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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백수 김한량 Jan 02. 2024

더 느리게 걷기

D+61 북쪽길 20일 차 

✔️루트 : SantillanadelMar - Cóbreces (약 13km)

✔️걸은 시간 : 4시간 36분




누군가 이 알베르게는 아침에 늦게 나가도 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꼭 그 말 때문은 아니지만 조금은 더 피로를 풀고 싶었기에 마음 편히 잤다. 청소하시는 분이 방문을 두드렸다가 내가 자는 걸 보고 나갔다. 휴대폰을 보니 9시였다. 아직 피곤해서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10시였다. 청소를 해야 해서 나가야 한다고 했다. 체크아웃 시간이 몇 시냐 물었더니 9시라고 했다. 배려해 주신 것에 감사했다.


짐을 챙기고 주방에 가서 가방에 있던 오믈렛을 먹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양말을 신었다. 나갈 마음이 없는 사람처럼 이 모든 걸 아주 천천히 했다. 알베르게에서 나오자마자 생리대를 사기 위해 슈퍼에 갔다. 슈퍼에 간 김에 요거트와 견과류 등을 샀다. 산 것들을 가방에 공간이 없어 안과 밖에 쑤셔 넣어야 했다. 그거 좀 들어갔다고 가방이 금세 또 무거워졌다.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가방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슈퍼 앞에서 요거트 두 개를 먹어 치웠다. 


100m도 걷지 못하고 한 액세서리 샵에 눈을 빼앗겼다. 디자이너가 직접 운영하는 샵이었는데 모든 액세서리가 예뻤다. 하나하나 다 귀에 걸어봤다. 여러 샵을 구경하다가 이 작은 마을에서 1시간 넘게 머물렀다. 마을에서 나오자마자 너무 피곤했다. 우비를 돗자리처럼 깔고 슈퍼에서 간식들을 먹었다. 가진 요거트를 다 비우고 나니 배가 불러 졸려 왔다.




악세사리가 하나 같이 다 예뻤다
하... 걷자



끌고 없고~ 사람도 없고~




부럽다 너네들



 펼쳐진 거리를 걷는 둥 마는 둥 천천히 걸었다. 진짜 피곤하고 걷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5km쯤 걸었을까 언덕 끝에 성당 하나가 보였다. 역시나 문은 닫혀 있었다. 성당 앞 정원에 우비를 깔고 드러누워 낮잠을 잤다. 잠깐이지만 눈을 붙이고 나니 조금 힘이 났다. 오후가 되어서야 속도를 내어 걷기 시작했다.



낮잠스팟 


며칠 전부터 질문이 하나 생겼었다. '만약 여기가 제주도 올레길이었다면 나는 중간에 집에 돌아갔을까?' 오늘 확실히 알았다. 여기가 집과 가까운 올레길이었으면 집에 돌아갔을 것이다. 걷다 보면 저절로 체력이 오를까도 했지만 오히려 포르투갈길 때보다 더 못 걷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오후 5시가 넘으니 갑자기 에너지가 올라오며 걸을만했다. 늦은 시간까지 걷고 싶었지만 알베르게 때문에 걱정이 됐다. 알베르게 때문에 일찍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걷다 보면 이게 Camino de Santiago인지 Camino de Albergue인지 헷갈린다. '밤이고 뭐고 오늘은 한번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걸어 봐?!' 싶은 마음이 올라왔다.


화장실을 오래 참았기에 눈앞에 보이는 카페에서 걸음을 멈췄다. 오픈 시간 전이라 조금 기다렸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쉬었다. 일지를 쓰며 1시간 정도 보내다가 저녁까지 시켜버렸다. 밥을 먹고 나니 해도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그냥 이 마을에서 묵기로 했다. 왔던 길을 조금 되돌아 가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했다.





알베르게가 생각보다 너무 좋았다. 특히 침대가 마음에 들었는데 앉아도 매트리스가 푹 꺼지지 않는다! 깨끗한 수건과 이불도 줬다. 정원의 풍경이 너무 예뻐 따듯한 레몬차를 마시며 해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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