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의 일기 1
나는 싱크대 문짝을 텅 소리가 나게 닫는다. 그렇지 않아도 삐그덕거리던 문짝이 내가 함부로 닫는 바람에 더욱 삐딱해져서 곧 떨어질 것처럼 보인다. 다시 한번 문짝 두 개를 마주 잡고 조심해서 닫아 보지만 덜그렁거리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조금 난감해져서 진작에 고물상에 버렸어야 할 낡은 싱크대의 헤벌어진 문짝을 멍하니 바라본다. 저녁에 엄마가 돌아오면 또 이렇게 잔소리할 게 뻔하다.
-쥐새끼를 탁앴(닮았)시까? 으짠다고 암것도 없는 싱크대 속은 뒤지느라고 날마둥 문짝을 간당간당 허게 만들까잉! 그나마 실낵키(실낱같이) 맹키 억지로 붙어있는 문짝, 아구를 잘 맞춰서 닫어놔야 하루라도 더 쓸 텐디, 이놈 지집아야! 너 또 싱크대 문짝 손댈 것이여! 그나마 마저 떨어지면 니가 새것으로 사 놀 것이냥께. 그러면서 엄마는 무지막지한 그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내 등과 엉덩이를 턱턱 때릴 게 틀림없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하는 행동이란 매 번 똑같다. 침침하고 곰팡내가 나는 부엌 이곳저곳을 하릴없이 뒤지고, 냉장고 문을 서너 번 열었다 닫았다 하고, 결국 오기가 뻗치는 심정이 되어 목이 마른 것도 아닌데 맹물만 벌컥벌컥 마신다.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이나 쌕쌕이 깡통 한 개라도 들어있다면 내가 싱크대 문짝과 실랑이할 일도 없지. 하지만 화가 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냉장고에 훼미리 주스나 치즈 과일 같은 음식이 들어있다면 그건 우리 집이 아닐 테니까.
나는 금세 잊어버리고 냉장고에 키를 맞춰 본다. 키라도 빨리 자라줬으면 좋겠다. 냉장고에 내 키를 맞대 보는 버릇이 생긴 것은 우리 가족이 서울로 이사 오고 나서부터다. 지난 해에 서울 학교로 전학 온 첫날, 그때 나는 국민학교 2학년이었다. 남의 자리에 잘못 와서 앉은 사람 마냥 어색하고 불편해서 나는 몸을 비비 꼬았다. 반 애들은 방금 로션을 바르고 나온 것처럼 반질반질한 얼굴에 키도 다들 나보다 큰 것 같았다. 또래보다 작고 그다지 예쁘지도 않은 나는 뭔지 모르게 부끄럽고 주눅이 들었다. 몇몇 애들은 내게 호기심을 보이며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물었다.
- 어느 시골에서 왔니? 너네 집에 강아지도 있어? 개구리는 몇 마리 잡아 봤는데? 나는 애들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 주었는데 한 가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엄마가 붕어빵 장사한다는 말을 해버렸던 것이다. 뭐 어차피 알려지기야 했을 테지만. 짓궂은 남자애 녀석들은 나를 더 화나게 했다.
- 우리 동네 붕어빵에는 붕어가 안 들어 있는데 너네 엄마 붕어빵에는 진짜 붕어가 들어있니?
한 녀석이 내 기분을 건드리면 다른 녀석들은 한 술 더 뜨며 이기죽거렸다.
-너네 집에는 붕어가 많겠다 헤헤. 우리 어항에 갖다 넣게 붕어 한 마리만 줄래?
이렇게 야살들을 떨어대며 창피를 주었다.
전학 온 지 일 년이 넘었는데 나는 아직 친한 애가 없다. 속상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나중에라도 나 같은 애를 좋아하는 애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고, 고급 학용품을 쓰고, 메이커 운동화를 신고, 그러면 친구들이 많아진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것들 중에 나는 한 가지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렇더라도 서울 애들이 부럽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집 형편을 아주 잘 알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 키가 닿으려면 큰 베개 한 개를 올려놓고도 모자랄 것 같은 그리 크지도 않은 냉장고 앞에 나는 털썩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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