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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흥준 Apr 09. 2022

책 이야기 10

빈곤이 오고있다(신명호),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홈리스행동)

  사회 빈곤의 원인과 실태에 대해 말하는 신명호의 『빈곤이 오고 있다』는 빈곤의 기준 자체가 매우 정치적이고 자의적이라는 지적을 던지며 주장을 전개한다. “국정을 맡은 정치세력이 어떤 계층, 어떤 집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37)지에 따라 빈곤의 기준선은 달라진다.  정부의 지원 정책을 위해 설정된 빈곤 기준선에는 정부의 통치 이념이 담겨 있다. 통치 이념에 따라 세워진 기준선에 의해 빈곤층은 국가 통치의  안으로 포섭된다. 국가 통치의 장에 포섭된 빈곤층은 언제나 ‘수혜 대상으로 여겨진다. 정수남(2015) 말처럼, 빈곤층은 “권력체들 간의 상호작용,  갈등. 협력. 타협 등이 이루어지는 장에서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게 되는 ‘침묵하는존재로 여겨질 수밖에 305) 것이다.


  정치적으로 설정된 빈곤의 기준선을 걷어내보자. 『힐튼 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속 최현숙의 말처럼 “빈부를 수치화하는 등급과 통계 좌표 상에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정확히 점 찍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312쪽)이며, 빈곤은 “구체적인 삶이자 내력이며 외연만이 아닌 내면의 어떠함”(312쪽)이기 때문이다. 빈곤은 단순히 금전적인 여유 없음 뿐 아니다. 빈곤은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여러 요소의 총체적 부재로 얽혀 있다. 이러한 부재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게”(60쪽) 만든다. 먼저 빈곤은 나를 도울 수 있는 존재의 부재, 즉 관계의 부재와 함께 한다. “돈이 없는 나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뻗쳐줄 수 있는 누군가”(69쪽)없이, “잊어부리고 사니까 보고 싶지도 않고 걱정되는 것도 없고 이렇게 혼자 사는 게 편하”(32쪽)다는 말로 가족과의 단절을 위로하는 사람에게 빈곤이 있다. 더하여 빈곤은 재난 앞에서도 취약함을 드러내게 만든다. “쪽방촌은 누구랑 거리를 두는 게 어렵”(152쪽)다고 말하는 양동 쪽방촌 거주자 장영철의 말처럼, 빈곤은 나만의 공간과 타자와의 거리를 빼앗고 사람들을 취약함으로 내몰고 있다. 매순간 취약함을 마주하는 빈곤한 사람들은 건강 역시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건강과 사회적 관계, 더하여 교육의 부재는 빈곤의 원인과 결과를 복잡하게 뒤엉켜 놓았다.


  복잡한 매듭을 풀어보자. 무엇이 누군가를 빈곤하게 만드는가. 수없이도 던졌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명쾌하다. 한정된 자원 속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집어넣은 채, 더욱 열심히 빠르게 달리라고 명령하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그것이다. “세계시장의 수요 변화에 따라 생산인력을 밀가루 반죽처럼 떼어내”(221쪽)고, “결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의료서비스를 돈과 단단히 엮으려는”(184쪽) 현실과 “가만히 앉아 있어도 수억 원씩 쌓여가는 아파트 매매차익의 향연을 즐기고”(157쪽)있는 현실이 우리 삶 위에 포개어진다. 더욱이 신자유주의는 기회를 빼앗긴 수많은 을들의 싸움도 부추기며 서늘한 모습을 연출한다. 즉 “내 집도 없는 사람들이 똑같이 집 없는 사람들 짐을 막 끌어내는”(72쪽) 모습과 “일 안 하면 편하니까 일이 있는데도 본인들이 안 나가려고 해서 문제”(171쪽)라는 서로를 향한 비난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신자유주의는 빈곤마저 자원화한다는 사실이다. 전국의 정신 병원은 환자를 수급하여 지원금을 받기 위해 홈리스들을 강제 이송  입원시키고, 명의 도용 범죄 세력은 홈리스의 명의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홈리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사설 복지단체 마저 동네의 권력기구가 되어 간다.  복지기관에 대해 “보건복지부, 서울시, 기업, 일반시민들과 두터운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봉사 ‘권력 결합시키며, 봉사현장을 하나의 헤게모니 유지수단으로도 활용한다 지적하는 것처럼 말이다. 빈곤은 해결해야 하는 사회 현상임과 동시에, 신자유주의 사회를 유지하게 하는 자원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의적인 빈곤의 기준선을 걷어내고 바라본 빈곤의 원인과 현실을 서술했다.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타자가 겪는 고통의 전시 혹은 “우리 모두 빈곤 앞에 자유롭지 않다”는 다소 교훈적인 결론을 내릴 위험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빈곤을 설명하고 빈곤한 자들의 삶을 좇아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록의 목적은 “화자가 어떤 사회적 위치들을 거쳐 왔는가를 드러내고 그에 연관된 사회 구조를 파악하는 데 있”(224쪽)다는 최현숙의 말처럼,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굴레를 드러내기 위해 기록하고 써야 할 것이다.


  국가 주도의 신자유주의는 절망스럽게도 우리를 지금-여기에 다다르게 했다. 그것을 드러내기 위한 글을 읽어냈다. 절망과 우울감이 엄습하는 순간이지만, 그럼에도 절망할  없다. 윤리적 감각에서 비롯한 성찰에서 멈춰 있을  없다. 신자유주의가 빚어낸 사회의 ‘사각지대(死角地帶) 쪽방촌  마주침과 사회적 관계가 실제로 쪽방촌 사람들의 삶을 이어나가게 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다른 사회 가능성을 찾아내야 한다. 타자화와 낭만화의 위험에도 “지금 당장을 살고 나누는 대피소  사람들”(317) 삶을 기록하고 옮겨 적은 대가는 스스로의 변혁을 통해 가닿는 “각자의 안에서 시작해 바깥으로 여전히 치열하게 이어”(318) 연대의 싸움일 것이다.


정수남, 심성보, “홈리스스케이프와 공간통치의 동학”, 『기억과 전망』(33), 2015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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