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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 많은 말띠 Nov 22. 2021

다시, 남해 #4

여전히 백수인 채 다시 남해로





아침 먹고 집을 나서기 전, 다시 옥상에 오른다. 따사로운 햇살 받으며 단잠에 빠진 또비를 깨운다. 또비는 자동문처럼 무겁게 닫히는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면서 아는 체를 한다. 아직 여닫이문에 적응이 안 되었는지 코와 손을 이용해 문을 몇 번 흔들어 보더니 이내 이마를 대고 쑥 밀고 나온다. 그 모습을 아기의 첫 걸음마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또비가 성묘가 되어 지금보다 길어진 몸으로 능숙하고 우아하게 이 문을 드나드는 모습을 상상한다. 바닥에 엎드려 발가락을 활짝 펴고 기지개를 켠 또비는 여지없이 배를 드러내고 바닥을 뒹군다. 고구마는 기다렸다는 듯 배를 간지럽히며 말한다. 



"고양이들이 배 까고 눕는 게 배 만져달라는 뜻이 아니래.  

친밀감의 표현일 뿐이고. 

고양이는 배 만지는 거 싫어한다대?" 


그렇게 말하면서 넌 왜 또비의 배를 만지고 있는 거야.






남해에 내려오던 날만 해도 10월이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기온이 높았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기온이 뚝 떨어졌다. 사람이 가득 찬 심야버스가 정류장을 그냥 지나치듯이 계절은 가을역에 정차하지 않고 속절없이 곧장 겨울역으로 향해간다. 혹시 몰라 챙겨온 얇은 겉옷 하나만 입고 춥다고 발을 동동 구르는 내게 고구마는 옷장에서 꺼낸 두터운 옷을 던져주고는 자기도 겨울 스웨터를 입는다. 바지는 무릎이 훤히 드러나도록 다 찢어진 걸 입고서. 부드럽고 폭신한 겨울옷에서 옷장 냄새가 난다. 몇 계절이 묵은 오래된 냄새를 맡으며 새삼 어색하게 느껴지는 겨울이라고 생각한다. 실로 오랜만에 겨울을 맞는 느낌이 든다. 분명 작년에도 겨울을 살았는데, 오지 말아야 할 곳에 와있는 생경함이 드는 건 왜일까. 올여름에 특별히 과한 애정을 퍼주었기 때문일까. 살면서 맞이하는 몇 번째 겨울인가 세어본다. 나는 12월에 태어났으니 겨울에 인생이 시작된 셈이다. 그 때문인지 남들은 다들 1년을 돌아보고 마무리하면서 보내는 이 계절에 나는 미리 새 출발의 각오를 다진다. 12월 한 달을 사람들과, 가족과, 나 자신과 진득하게 보내면서 마음껏 설레고 꿈꾸고 나를 확장한다. 그리고 1월에는 겸허히 일상으로 돌아간다. 




"언지야. 방앗간이나 가자.

커피 한 잔 얻어먹구로"




날씨가 따뜻했을 때는 활짝 열려있던 가게 문이 꽉 닫혀있다. 살며시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들이밀며 안으로 들어가니 고모님과 동네 어르신이 이불을 덮고 앉아있다. 아침 식사는 하셨느냐고 물으며 이불 속으로 손과 발을 깊숙하게 집어넣는다. 차가워진 아랫도리를 따뜻하게 덥히며 '역시 바닥이 따뜻해야 돼' 생각한다. 겨울에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무릎담요를 덮고 있어도 얼마나 찬 기운이 도는지 모른다. 오래 직장 생활을 한 친구는 사무실 책상 밑에 개인 발 난로를 장만해 보라는 비법을 전수해 주었지만 혹여나 불이라도 날까 겁이 나서 회사를 나올 때까지 끝내 구입하지 못했다. 그렇게 올겨울 아랫도리 걱정을 하고 있는데 이른 아침부터 낚시 손님이 왔다. 작은 경차를 몰고 홀로 낚시를 하러 온 남자는 40대 정도 돼 보인다. 어디에 주차를 하느냐고 묻는 남자에게 고모님은 주차 자리를 일러주고 "커피 한 잔 드릴까예~?" 물어봤지만 남자는 괜찮다고 대답하고는 차를 가지고 고모님이 일러준 자리로 향한다. 그가 자리를 비우자마자 대화 주제가 바뀐다. 평범한 낚시꾼이 화두에 오른 것은 그의 모순적인 옷차림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상의는 모자에 털까지 달린 한겨울 외투를 입고 하의는 맨살을 드러낸 무릎 위 길이의 반바지를 입고 있던 것이다. 




"참 희한 하제. 추버죽겄는데 다리 다 내놓고 저 우짤기고?"


"괘안타. 남자들은 아랫도리 차도 된다."


"갯바위 가믄 바람 많이 불낀데. 아랫도리 옹기지 않겄나."



넷이서 한참을 남의 아랫도리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 쓸데없이 진지하고 쓸데없이 애틋해서 웃음이 터지고 만다. 남자는 배에 오르면서도 반바지 차림이다. 오후 5시까지 반바지 차림으로 갯바위에 앉아 낚시를 할 남자에게 담요라도 던져주고 싶지만 어느새 다른 주제로 열을 올리고 있는 어른들에게 집중한다. 진한 사투리 때문에 잠시 딴 생각을 하면 대화의 요를 놓치기 십상이니까.










잠시 집에 뭘 가지러 가다가 햇살이 집을 비추는 게 예뻐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그 모습을 보던 고구마는 잠시 생각하더니 "저 울타리에 가지 좀 치고 갈래?" 하고 묻는다. 정원수를 다듬어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간단한 일이겠거니 싶어 흔쾌히 그러기로 한다. 울타리를 타고 무성하게 자란 넝쿨을 자르는데 줄기가 굵고 질겨서 상당한 힘이 필요하다. 키가 잘 닿지 않는 곳에 사람 팔처럼 큰 대형 가위를 들고 낑낑거리다가 이건 아닌 듯싶어 고구마를 흘깃 보니 싹둑싹둑 잘도 자른다. 잠시 고구마가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가위질을 한 번에 탁- 빠르고 강하게 잘라야 한다는 공식을 깨닫고는 제법 따라 하기 시작한다. 고구마는 영리한 친구라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얼른 듣기 좋은 소리를 한다. "언지야 니 쫌 하네?". 칭찬이라면 맨땅에 앞구르기라도 신명 나게 할 나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내 친구. 그 속임수를 알면서도 잘한다는 소리에 옷까지 벗어던지며 부지런히 움직인다. 2미터가 넘는 높이까지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서 지치지도 않고 가위질을 해대는 고구마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땅에 떨어진 가지와 잎사귀들을 쓸어 담고 있으니 고구마가 웃는다. 




"니 옆구리에 빗자루 끼고 그러고 있는 게 왜 이렇게 웃기냐" 


"일 시켜놓고 기분이 좋지 아주?"




힘 좋게 뻗어 있던 손가락 굵기의 가지가 맥없이 잘려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에 괜히 마음이 짠해서 "나무 불쌍해. 아플 거 같아." 하고 말하는 내게 고구마는 "잘려도 죽는 거 아이다. 사람 손톱 자르는 거랑 비슷한거디. 자르면서 기르는 거지." 하고 설명해 주는데 그게 또 위안이 된다. 나의 터무니없는 감정이입에도 공감해 주는 속 깊은 고구마의 든든한 뒷모습을 올려다본다. 






울타리를 정리하고 마당으로 들어와 한숨 돌리려는데 이번에는 로즈마리 나무가 삐죽거리는 모양이 거슬렸는지 고구마가 "언지야 하는 김에 로즈마리도 정리하자" 한다. 다시 대형 가위를 집어 들고 나무를 자른다. 거인의 머리를 이발하면 이런 기분일까. 잘려나간 줄기에서 끈적한 진액이 흐르면서 로즈마리 향이 강하게 난다. 싸늘해진 날씨에 시큰했던 코가 뻥 뚫린다. 팔 근육이 점점 저려오는 것을 느끼면서 동그란 모양을 잡아갈 때쯤 아버님이 오신다. 생전 칭찬이라고는 인색하신 아버님도 "고마 제일 잘한 일이다. 느그들 소질이 있네." 하며 좋아하신다. 아버님이 집을 드나들 때마다 쌓여있는 방학 숙제처럼 마음 한 켠에 불편하게 자리 잡고 있던 일거리였다. 고구마는 그 마음을 알고 있었다. 영화 <인턴>에서 아무도 관심 없고 오직 줄스에게만 눈엣가시인 '잡동사니가 잔뜩 쌓인 책상'을 벤이 깨끗하게 정리했을 때 줄스는 벤을 인턴으로 인정했다. 고구마도, 나도 아버님께 드디어 정식 직원으로 인정받게 된 것 같다. 











지구력이 약한 나는 약 2시간여의 정원일에 금방 지쳐버렸다. 고구마는 잠시 쉬라며 캠핑의자를 꺼내 마당에 펼친다. 그늘에 앉아있으니 코가 다시 시큰해져서 의자에 앉은 채로 엉덩이를 들고 볕이 잘 드는 잔디밭 위로 뒤뚱뒤뚱 이동한다. 그 모습에 아버님은 웃음을 터뜨리시더니 감나무에 달린 딱 3개 남은 단감을 따서 건네주신다.




"이기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있는 단감이라. 


니는 복 받았다. 최고로 맛있는 단감이다. 무거 봐라." 



고구마는 먼저 한 입 베어 물더니 잔뜩 인상을 쓰고 "떫다" 한다. 아버님은 한사코 "안 떫다. 하나도 안 떫다" 하면서 다시 먹어보라고 권하고 고구마는 껍질을 까서 먹어야 한다고 손을 내젓는다. 둘의  실랑이를 보고 반신반의하며 손에 든 단감을 한 입 베어 문다. 첫입에는 내게도 떫게 느껴졌지만 아버님이 무안하실까 봐 티 내지 않고 계속 먹는다. 조금 출출하기도 했고 실제로 먹다 보니 떫지 않고 단맛이 나서 노동의 피로를 달래기에 제격이다. 단감으로 허기진 배를 달랜 후 한참을 따가운 햇살이 볼 아귀를 뜨겁게 달굴 때까지 축축한 이불처럼 널려있었다.








옥상에 빨래를 널어놓고 사무실로 향한다.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배가 정박해 있을 때와 바다로 나갔을 때가 다르고 해가 어디쯤 떠있는지에 따라서, 바람의 세기와 주기에 따라서도 시시각각 인상이 달라진다. 그 차이를 찾고 발견하는 데서 오는 기쁨이란. 정형화된 일상일수록 이런 재미를 의식적으로 찾게 된다.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음을 애써 절감해야만 감각에 무뎌지지 않을 수 있다.













퇴근길 하늘은 지진운이 가득하다. 아직 어둠이 깔리기도 전에 서둘러 나타난 달이 벌써 수면 위를 물들이고 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전혀 다른 색과 모양으로 펼쳐진 하늘에 감탄하며 집까지 걷는다. 배가 고파도 발걸음을 늦추게 만드는 하늘이다. 조금만 지나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하늘은 언제나 그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한다. 철저히 우연으로 만들어지는 그 순간들은 삶의 곳곳에 예기치 않게 찾아오고 그마저도 알아채지 못한다면 무의미하다. 매사에 계획적이지 못한 나는 우연의 힘을 빌려 행복을 끌어오곤 한다. 계획하지 않아서, 계획에 따르지 않아서 경험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과 포옹한다. 







유난히 달이 밝던 밤. 달은 핀 조명처럼 오직 남해만을, 나만을 비추는 것 같다. 학부생 때 고구마와 나는 예술 대학 학생들이 만드는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에 몇 번 크루로 참여했었다. 우리는 조명팀으로 참여했는데 주로 하는 일은 선배들이 매달아 놓은 조명기에 정해진 색의 셀로판지를 끼우는 일이나 조명의 방향을 맞추기 위해 무대 위 정해진 위치에 가만히 서있는 일, 선배들이 올라서있는 사다리를 잡는 일 그 외 오만가지 잔심부름이었다. 경험 없는 새내기였으니 대부분 하찮은 일이고 그나마도 뭔가를 하는 시간보다 대기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여름에 핀 조명을 어깨에 올리고 몇 시간을 극장 천장에서 보내야 했던 적도 있었는데 담당 업무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그저 신이 났다. 여름 내내 극장 안에서 지내느라 해도 못 봤는데 조명에서 나오는 빛에 얼굴이 다 탔었다. "조명에도 얼굴이 타는구나. 별일이 다 있네" 하면서 웃었다.




피곤하고 억울하고 서러운 그 시간들을 함께 하면서 고구마와 나는 가까워졌다. 앞에서는 할 말을 다해도 뒤로는 미움받기 싫어서 후회하는 소심하고 걱정 많은 내게 고구마는 늘 잔소리를 했다. 무슨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느냐, 다른 사람들 얘기에 너무 귀 기울일 필요 없다면서 따끔하게 말했다. 반대로 고구마는 맘에 들지 않아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웃어넘기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나도 '똑 부러지게 얘기를 해야지' , '잘못된 것을 바로 잡지 않으면 그게 당연해지는 거야' , '기분 나쁜 소리를 들었을 때는 애써 웃지 마! 웃어줄 필요까지는 없잖아' 하면서 잔소리를 했다. 그렇게 서로의 약점을 꼬집고 비틀면서도 단 한 번도 얼굴 붉히며 싸운 적은 없다. 고구마는 나를 있는 대로 평가하고 정의하고 내 치부를 적나라하게 말하기도 하는데 그게 속상하지는 않았다. 고구마의 말이 100% 맞는 말이고 그만큼 나를 알아주어서 고마울 뿐이었다. 이렇게까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니.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든든하다.








저녁 6시,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를 예매해두었다. 눈을 뜨자마자 어김없이 옥상에 나가 또비와 만난다. "아프지 말고 잘 지내. 건강해야 돼. 오래 잘 살아"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을 건네고 천천히 운동복을 챙겨 입는다. 남해에 내려온 날, 고구마에게 러닝 할 만한 곳을 물었더니 이 동네는 서울처럼 공원도 없고 잘 조성된 산책길이 없다고 했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아무리 봐도 집에서 혼자 걸어갈 만한 거리에 안전하게 뛸 수 있는 곳은 못 찾았다. 어젯밤 고구마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거 없나?" 하고 물었을 때 나는 러닝이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고구마는 내일 아침에 설리 해수욕장까지 뛰어갔다 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설리 해수욕장은 바로 옆 동네에 있는데 가는 길이 차도밖에 없어서 그동안 혼자 그 길을 두 다리로 지날 생각을 못 했었다. 아침에는 차가 별로 안 다니고 길이 훤하니 한번 가보라는 고구마의 말에 '그래, 마지막이니 시도라도 해보자' 싶어 이른 아침 나서기로 한다. 





구불구불한 차도의 가장자리를 따라 달린다. 채 붓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을 차고 센 바람이 멀리서부터 와서 빠르게 훑고 지난다. 내가 나아가는 방향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내가 달리는 속도에 바람이 지나가는 속도가 더해져 질끈 묶은 머리카락이 흩어진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면서 허리와 엉덩이에 자극이 온다. 차오른 숨이 가슴을 가득 채울 때마다 바다를 보고 다시 숨을 고른다. 평소에는 무릎 보호를 위해 아스팔트 길에서 달리지 않지만 아스팔트 길이든 흙길이든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진작에 나서지 못한 것을 후회하다가 지금이라도 나왔으니 됐다고 위로하다가 금세 해변에 다다른다. 






















내리막길을 빠르게 뛰어내려오다 비틀어진 골반과 허리를 충분히 스트레칭하고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는다. 여름엔 붐비었을, 지금은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에 앉아 돌아갈 일상을 천천히 상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적당히 떨어진 환경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주변 사람들이 여전히 지난한 일상을 지켜내는 동안 나는 떠돌고, 멈추고, 숨고, 드러냈다. 해야만 하는 일 속에서 억지로 살다가 하고 싶은 일로 하루를 채우며 사는 일상은 불분명한 성과와 근거 없는 불안함을 동반했지만 그래도 더없이 소중한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다시 쳇바퀴 도는 삶 속으로 뛰어들자니 영 내키지가 않지만, 언젠가 다시 하고 싶은 것들로 하루를 가득 채우며 살 수 있는 시간이 내게 다시 주어졌을 때 지금보다 더 다양한 선택지가 내 앞에 놓이려면 이제는 발걸음을 떼야 한다는 걸 안다. 등 떠밀려 나아가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당기는 힘으로 나아가는 것이니까 그 또한 기회이며 감사이지 않나. 내가 믿는 나와 나의 가능성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이므로 다시 세상으로 나갔을 때 어떤 방식으로 살아남고 성장할지도 알 수 없다. 이왕이면 걱정보다는 설렘으로, 불신보다는 용기로, 계획보다는 준비와 대비로 남은 시간을 채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집으로 돌아오니 고구마가 혼자 아침식사 중이다. 오전에 손님이 오시기로 해서 빨리 식사를 해결하고 나가려다 나한테 딱 걸렸다. 고구마는 "에라이!" 하면서도 얼른 일어나 내 밥을 떠준다. 마른 목을 축이고 나도 같이 밥을 한 술 뜨는데 아버님이 들어오신다. 



"뭐고? 니들끼리 먹노. 엄마아빠는 쌔빠지게 일하는데 이것들이 지들끼리 맛난거 다 묵을라꼬. 배신이다 배신."



가깝지 않은 어른이 이런 말을 했다면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허둥지둥 댔을 것이 뻔하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비위를 맞추려고 애를 썼겠지만 아버님께는 "아~ 정말~ 맛있는 거 우리끼리 몰래 다 먹으려고 했는데! 어떻게 소문이 나서 마침 딱 오셨대요?" 하고 너스레를 떤다. 며칠 전 해가 뉘엿뉘엿 질 시간에 고구마와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 아버님이 오셨다. "직원들~ 저녁 무러 갑시다~" 하시면서. 엊그제는 "딸들! 어여와라! 밥 묵자!" 했고, 가끔 말씀 중에 "은지야, 아빠가 이래 산다" 할 때도 있었다. 아버님이 나를 직원으로, 딸로 그리고 당신을 아빠로 칭하실 때마다 내가 받은 온기는 영영 식지 않을 것만 같다.



저녁에 서울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버님은 아버님다운 인사를 하신다.



"니 겨우내 여기서 지내다가 

꽃 피는 춘삼월에 회사 들어가면 딱 좋았을 낀데."



"딸 결혼식에서는 아빠가 앞에 나가서 덕담해주제? 

니 결혼식 하믄 내가 마 나가가꼬 얘기할란다.

내가 다리 밑에서 주워온 딸내미임니더~ 카믄서." 



그런 유쾌한 인사가 딱 아버님스러운 방식이라고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서울에서 돈 벌어서 여기 땅 사러 올게요. 저 시골에서 사는 게 꿈이거든요. 남해에서 살고 싶어요. 부모님도 있고, 고구마도 있고, 고모님도 계시니까 내려와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고구마 옆에서 평생 지지고 볶고 살려고요. 고구마야. 좋은 땅 잘 봐둬. 내가 돈 벌어가지고 올 테니까."



"좋은 땅 있으면 내 갖지 왜 니한테 주겠노?"


"젤 좋은 건 너 갖고 두 번째로 좋은 건 나 주면 되잖아."


"그래 알겠다. 내 좋은 거 다~ 갖고 남는 거 니 줄께."



상상만 해도 좋은 먼 미래를 상상하며 웃는다. 눈물이 많은 나는 이별에 덤덤해지기 위해 마음속에 늘 새기는 말이 있다. '만날 때는 오랜만에 만나는 것처럼 뜨겁게, 헤어질 때는 내일 다시 만날 것처럼 가볍게'. 아버님은 정말로 다음 주에 다시 볼 것처럼 덤덤하고 가볍게 그렇지만 마음만은 뜨겁게 전해주셨다. 나는 아무것도 잘 해 드린 게 없는데 어쩌면 이렇게 큰마음을 주실 수가 있는지, 어떤 방법으로 돌려드려야 할지 까마득하다. 







방앗간(고모님 가게)에 들러 마지막 커피를 타고 오늘 저녁 떠난다는 소식을 전한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더 있다가 가라고 말씀해 주시는 게 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전엔 듣기 좋은 말만 하는 후배에게 "영혼 없는 말은 하지도 마. 말뿐인 말은 그저 말일뿐이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한테 거리를 두지. 맨날 마음에도 없는 말만 하니까" 하고 쓴소리했던 나를 떠올린다. 그러는 나는 정작 사랑받지 못했다.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을 예쁘게 꾸려서 전하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건데. 참 꼬인 채로 살았구나.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라도 좋게 듣기만 하면 그뿐인데. 사무실에 손님이 온다는 연락을 받고 고구마는 사무실로, 나는 남은 커피를 들고 집으로 왔다. 옥상에 앉아 바람을 맞으니 쌀쌀해서 또비를 들어 품에 안는다. 점퍼에 달린 끈을 잡고 노느라 정신없는 또비. 이 평화로운 시간을 꼭꼭 담아 놓고 언제든 꺼내봐야지. 







고구마의 친구가 고구마에게 선물해 주었다는 책. 남해에 내려올 때 내 책도 몇 권 챙겨왔고, 고구마의 방에도 흥미로운 책이 몇 권 있는데 막상 여기서 지내면 도통 앉아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 뭐가 그리 바쁜지 밤에도 12시가 다 되어서야 침대에 누웠다. 책을 펼쳐도 금세 잠이 들곤 했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자유시간은 독서를 하기로 한다. 작가도, 작품도 생소해서 고구마의 방에 있던 책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없던 책이었다. 어쩌다 이 책을 들고 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잘한 일이었다. <디디의 우산>은 응축된 감성과 뼛속까지 전해지는 놀라운 표현력이 감탄스러운 작품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남기고 간 물건에 그 사람의 온기가 너무 뜨겁게 남아있어 역겹다는 식의 다소 거친 표현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공감을 불러온다. 의미 부여를 하다 보면 세상 어디에도 살아있지 않은 것이 없다. 존재했던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나는 누구나 읽기 쉬운 언어로 심금을 울리는 표현력을 가진 작가들을 동경한다. 그런 면에서 황정은 작가는 내게 첫인상을 강렬하게 남겼다. 








고모님이 전을 부쳤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가게로 달려왔다. 부추와 홍합, 건새우, 매콤한 청양고추까지 들어가 맛있게 짜고 매운 전을 집어먹는다. 아침이 채 소화가 되지 않아서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맛이 좋으니 계속 들어간다. 맥주를 권하는 어른들께 저녁에 장시간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해서 자제하겠다고 하니 "한숨 자고 가믄 되지~"하고는 맥주를 내 앞에 턱 내려놓으신다. 적당히 배가 찼을 때 즈음 동네 주민이 빨간 대야를 안고 들어오신다. 신문지가 덮인 빨간 대야 속에는 쥐치회, 열무김치, 나물, 생선조림이 담겨있다. 어르신들이 자꾸 '쥐고기' 이야기를 해서 '생쥐'를 말씀하시는 건가 싶어 흘려듣고 있는데 고구마가 묻는다. 



"니 쥐고기 뭔줄 아나?"


"아니. 뭔데?"


"이기 쥐고기다. 니가 먹고 있는거."



그 말에 눈이 동그래져있는데 어르신들이 깔깔대며 말씀하신다. 



"쥐치. 쥐치. 쥐치가 쥐고기다! 니 뭔 생각 했노?"



그러게요. 제가 무슨 생각을 한 걸까요. 누가 봐도 생선인데 말이죠. 바닷가 마을에서는 의외로 날생선은 잘 먹지 않고, 찌거나 굽거나 말려 먹는 편이란다. 그렇게 먹는 게 훨씬 맛있어서 그렇다는데 쥐치회는 내가 먹어본 회 중에서도 으뜸이다. 식감이 부드럽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회에서 고소한 맛이 난다고 하면 과장 같지만 고소하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고소한 맛이다. 언제 배가 불렀냐는 듯 회만 집중해서 집어먹는데 고구마는 회에는 손도 안 대고 생선조림 앞에서 자리 잡고 앉아 숨도 쉬지 않고 먹는다. 나는 달달한 양념의 조림은 좋아하지 않는데 고구마가 손가락을 쪽쪽 빨아대며 먹는 모습을 보니 맛이 궁금해진다. 단단하게 말라비틀어진 생선 조각을 집어 들고 먹어보니 도대체 생선을 어떻게 말리면 이렇게 맛이 좋나 싶다. 바다향이 가득한데 비리지 않고 꼬독거리는 살은 간이 딱 맞다. 양념은 의외로 달지 않고 깊은 맛이 난다. 질 좋은 생선을 정성껏 말려 조미료 하나 없이 50년 내공의 실력으로 조려냈으니 레시피를 알아도 따라갈 수 있는 맛이 아니다. 





터미널로 향하는 길에 고구마는 서울까지의 긴 여정을 걱정한다. 잠자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끝이 없다면서. 나는 오히려 그 시간이 남해에서의 시간을 정리하고 다시 도시인으로, 문명인으로의 변화를 또렷한 경계 없이 서서히 지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방해 없는 혼자만의 시간이 일상에서 얼마나 귀한 일인지 알기 때문에 그 시간을 철저하게 즐기기로 한다. 남해에서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에는 승객이 나뿐이다. 고구마는 기사님께 넉살 좋게 잘 부탁드린다고 하면서 애인 노릇을 한다. 남해에 사는 고구마의 친구는 자꾸 남해에 오는 나를 의심했다고 했다. "그 친구 여자 좋아하나? 니 좋아하는 거 아이가? 수상한데." 고구마가 나한테 하는 짓을 보면 단번에 그 화살이 고구마에게 돌아갈 텐데. 고구마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나에게 전하며 "니 내 좋아하나?" 물었고 나는 " 니가 동성애자인 건 상관없는데 나 좋아하는 건 안돼. 나만 아니면 돼."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뒤 우리는 고개를 젓고 몸을 부르르 떨면서 포효했다. 




고구마는 어둑해진 터미널에 서서 내가 탄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오랜만에 혼자가 된 것도,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남해에서의 나날들을 곱씹으며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데 크고 노란 달이 남해를 아름답게 비추고 있다. 떠나는 나를 배웅하듯이 가까이 따라붙는 달을 보다가 가슴이 뜨거워진다. 내 삶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적은 없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곁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의 우주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정말 잘 살아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힘을 얻고, 용기를 내고, 위로받고, 자신의 인생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진짜 멋진 삶을 살자고. 남해대교를 건너는 그 순간에 떠오른 모든 얼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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