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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흥준 Aug 01. 2021

책 이야기 3_

랭스로 되돌아가다/디디에 에리봉/문학과지성사

랭스로 되돌아가다/디디에 에리봉/문학과 지성사


기억하고 싶은  문장

우리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다시 표명하는 일은 무로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기 정체성을 주조하기 위한 느리고 인내가 필요한 작업을, 사회질서가 우리에게 부과했던 바로 그 정체성으로부터 수행해간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모욕과 수치심에서 결코 해방될 수 없는 것이다.


기억할 생각들

'되돌아간다' 라는 표현은 어디를 기준으로 이동했거나, 도망쳤음을 전제한다. 책의 저자 에리봉에게 '어디' 는 망명 이후 찾지 않은 고향 랭스였으나, 그것이 꼭 장소나 고향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즉 '어디' 는 나를 괴롭혔던 모욕일수도, 옭아맸던 낙인일수도 있다. 더욱 포괄하자면 부정하고 싶었던 나의 모든 것이 곧  '어디' 일 것이다.


부정하고 싶었던 것은 각기 다른 궤적을 가지고 있음에도 굳이 둔탁한 파열음을 내며 '어디' 에서 교차했다. 궤적부터 외면하고 싶었던, '어디' 에 도착한 것들은 곧바로 부정되어야 마땅했다. 울퉁불퉁한 표면을 차마 만질 수 없어서, 규칙적으로 폭발하는 파열음에 익숙해질 수 없어서, 부정해야 했고 그로써 나는 깔끔한 모범인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만질 수 없음과 익숙해지지 않음을 다르게 말하자면 수치심일 것이다. 나의 일부분이라고 여기기엔 수치스러운 것. 남이 알게 되면 온갖 모욕과 비아냥을 넘칠만큼 들을 수 있는 것. 그것을 부정함으로써 나는 부정적인 나로부터 해방되고, 완전히 새로운 내가 되어 밝은 미래를 긍정할 수 있을까. 그것은 여기 지금 존재하는 '나'를 긍정하는 과정일까.




뻔한 전개지만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 여러 문장을 널어놓았다. 그토록 부정하고 싶은 수치의 부분은 내 존재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적 혹은 물리적인 공간이었으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나는 상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나를 인정하고 긍정하는 일은 표백된 도화지 위에서 진행되지 않고, 모욕과 혐오로 얼룩진 수치심 위에서 진행될 것이다. 부끄러워 외면했던 수치심을 나의 것이라고 인정함으로써, 미약하지만 자긍심의 단초가 형성될 것이다. 자긍심은 언제나 당당했던 자신감에서 피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남들 눈에는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그럼에도 나만큼은 안아주고 싶은 마음에서 피어오르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전복과 완전한 해방, 그렇게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은 없을 지라도, 수치스러운 나에서 그럼에도 긍정할 수 있는 나로의 재정체화 과정에서 시차(視差)는 형성될 수 있다. 나만의 시선, 우리만의 시선으로 단어를, 문장을, 언어를, 시대를 바라볼 수 있다. 완전히 정복된 우리만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우리의 시선은 그것이 닿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탈바꿈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시차로 인해 세상의 것들은 더 이상 동일하게 유지되지 않을 것이며, 그 자체로 우리는 또다른 궤도를 작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지금 작성중인 궤도로 돌아올 수도 있다. 돌아오는 과정이 매우 부끄럽거나, 부정하기 마땅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언젠가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말끔하지도 마땅하지도 않은 서로를 어떻게든 긍정하는 일이며, 스스로의 긍정과 서로의 긍정이 모여 펼쳐진 얼룩진 자긍심이 우리에겐 역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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