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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흥준 Jan 27. 2022

책 이야기_8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박보나/한겨레출판

정치와 예술을 좋아한다. 정치의 예술화와 예술의 정치화로 일컬어지는  개념의 연관성을 차치하고서도 좋다(이제 정치는 좋아했다로 변경해야겠지만) 세상을 바꿀  있는 잠재력을 내재하고 있는 것이 정치와 예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정치란 고전적인 의미에서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 아니라, 보편적이고 완전하다고 여겨지는 상태에 균열을 가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균열에서부터 오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것에 대한 위와 같은 정의를 전제한다면, 예술은 정치와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분명히도 예술은 우리에게 일종의 울림-혹은 균열을 선사하기 때문이다.(물론 ‘정치라는 단어 자체가 갖는 다의성으로 인해, 정치적인 것의 모호성은 여전히 남는다)


 하여튼 나의 정의에 있어서 예술과 정치는 긴밀하다. 또한 예술이 자본과 권력의 지배관계에서 밀려난 것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다루기를 바란다. 허나 지금껏 예술은 꽤나 나의 바람과는 다른 길을 걸어오기도 하였다. 존 버거가 “어떤 시기든 예술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에 봉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유럽의 화가들이 돈 많은 자본가 계층을 위해 그렸던 그림들이 지금껏 명작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럼에도 예술은 매력적이다.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들리게 하거나, 밀려난 자들을 소환했던 예술의 계보는 분명하게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보나의 『이름 없는 것도 부른다면』은 이러한 계보 속의 예술을 찬찬히 돌아본다. 작가는 우리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타자들을 다루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즉 “우리가 함부로 밀어낸 다양한 존재들을 하나하나 부르는 미술작가들의 작업을 넓게 읽고 사회와 유연하게 연결시키”(8쪽)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박보나가 소개하는 14개의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지미 더럼과 주마나 에밀 아부드의 작품이었는데, 자기 기술적인 예술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지미 더럼은 인디언 출신의 작가라고 알려져 있으며, 원주민의 형상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허나 흥미로웠던 점은 그가 스스로 인디언 정체성을 번복하며, 자신을 인디언 작가라고 부르지 말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것은 더럼의 작품과 연결될 때 매우 흥미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는 인디언 형상을 여러 피부색으로 칠하고, 자신의 취향을 형상 위에 낙서하고, 성기 부분을 노란색으로 강조하는 <자화상> 이라는 작품을 발표한다. 이는 어쩌면 “미국 원주민이 여러 인종과 문화가 뒤섞인 혼종적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고, 백인들이 허락하고 대상화하는 뻔한 원주민의 굴레에서 벗어나 개별적인 개성을 가진 개인으로 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49쪽) 작업인 것이다.


 주마나 에밀 아부드는 어떨까. 그녀는 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 작가이다. 그녀는 빵 조각을 남겨서 집으로 돌아가는, 마치 헨젤과 그레텔을 연상시키는 작업과 빈 석류 껍질에 석류 과육 알갱이를 하나하나 꽂는 작업을 선보인다. 이러한 작업은 그녀가 가진 국가 및 지역적 역사성과 연결될 시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된다. 즉 팔레스타인이라는 고향을 잃은 상실과 비애의 감정에 기초하여, 빵 조각과 석류 알갱이는 제자리(혹은 집)으로 되돌아가고픈 의지를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두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예술 장르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데, 나는 이 점이 예술이 가진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한다. 즉 예술은 자기 기술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에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하여 예술은 마땅히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놓을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이 그러한 ‘장’ 으로 활용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어 그 장에 본인의 이야기를 내어놓을 것이다. 다양한 ‘나’ 가 예술의 장에 소환될 때, 우리는 다른 방식의 상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옆을 바라보는 상상이 가능해질 것이다. 즉 “세상의 모든 존재에 귀 기울이며, 서로를 해치는 모든 사악한 구조에 등을 지고서 옆으로 뻗어나가는 대화”(7쪽)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옆을 보는 상상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에 남아돌거나 소외되어도 괜찮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8쪽)는 정언과 같은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술을 통해 옆을 상상하고, 상상을 통해 균열을 발생시키고 변화를 추구하며 그것은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지극히 뻔한 이야기로 소중한 이야기들을 요약해버렸지만,

우리의 존재가 서로와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금의 시간에, “폭력적인 속도와 착취의 구조에서 벗어나 한껏 반짝”(172쪽)이고 싶다면 철 지난 것처럼 여겨지는 윤리적 담론을 계속해서 꺼내들 수밖에 없는 일 같았다.(이런 이야기는 꼭 개인적이고 윤리적인 담론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 이제는 다른 끝이 등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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