직후 남해에 사는 친구(이하 고구마)의 집에서 2주를 머물며 남해살이를 했다. 서울로 돌아오던 버스에서 '이제 다시 회사원이 될 것이고, 또 몇 년 간 자유롭게 떠돌 일은 없겠구나.' 하며 아쉬워했다. 예상과 달리 3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무직자이자 자유인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혹은 핑계로) 수익은 마이너스이나 인생을 통틀어 나 자신에게만큼은 잭팟을 터뜨리는 중이라고 믿고 있다.




9월이 끝나가던 어느 날, 날씨가 좋아 동네 천변을 걷고 있는데 고구마로부터 전화가 왔다.



"뭐 하냐"

"나 산책하고 있어!"

"신선놀음하네."

"백수 너무 좋아~"

"야, 남해 내려와라. 와서 내 일 좀 도와라."

"시급 얼마 쳐줄 건데?"

"봉급은 못 줘도 맥여주고 재워주께. 와라."

"숙식제공이 월급보다 더 크지 않냐?ㅋㅋ그나저나 나 취직해서 다시 간다고 했는데 아직 놀고 있어서 좀 부끄럽다." 

"그러니까 내가 일 주잖아. 다음 주에 와래이."

"얼마나 있어야 해?"

"내는 상관없다. 니 가고 싶을 때 가라."




다시 남해에 간다고 말했을 때 친구들은 하나같이 부러워했다. 특히, 불러줘서 가는 거면 더없이 좋지 않냐면서. 정말 그랬다. 고향에 가는 기분으로 다시 만날 고구마네 가족들을 떠올리며 집을 떠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엄마는 남해에 다시 내려가겠다는 내게 단번에 "취직은 언제하려구" 했다가 내 눈치를 살피고는 "그래 뭐, 우리 딸이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짐짓 체념하는 듯했다. 지난번 남해살이 때는 캐리어를 끌고 집을 떠나는 내 뒷모습에 눈물이 차올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더니, 두 번째라 그런지 썩 무심한 것 같다가도 "언제 올 건데? 오래 있게?" 하며 자꾸만 돌아올 날을 물어본다. 




오전 11시 30분 고속버스를 예매해두고 전날까지도 짐을 싸지 않았다. 여름 내내 짐을 쌌다가 풀었다가 반복했더니, 짐 싸는 건 일도 아니다. 대충 머릿속에 챙길 것들을 그려두고 한동안 만나지 못할 사람과 오래 시간을 보냈다. 눈뜨자마자 전날 마신 술이 채 깨기도 전에 집을 떠날 채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서랍에서 옷과 속옷을 꺼내 그대로 캐리어에 담고 천천히 아침 식사를 한다. 엄마와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엄마는 또 "일주일 정도 있을 거야?' 하고 언제 돌아오는지 묻는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걸까 아니면 일주일만 있다가 오라는 얘기일까. 아니면 둘 다? 일주일이든 이주일이든 상관없이 짐은 머리를 감고 몸을 닦을 비누 하나, 칫솔, 치약, 여벌 옷과 속옷, 바를 거리, 수건, 양말 정도면 충분하다. 몸을 가꾸는데 무신경해지다 보면 짐이 줄어서 좋다. 어디든 간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된다. 삶이 가벼워지는 기쁨은 내려놓아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다.




까맣게 탄 피부 때문인지 촌스러운 얼굴 때문인지 몰라도 남해에서 만난 사람들 중 아무도 나를 서울 사람으로 봐주지 않았었다. 이번에는 서울 사람 티를 좀 내고 싶어서 옆 동네 유명한 빵집에 들러 양손 가득 빵을 샀다. 고모님 가게에 한 보따리 가져다 놓으면 동네 사람들이 오며 가며 "서울 아가씨가 사 온 빵이다 아이가" 하면서 소문을 내주실게 분명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는 대전과 진교를 경유하고 5시간 만에 남해에 도착했다. 소독실을 거쳐 터미널에 발을 들이면서 '다시 또 외지인이 되었구나' 생각한다. 외지인이 되면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세미 관종인 나는 그런 관심이 좋다. 얼굴을 빤히 보면서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남자친구는 있는지 물어보는 시답지 않은 질문도 좋고 뭐든 잘 모르거나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해주는 핸디캡을 장착하게 된다는 점도 좋다. 익숙한 환경에 있으면 뭐든 다 잘 해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어깨를 짓누를 때가 있다. 그럴 땐 익숙한 곳을 벗어나기만 해도 어깨가 훨씬 가벼워진다.






서울에서 멀어질수록 풍경도 점점 변한다. 간간이 보이던 대학교 건물도 더 이상은 보이지 않고 마을조차 없는 산골짜기를 지나다가 다시 또 노랗게 익은 황금들녘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서울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내렸는데 남해에 도착하니 날이 꽤 맑다. 남해읍에서 고구마의 집이 있는 미조까지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서로의 근황을 묻는다. 3개월 전 남해에 왔을 때와 같은 것은 여전히 무직자라는 점과 어깨에 살짝 닿는 머리 길이, 달라진 것은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서는 중이고 노트북과 애인이 생겼다는 것이다. 남해에 오는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고구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허기가 몰려왔는데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배가 등에 달라붙을 지경이다. 고구마는 어떤 맛있는 걸 먹을까 고민하더니 독일마을에 가잔다. 독일마을은 남해 유명 관광지다. 지난번 남해살이 때는 한 번도 못 가봤다고 말하니 고구마는 "그때 독일마을에 안 왔다고? 한 번도? 거짓말하지 마라. 니 진짜 안 왔었나?" 하면서 수제 맥주를 파는 커다란 식당으로 들어선다. 
















유럽식으로 지어진 큰 건물들이 늘어선 독일마을에 들어서면서 유럽에 한 번도 못 가본 나는 서울 해방촌을 떠올렸다. 이국 음식을 파는 폼 나는 건물들이 언덕 위에 늘어선 모습이 해방촌과 비슷하다. 이국 음식을 이국적인 분위기의 식당에서 먹으면 이국에 있는 기분이 느껴지나? 나는 여행을 할 때도 관광지는 '믿고 거르는' 편이라 독일마을 자체에 별 기대가 없었다. (돈 냄새나는 곳에 가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특히 알맹이 없이 흉내만 낸 것에는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상한 성격이다) 6월에 남해에서 지낼 때도 고구마가 몇 번이나 "독일마을 가볼래?" 물어봤지만 그때마다 나는 시큰둥했다. 이번에는 너무 배가 고파서 그런 것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분 좋게 따라나섰을 뿐이다. 넓은 외관만큼이나 탁 트인 내부는 높은 천장 때문에 밖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커 보인다. 메뉴는 고구마가 별 고민 없이 시원스럽게 정한다. 고구마는 좋고 싫음이 분명하니까 내가 권해도 어차피 본인이 원하는 건 늘 따로 있다. 나는 확실하게 나서야 할 때는 먼저 나서지만 강단 있는 사람 앞에서는 우유부단해져서 다 좋다고 한다. 이 친구가 맛있다고 하면 대체로 다 맛있기도 하고. 그렇게 정한 메뉴는 남해에서 자란 마늘로 만든 크림 리조또와 수제 소시지.




고구마와 나는 09학번 대학 동기다. 학부생 때 우리의 아지트는 대학로에 있는 오래된 양식집이었다. 이름은 <장>. 한자로 길 장자를 쓴다. 소극장과 라이브 카페가 즐비한 대학로 한복판, 눈에 잘 띄지 않는 빌딩 3층에 자리 잡은 <장>은 조용하지만 말 많은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이다. (지금은 한때 민들레영토였던 건물 옆 골목에 전원주택처럼 생긴 건물로 이전을 했다) 우리는 <장>의 오래돼서 움푹 팬 패브릭 소파와 낮은 조도, 밥집인지 술집인지 커피집인지 알쏭달쏭하고 묘한 분위기를 좋아했다. 사장 아주머니가 다가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길게 하면 그게 좋으면서도 싫었다. 사장 아주머니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지만 우리의 시간을 뺏기면서 어른의 이야기에 비위를 맞추고 억지로 반응해야 하는 상황은 싫었다. 다른 곳에 가보자고 하면서도 <장> 만큼의 편안함을 가진 공간을 찾지 못한 우리는 졸업 후에도 만나기만 하면 대학로, 그중에서도 <장>에 갔다. 메뉴도 늘 같았다. 뚝배기 그릇에 나오는 명란크림리조또. 뚝배기 온도 때문에 지글거리는 리조또를 한 숟가락 뜨면 치즈가 주욱 늘어난다. 명란의 비릿함과 크림의 고소함, 짭조롬한 간이 일품인 메뉴였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남해에서 리조또를 먹으면서도 <장>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먹는 양식은 '외식'의 의미를 다시금 실감 나게 하는 맛이었다. 



"이런 맛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내는 거야?"

"요리하는 사람들 진짜 대단해. 음식 만드는 거 보통 일이 아이다."

"맞아. 너무 멋있어!"




내가 도울 일은 아주 소소한 일이겠지만 당분간 일 할 내 자리. 아버님이 직접 제작한 나무 책상은 여태까지 내가 일했던 여느 책상보다 마음에 든다. 솔솔 올라오는 나무냄새, 몸에 꼭 맞게 깎인 곡선과 널찍함까지 완벽하다. 사실은 어머님 자리지만 당분간은 내 자리라고 여기기로 한다. 





3개월 만에 돌아온 고구마의 집은 약간의 변화가 있다. 1층 방에 쉬기 좋은 해먹이 생겼다. 늘 피곤해하시는 어머님이 편히 쉴 수 있도록 고구마가 마련한 사랑의 선물. 그러고 보니 사무실 한편에도 간이침대가 있었는데, 너의 사랑은 어디까지인 거니. 나도 어디서 효녀 소리 좀 듣는데 고구마한테는 비교가 안된다. 우찌 그리 싹싹하노. 






현관을 나서다가 달력에 적힌 글씨를 발견했다. 



"고구마야, 여기 적힌 토끼가 무슨 의미야?"

"아 그거. 엄마가 내랑 덕구한테 잘하면 토끼 하나씩 준다. 토끼 많이 모이면 상준대."



고구마네 가족은 진짜 재밌게 산다. 지난 남해살이 때도 이 집의 화목함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과 위트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었다. 제3자인 내 시선에서는 다소 심각해 보이는 일도 농담으로 웃으며 넘긴다. 그런 재치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놀랄만한 불행도 씩씩하게 잘 견뎌내고 가족은 더 단단해졌다. 우리 엄마는 세상 사람들의 여유와 웃음이 돈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데 절대로 공감할 수 없다. 돈이 많으면 여유도 따라올 것 같지만 사실은 돈에는 더 많은 에너지와 노력, 불안, 걱정 등이 따라온다. 그런 것들을 잘 다스려야만 여유가 생긴다. 부자들이 다 그렇게 여유롭게 산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졌을 거란 걸 엄마는 정말 모르는 걸까. 달력에 적힌 '토끼'를 보면서 어머님의 지혜를 느낀다. 어머님은 서운하다는 소리도 듣기 좋게 이야기하시는 분이다. 고구마와 덕구씨(고구마의 남동생)에게 잔소리하는 대신 토끼를 이용했을 테다. 그런 어머님의 방식도, 따라주는 고구마와 덕구씨도 사랑스러워서 달력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그 와중에 어머님이 본인에게도 토끼를 준게 킬링 포인트)






고구마는 이번에도 방을 내어줬다. 오랜만에 독방을 차지하고 있으니 잠들기가 영 아쉽다. 스탠드를 켜고 앉아 있는데 적막 속에서 갑자기 내려오는 길에 들었던 노래가 맴돈다. 유튜브를 열어 '백지영 dash'를 입력하니 1:1 비율의 화질이 좋지 않은 영상 몇 개가 상위에 있다.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린 화면 속에 젊고 마른 백지영이 열정적으로 춤을 춘다. 카메라가 어디 있든 어떻게 찍든 상관없이 진심으로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음악에 더 깊이 빠진다. 요즘은 좋은 음악을 발견하면 꼭 가수가 직접 부르는 영상을 찾아서 본다. 음악을 '청취'한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음악은 '시청'한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부르는 사람의 감정, 손짓, 호흡, 표정까지도 노래의 일부다. 음악은 음악으로서 그냥 존재하지 않고 살아 숨 쉰다. 그 시절 우상이었던 엄정화, 백지영의 모습을 검색창에 검색만 하면 다시 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화면 비율과 화질을 제외하고는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유행이 또 돌아온 건가. 야밤에 방 안에서 부르는 옛날 노래. 한때는 테잎이 늘어지도록 듣고, 한때는 추억에 젖어 목청껏 불렀던 옛날 노래.



이제는 웃는 거야 smile again! 

행복한 순간이야 Happy Day!




눈 뜨자마자 옥상에 나가면 커다란 해가 바다를 비추고 있다. 수면 위에 펼쳐진 반짝이는 황금길을 바라보면서 잠을 깬다. 첫날은 기분 나쁜 꿈을 꾸느라 새벽에 깼다. 다시 선잠을 자고 6시 즈음 일어나 바람을 맞다가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요가를 한다. 전날 장시간 버스에 앉아 있던 데다 오랜만에 침대에서 잠을 자 뻐근해진 허리를 천천히 이완한다. 호흡이 가빠지도록 빠르게, 그러나 조용히 움직이면서 땀을 내고 따뜻한 물로 천천히 샤워도 한다. 낮은 수압에 마음이 조급해지다가도 이내 깨닫는다. 급할 거 하나 없잖아. 느리게 몸을 씻는 것도 나쁘지 않아.







뜨거운 볕을 못 이기고 방 안으로 들어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버님표 나무 테이블에서 독서를 한다. 고구마의 또 다른 친구가 선물해 주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일인칭 단수>를 집어 들었다. 외서는 번역가의 재량에 따라 같은 작가의 책이라도 완전히 다르게 전해진다. 작가마다 호흡이 잘 맞는 번역가가 있을 테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김난주 번역가를 좋아한다.(일인칭 단수의 번역은 홍은주)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등 다른 작가들의 책을 볼 때도 이 번역가의 번역이 가장 와닿았다. 일본 특유의 정서를 한국적 문장으로 녹여내는 재능이 탁월하다. 거슬릴 정도의 습관적인 단어 채택도 없고(양억관 번역가는 특정 단어를 습관적으로 쓰는 버릇이 있어서 거슬릴 때가 있다) 문체가 부드럽다. <일인칭 단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원작이 어떤지는 몰라도 작가 특유의 정서가 덜 느껴진다. <여자 없는 남자들>만 해도 진하게 느껴지던 하루키 냄새가 이번 작품에서는 잔뜩 덜어진 느낌. 고구마가 "다 읽지도 않았다. 재미없더라"라고 말한 데 이유가 있구나 싶으면서도 작가에 대한 의리로 계속 읽고 있다. 




도착한 날에는 일정이 촉박해서 고구마의 부모님께 인사도 못 드렸다.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얼굴을 뵙고 어머님이 직접 차려주신 아침을 먹으며 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오랜 대화를 나눈다. 서울에서는 회로 먹거나 매운탕 끓여먹는 우럭을 남해에서는 구워 먹는다. 부침가루를 살짝 입혀 기름 두른 팬에 구운 우럭은 날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다. 나무 수저와 맛있게 무친 나물, 밭에서 딴 고추와 생양파까지 3개월 전과 다르지 않은 고구마네 밥을 먹으니 그제야 남해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제대로 실감 난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고구마가 "큰일 났다 이제." 하고 걱정스럽게 말하니 아버님은 "뭐 큰일이고.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 괜찮다. 그런 때도 있는 기지 뭐." 하시는데 그 말이 좋아서 자꾸만 곱씹는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처럼 여겨지는 인생도 그런 말에 잠시 숨을 고르며 쉬어간다. 










본격적으로 밥 값하기로 한 날. 고모님 가게에 들러 전에 안면을 텄던 마을 사람 몇 분께 인사도 드리고 오랜만에 고모님표 커피를 얻어마신다. 인스턴트커피 여러 종류를 맛 좋게 섞은 고모님표 커피는 서울에서도 가끔 생각났었다. 엄마와 매주 목욕탕에 발 도장을 찍던 시절, 목욕탕 카운터에 락커 키를 맡기면서 "커피 하나요" 하면 파란 뚜껑의 500ml 물병에 가득 채운 냉커피를 탕 안으로 가져다줬다. 뜨거운 탕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앉아 있다가 나오면 급격한 온도차 때문에 눈앞이 핑 도는데 그때 겨우 자리로 돌아와서 냉커피 한 모금을 길게 들이켜고 나면 개운해졌다. 그런 추억이 떠오르는 고모님표 커피를 마시면서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를 집중해 듣는다. 한참을 앉아있다가 나왔을 때 고구마가 묻는다.




"니 다 알아들었나? 잘 듣고 있대?"

"아니 못 알아들은 것도 많아. 그냥 따라서 웃었어,"

"또 사회생활 했네?ㅋㅋㅋㅋ"



어제 사무실에 왔을 때는 해가 진 뒤라 창밖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날이 밝을 때 와보니 창밖 풍경이 예술이다. 정박한 배와 잔잔한 물결이 이는 바다, 가까이 보이는 이름 모를 섬까지 액자 같은 풍경이다. 근무 환경이 너무 좋은 것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고 자리에 앉아 밀린 일을 해나간다. 일에 있어서만큼은 쌓여 있는 업무를 두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말도 없이 빠른 속도로 업무에 집중한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 내면서 열중하는 내 모습을 보고 자꾸만 웃는 고구마.



"왜 웃어?"

"그냥. 니 회사에서 우째 일할지 보여서. 입은 왜 그렇게 튀어나왔어?"



욕이냐 칭찬이냐 따지고 싶지만 더 묻지 않고 하던 일을 마저 한다. 오늘 안에는 끝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밤늦도록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깊은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타지에 와서 일하니까 진짜 여기 사는 것 같네. 








닭 우는소리에 깬 아침. 해가 떠오르면 고구마의 방을 정면으로 비추기 때문에 6시 무렵만 돼도 방 안이 훤해진다. 강한 햇빛 때문인지, 닭 울음소리 때문인지 몰라도 휴대전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미리 잠에서 깬다. 서울에서보다 수면시간이 1시간여 줄어드는데도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깨어나는 게 좋다. 영화로 치면 와이프와 페이드-인의 차이랄까. 현실이 느닷없이 달려와 수면을 튕겨내듯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는 게 아니라 현실이 수면의 어둠을 밝히며 서서히 들어서는 것이다. 현실과 수면 사이 몽롱한 그 시간을 바다를 보며 보내는 아침은 머무르는 동안 아낌없이 즐겨야 한다. 어느 정도 잠이 깬 후에는 요가를 한다. 아침에는 태양 경배 요가가 제격이다. 비틀어진 뼈를 천천히 맞추고 하루 동안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도록 근육에 힘을 더한다. 공복 수련은 확실히 몸이 가볍다. 꽤 빠른 호흡으로 움직였더니 몸이 달아올라서 샤워를 하고도 열이 내리지 않는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젖은 머리칼 그대로 옥상에 앉아 책을 읽는데 기분 좋은 촉감의 얇은 옷을 입은 것처럼 바람이 몸을 간질인다. 바람도 글도 천천히 음미한다. 그러면 머리카락도 나도 바람과 햇볕에 보송하게 마른다.





하루 종일 일하다가 먹은 늦은 저녁. 고구마는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묻다가 여기저기 전화 돌리기를 여러 번. 원하는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남해에서만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다며 짬뽕 비빔밥을 주문한다. 서울에서는 앱으로 결제하면 일회 용기에 남긴 음식이 문 앞에 배달되지만 이곳에서는 전화를 해서 주문을 하고 매장에서 먹을 때와 같은 그릇에 배달해 준다. 주소를 말할 필요도 없고 "OO 수산 사무실인데여~" 하면 된다. 고구마는 계란후라이를 쪼개서 양념과 밥을 모두 비벼놓고 먹기 시작했다. 나는 밥 위에 요리를 덮어 먹는 메뉴는 거의 비비지 않고 그대로 떠먹는다. 비벼놓고 먹으면 밥알이 퉁퉁 불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양념이 마르는 게 싫다. 짬뽕 비빔밥은 생김새도 맛도 오징어 덮밥과 흡사하다. 약간의 중화요리 맛이 가미된. 한식과 중식이 절묘하게 섞인 묘하게 익숙하고 새로운 맛이 중독성 있다. 짬뽕 비빔밥의 시초는 대구라고 하던가. 주방장이 대구에서 배워와 이곳에서 팔게 되었다고. 고구마는 어릴 때부터 이 집에서 짬뽕 비빔밥을 먹었으니 여느 중국집에 가더라도 이 메뉴가 있는 줄 알았단다. 서울 중식집에 가서 메뉴판을 보는데 짬뽕 비빔밥은 없고 짬뽕밥이 있어서 '서울에선 짬뽕밥이라고 하나보다' 하고 주문을 했다가 짬뽕 국물만 나온 걸 보고 놀랐다는 얘기를 또 그렇게 재밌게 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옥상에서 마음 놓고 운동을 했다. 서울 집은 좁기도 하고 층간 소음 걱정 때문에 마음껏 움직이질 못했는데 넓은 옥상에서 아무 걱정 없이 신나게 몸을 움직였다. 남해 내려오기 전부터 옥상에서 요가도 하고 점핑 잭도 마음껏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운동을 하니 더부룩한 속도 편안해지고 몸이 나른하다. 곧장 잠들 수도 있지만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놓칠 수는 없으니 동생이 추천해 준 <슬기로운 산촌생활>을 틀어놓고 본다. TV 프로그램은 잘 안 보지만 <삼시 세끼> 시리즈는 매번 잘 챙겨 봤다. 시골집에서 밥해 먹고 노는 게 그렇게 좋아 보인다. 허름한 시골집도, 마루도, 가마솥도, 텃밭도, 닭장도 좋다. 시끄럽지 않고 듣기 싫은 말도 하지 않고 쓸데없는 질문도 없이 조용히 밥을 차리고 맛있게 먹는 그 포맷도 마음에 쏙 든다. 고요한 호수처럼 차분한 전미도에 감탄하고 예상외로 푼수 같은 정경호를 신기해하면서 첫 끼를 만들어 먹는 것까지 보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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