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2 북쪽길 21일 차
✔️루트 : Cóbeces - San Vicente de la Barquera (약 25km)
✔️걸은 시간 : 6시간 40분
너무 잘 잤다.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가 느껴졌다. 오늘처럼 상쾌하게 일어난 게 얼마만이지? 1층에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모든 알베르게처럼 식빵에 주스, 커피였다. 오늘도 식빵 네 조각으로 배를 채웠다. 오늘은 왠지 40km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컨디션도 좋겠다, 알베르게 못 구할까 봐 무서워서 더 걷고 싶어도 못 걷던 설움을 오늘 폭발시키리라. 길바닥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어디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걸어보자.
오늘은 투두리스트가 있었다, 오늘은 Comillas라는 도시를 지나가는 날이었는데 이 도시에는 가우디의 건축물 'El Capricho de Gaudí'가 있었다. 한 부호의 여름별장으로 지어진 곳이라고 한다. 나는 크게 건축물에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가우디 작품이니 이번 기회에 꼭 보고 싶었다.
마을에 도착해 일단 밥을 먹었다. 오늘 오래 걸으려면 잘 먹어 둬야겠다 싶었다. 많은 식당에서 ‘Menu del Dia(오늘의 메뉴)를 파는데 제일 맛있어 보이는 식당으로 찾아 들어갔다. 영어 메뉴판을 주었지만 먹어 본 적 없으니 뭘 골라야 할지 몰라 점원에게 추천받았다. 추천받은 메뉴 중 Grilled Hake라는 게 있었는데 hake가 육류 부위 이름인 줄 알고 시켰는데 전어 같은 작은 생선이 나왔다. 간에 기별도 안 갔지만 맛은 있었다.
밥을 먹고 바로 El Capricho de Gaudí로 향했다. 오늘 많이 걷고 싶었기에 밖에서 사진만 찍을까 하는 생각에 입구를 기웃거렸지만 큰 정원 때문에 건물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입장권을 사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외관을 처음 봤을 땐 헨젤과 그레텔 과자집을 연상시키는 화려함에 ‘귀엽네~’ 싶었다. 그런데 이 건물의 진가는 화려한 외관이 아닌 내부에 있었다.
건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벽 면 하나, 타일 하나까지 많이 고민했다는 게 몸으로 느껴졌다. 모든 공간의 천장도 다 달랐다. 침실이었다는 공간에 있던 평상에 누워 봤다. 와… 잘 때 이런 천장을 보면 없던 악상도 떠오르겠다 싶었다. 나는 금방 이 공간과 사랑에 빠졌다. 정말 슬프게도 정작 이 집의 건축을 의뢰한 막시모는 이 집에서 4주밖에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부호면 뭐 해. 역시 건강이 최고다.
아침의 포부와는 다르게 집을 구경하다 보니 4시가 넘었다. 이후 마을들에 알베르게가 없었기에 더 걷는 게 맞나 잠시 고민했다. 그 사이 몸은 이미 마을을 떠나고 있었다.
6시가 넘어가자 오늘 밤 잘 곳을 못 찾을까 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재생했다.
’아무도 없어. 다 의미 없어. 오늘 밤은 삐딱하게~‘
해지는 풍경을 감상하기에 딱 좋은 바다와 초원이 펼쳐진 길이었다. 너무 신이 났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걸으니 발걸음에 리듬이 생기기 시작하며 어느 순간엔 폴짝폴짝 뛰며 걸었다. 역시 나는 동틀 무렵보다는 해 질 녘이 좋다. 알고리즘은 무섭다. 다음 곡은 빅스의 ’다칠 준비가 돼 있어’였다.
어제까지 집에 가고 싶을 정도로 힘들더니 뭔가 체력에 각성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재밌게 걸었던 하루다. 아직 다칠 준비는 안 되어 있어서 9시 30분쯤에 도착한 마을에서 머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