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흥준 Feb 21. 2022

책 이야기_9

돌봄 선언/더 케어 컬렉티브/니케북스

텍스트의 선택에 있어 특정한 맥락이나 학문의 계보를 고민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돌봄이라는 단어를 여러 텍스트에서 찾아볼  있었다. 반복해서 등장하는 돌봄이란 단어를 마주할 , 이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여기기보다는, 시의적절하게 다가온 단어이자 깊게 파고들어야 하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보아야지, 생각하며 사두었던  케어 컬렉티브의 『돌봄 선언 : 상호의존의 정치학』을 읽고 써보려 한다. 더하여 비슷한 시기에 읽은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  서보경의 “서둘러 떠나지 않는다면 – 코로나 19 아직 도래하지 않은 돌봄의 생명정치 참고했다.


  3년째 지속되고 있는 펜데믹은 “모두가 안전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안전하지 못하다라는 일상적이고 정치적인 구호를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구호의 발호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취약성과 상호 돌봄이란 개념을 찾아낼  있다. ‘무리 이루며 우리가 함께 살아 있다는 사실은, 펜데믹의 상황 속에서 더욱 명징하게 드러난다. 명확하게 드러난 사실 속에서 우리는 나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허나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이들의 존재감을 느끼고, 이들과 긴밀히 연결되어있음을 느낀다. 다시 말해 “우리는 타인의 숨결과 살갗이 닿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세계에서 살고 있다


  긴밀한 연결은 각자의 취약함에서부터 비롯된다. 쉽게 으스러질지 모르는, 그렇기에 타자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여러 겹의 보호막을 쳐야 하는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연결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회적 연결 속에  누구도 예외는 아니다. 펜데믹의 시간 속에서 삶의 취약함과 육체의 유한성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면,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 “아프고 늙고 의존하는 몸으로 사는 것이 가능할  아니라 의미 있는 사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짧게 말하면 ‘돌봄사회일 것이다.


  더 케어 컬렉티브는 책을 통해 ‘돌봄’ 사회로의 전환과 전환 속 정치의 역할에 대해 서술한다. 먼저 그들은 ‘돌봄’을 “상호적 역량이자, 복지와 번영하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활동”(17쪽) 이라고 정의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가까이에서 수행하는 신체적 정신적 돌봄에 대한 개념에서부터 돌봄 인프라와 돌봄 정치의 본질을 이론화하는 것을 거쳐, 낯선 이와 거리가 먼 타인에 대한 돌봄을 개념화하는 것까지 오가는 작업”(48쪽) 일 것이다. 허나 신자유주의 시대 속 돌봄은 정치와 사회의 역할이 아닌 개인의 윤리와 시장의 몫으로 여겨져 왔다. 돌봄의 가치는 시장화 되었고, 더하여 아픈 몸은 생명 자본의 일부로서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자원’ 화 되었다.


  이러한 시장화와 자원화에서 벗어나, 돌봄의 사회화를 통해 돌봄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성 원칙이 되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그렇기 위해서 시선을 “가정에서 친족, 공동체, 국가, 지구 전체를 포함한 모든 영역”(41쪽)으로 돌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이 부분에서 에이즈 활동가 더글라스 크림프의 ‘난잡한 돌봄’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서 난잡함이란 “게이들이 서로에 대해 친밀감과 돌봄을 나누는 방법을 다양화하고 실험하는 의미”(81쪽)로 쓰였는데, 더 케어 컬렉티브는 난잡함을 “더 많은 돌봄을 실천하고 또 현재 기준에서는 실험적이고 확장적인 방법”(82쪽)이라고 의미화한다. 이들의 개념에 따르면, 우리는 난잡한 돌봄을 통해 “가장 가까운 관계부터 가장 먼 관계에 이르기까지 돌봄의 관계를 재정립”(81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계가 재정립될  “역사적으로 가장 소외되었던 이들이 우선시되고, “국가 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이 돌봄을 실천하고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지  있는 사회로 우리 사회는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는 이러한 변화를 추동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 경제학자 낸시 폴브레는 ‘보이지 않는  아닌 ‘보이지 않는 심장 생각해야 함을 강조한다.  “돌봄과 연민의 힘이 시장화된 개인의 이기심보다 항상 앞서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143) 말일 것이다. 시장의 원리로 해결 불가능한, 적절히 배분되지 못한 사회적 희소가치를 적절히 배분하는 . 그럼으로써 각자의 취약성을 바탕으로 서로가 상호의존하며 살아갈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이 정의고, 정치의 역할일 것이다.


  위의 문단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고 싶었으나, 현실의 정치와 선거가 눈에 들어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코로나 19는 우리에게 돌봄이란 개념을 안겨 주었는데, 선거판 어디서도 ‘돌봄’ 이란 단어를 외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 이재명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돌봄의 국가 책임제를 공약으로 내세우긴 했으나, 주요 토론이나 유세 연설에서 ‘돌봄’ 이란 단어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아쉬울 뿐이다.


  더군다나 돌봄과 연대와 공존이 있어야 할 자리에 혐오와 분열과 음모란 단어가 채워졌다. 조금은, 아니 매우 슬프고 두렵다. 허나 아래의 문장을 찾아 읽고는,


“21세기 들어 강도를 더해가는 혐오 현상은 근대의정치적 프로토콜을 정상 패러다임으로 전제하면서 하나의 병리적 현상으로 간주되는  결코 온전하게 이해될  없다. 오히려 현재의 혐오 혹은 음모론의 발호는 정치적인 것의 표지와 범주와 개념이 스스로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태로 파악되어야 한다…21세기의 혐오와 음모 정치를 19세기 이래의 수많은 집단 학살의 범례를 통해 하나의 계보로 이해할 ,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현상을 예외가 아니라 상례로 이해할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김항, “혐오,음모, 그리고 내전-집단 학살의 패러다임과 정치적인 것의 상황


그럼에도 정치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다. 왜냐하면, 역사적 계보 속에서 혐오와 음모와 내전이 계속해서 등장해왔으며, 동시에 그것들을 거쳐 지금 - 여기에 우리가 다다랐기 때문에. 다시 말해 그것들을 이겨 왔다는 .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금 맞닥뜨린 지금의 혐오를 또다시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있다는 . 우리는 그럼에도 진보하여 “망가진 세계에서 분노하고 사랑하여 새로운 무언가 되어갈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본다.




큰따옴표 안의 구절은 


더 케어 컬렉티브, “돌봄선언 : 상호의존의 정치학”


김영옥, 이지은 외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


서보경, “서둘러 떠나지 않는다면 – 코로나 19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돌봄의 생명정치


 인용하였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책 이야기_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