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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흥준 Oct 12. 2021

책 이야기_5

짐을 끄는 짐승들/수나우라 테일러/오월의 봄

짐을 끄는 짐승들/수나우라 테일러/오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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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싶은 한 문장


"공언의 윤리, 즉 억압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면 어떨까? 또한 우리가 정치적 투쟁의 과정에서조차, 혹은 특히 그 정치적 투쟁의 과정에서야말로 더더욱 다른 피지배 집단들의 고통이나 주장에 뜻깊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열려 있음을 인식하는 그런 윤리를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공감은 한정된 자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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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생각들


많은 품과 시간을 들여 읽어야 했다.

읽다가 돌아오고, 다시 뒤로가기를 여러번.

장애학과 동물해방에 대한 식견 부족을 이유로 들 수 있겠으나, 타자의 생존에 대해 부족한 식견을 가졌다는 것은 나의 생존과 관련 없을 수 있다는 특권적 시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번 독서는 특권적 시각의 성찰과 해체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교차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논의는 서로 다른 타자들의 생존 방식이 어떠한 차이 혹은 공통점이 있는지 질문하게 한다.

또한 억압된 주체의 생존과 완전한 해방을 논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 사회가 역사적으로 누구에게 특권을 부여했으며 어떤 종류의 몸에 초점을 두고 구축되었는지 생각”(55쪽) 하게 하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종류의 억압과 착취의 공통적인 맥락에 대해 살펴보게 한다.


이슬아는 <부지런한 사랑>에서 자신의 비건 지향을 밝히며, 비건 지향은 나와 타자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즉 육류를 섭취하는 행위에서 비롯하는 나 - 동물의 관계성은 언제나 주체-대상의 관계에 머무르게 되며, 나아가 대상에 대한 끝없는 착취를 불러오는 관계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 - 동물의 관계성에서 우리는 나와 세상의 관계성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인데, 이 점에서 보면 비건 지향은 언제나 주체의 자리에서 타자를 대상화하는 ‘나’ 에서 벗어나려는 신체적 투쟁이자 한 사람의 정치적 윤리적 신념들을 정립하는 육체적인 방식(339쪽)이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동물해방과 비거니즘 운동은 비장애인 - 장애인의 관계성에서 비롯하는 비장애중심주의에 저항하는 맥락과 결을 같이 한다.

종차별주의에 바탕을 둔 비인간 동물에 대한 억압은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기준으로 가치의 위계를 만들어내는"(415쪽) 비장애 중심주의에서 비롯하는 장애인 억압은 타자를 대상화하는 지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겉보기에 무관한 다양한 억압들이 사실은 서로 얽혀 있으며 따라서 해방의 길 역시 이어져 있”(420쪽)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억압된 동물의 몸, 가축화된 동물의 몸에서 우리는 '불구' 라 불리는 몸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록 인간의 투사 행위에 불과하지만, 이 투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가 "어떤 몸을 가치 있는 것, 착취할 수 있은 것, 유용한 혹은 쓰고 버릴 수 있는 것"(101쪽)으로 여기는지 알 수 있으며,

바로 여기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억압-동물, 장애인, 여성, 퀴어 등 서로 다른 정체성에 가해지는 것-의 기제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다양한 정체성에 가해지는 억압의 결이 닮아 있다 할지라도, 그것의 차이를 지울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장애의 치료에 필요한 약품이나 기술을 개발하는데 수반되는 동물 실험,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비건 지향을 온전히 추구하기 어려운 장애인, 백인- 고소득 계층에서 시작된 비거니즘의 역사성과 계급성의 문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즉 억압되고 착취당한 여러 정체성들이 그저 '낭만적' 이게 어울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는 것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차별을 납작하게 바라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러한 지점에 대한 고민이다.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을 둘러싼 비장애중심주의와 종차별주의, 계급성의 양태를 어떻게 복잡하게 인식하며,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하나의 대안으로 상호 의존의 개념을 제시한다.

모든 인간은 그 자체로 의존적인 존재일 수 밖에 없으며(인간 삶의 처음과 끝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의존하며 이루어지니), 동물 또한 타 존재에게 의존적 삶을 살아야 한다.

종은 다를 지라도 의존적이고 취약한, 그렇기에 상호 의존해야 하는 존재들이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이해하고, 서툴고 불완전하게 서로를 돌보(372쪽)는 대안적인 존재방식이자 커뮤니티(321쪽)를 꿈꿀 필요가 있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특권의 성찰과 해체로부터 시작한 독서가 상호의존의 개념에 다다라 끝이 난다.

맞이한 끝에서 나는 나의 생존 방식을 고민케 된다.

나의 생존은 언제나 그랬듯 누군가에 대한 의존적인 태도로 인해 가능할 수 있었으며,

언제나 의존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완벽히 자립할 수 없는 인간은 동물해방과 장애해방의 문제와 관련 없을 수 없다.


너와 나의 생존을 위해서,

타자에 대한 공감과 관심은 필수적인 조건이며

우리 곁에 존재하는 여러 억압에 대한 복잡한 인식으로부터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는 방식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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