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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오이 Nov 09. 2023

 V라인이 턱선이 아닌 쇄골에 붙으면 생기는 일

어깨운동에 관하여

어깨는 일자라인이 제일 예쁘다. 일명 직각어깨라고 이런 어깨를 가진 미남·미녀들이 드레스 코드가 좋다. 시원하게 뻗은 어깨라인은 목선을 더 고상하고 품위 있게 만든다.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도 난 태극기보다 담담하게 뻗은 그 어깨라인에 먼저 눈길이 갔다. 조명빛에 살짝 비친 후면삼각근의 명암은 고된 훈련이나 중압감보다 그것이 쌓아 올린 오랜 시간의 축척으로서 육체의 결 보여주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상흔 같아서 나는 그녀의 목이 아니라 어깨에 메달이 걸렸다고 생각했다.


어깨라인은 쇄골모양에 의해 결정된다. 쇄골이 일자로 쭉 뻗어야 직선어깨가 나오는데 나는 쇄골이 V자로 꺾여서 어좁이가 됐다. 목선에서 어깨 라인 끝까지 채 한 뼘이 안 되는 것 같다. 라인이고 뭐고 몸통에 바로 어깨가 박힌 꼴이다. UFC 선수들에게도 이런 체형이 곧잘 뵈는 이런 어깨는 타격에 유리하다. 좁은 어깨를 바탕으로 가드를 두툼하게 두르고, 그 사이로 맹수처럼 노려보다 카운터를 날린다.  공무원이니 민원인을 향해 카운터를 날렸다간 코너 맥그리거보다 유명해질지 모른다. 내 V라인은 어디까지나 공손과 친근, 미소의 응대로만 기능해야 한다. 어쩐지 좁은 어깨가 더 수그려지는 느낌일세.


한때는 어깨운동에 종일 매진하기도 했다. 성골이나 진골은 못돼도 환골탈태의 옷깃이라도 잡아 보고 싶은 마음에  3분할 운동에 어깨만 따로 추가해서 4분할 운동을 만들었다. 어깨는 소근육군에 속해서 초심자들에겐 별로 권하지 않는 부위다. 그런 작은 근육군에 신경 쓸 바에야 그 시간에 가슴이나 하체, 등 같은 대근육군을 먼저 발달시키는 것이 성장에 훨씬 더 효율적이니까. 하지만 그렇다 한들 잔뜩 펌핑된 가슴근육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어깨근육이 이상하게 눈에 띄는 날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그럼 별수 없이 어느 날은 '어깨운동을 해야겠어' 가 된다. 근데 어깨운동이 얼마나 어렵냐면 곧잘 난 이렇게 비유하곤 한다. 


'귀 근육을 키워야겠어. 제일 먼저 뭘 해야 하지?

'.....?'

'귀를 먼저 움직여야지'


그렇다. 특정부위를 키우려면 먼저 그 근육을 각성시켜야 한다. 귀를 먼저 쓸 줄 알아야 거기에 벨을 걸던 벨을 걸던 하지. 안 그래? 그럼 귀를 움직여봐. 입과 볼따귀를 잔뜩 씰룩거려 보라고. 아님 두피를 움찔움찔해서라도 어쨌든 귀를 움직여 보라고. 안돼? 그럼 넌 영원히 귓불의 광배를 펼칠 수 없어.


처음 어깨운동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나도 가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어깨 삼각근들을 다루지 못하니 어깨운동만 하면 괜히 목덜미만 뻐근하고 승모근에 알이 . 어깨운동을 했는데 다음 날이면 방금 경추수술을 마치고 나온 환자처럼 목을 가누지 못했다. 그래도 전면 삼각근에는 무게가 걸리는 느낌이 났는지 나는 그 자극을 면과 후면에도 옮겨 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던 것 같다. 손목을 살짝 꺾어 주전자 따르듯 리프트도 해보고, 전완 대신 팔꿈치와 상완에 무게를 걸고 승모를 잠그는데 신경을 써 보기도 했다. 한 번은 스미스 머신에 무게를 잔뜩 걸고 비하인드넥 프레스를 하다 갑자기 견갑 주변이 화한 느낌이 났다. 마치 맨소래담을 잔뜩 바른 느낌이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한 어깨와 팔꿈치가 가동범위를 넘어서며 견갑에 담이 내린 것이다. 한 3초쯤 담이 실시간으로 번져가는 것을 온 신경으로 감각했다. 그리고 한 달여간 어깨를 못썼다. 고개도 못 돌리고 오른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했다. 난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타자를 치며, 한편으로는 애처로운 상사의 눈총을 감내해야 했다. 어깨는 컨트롤하기도 힘들고, 부상도 당하기 쉬운 부위다. 신체의 가장 외곽에 붙어 있어서  어깨를 생각할 때마다 국토 끝 독도나 백령도를 떠올린다. 악전고투에 외롭고 취약한 부위다. 운동이 끝나면 언제나 양손을 번갈아 교차해서 어깨 마사지를 해준다. 셀프 마사지라 시원한 맛은 덜하지만 그래도 손수 이런 대접을 받는 다른 운동 부위는 없다. 할 수만 있다면 한약 다리듯 정성스레 자극을 때려 넣어 어깨 끝까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이패스권이라도 끊어주고 싶다. 무럭무럭 자라만 준다면야. 근데 넌 왜 이렇게 안 크니? 어렸을 때는 옆집 영신이보다 내 어깨가 좋았단 말이야. 돌팔매도 내가 제일 멀리 던졌지.


어깨와 관련해선 나만의 미적 기준이 있다. 절대 어깨보다 큰 상완을 만들지 말 것. 어디까지나 봉긋한 어깨라인을 따라 그보다 작은 상완이 타고 내려와야 한다. 어깨 뽕을 넘어서는 상완근은 징그럽다. 그것은 미적 균형을 파괴한다. 어깨보다 큰 상완이라니. 몸통보다 큰 머리를 얹어 놓고 내 눈사람이 근사하다고 자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흉근보다 큰 전면 삼각근도 난 보기 흉하다. 몸통에서 멀어질수록 가늘어지는 게 순리다. 허벅지보다 큰 종아리를 어디다 자랑할 것인가.


 내가 웨이트 훈련을 사랑하는 이유는 육체라는 바가지에 마치 약수를 뜨듯 경건히 생의 활력을 담아내는 행위라 여기기 때문이다. 알싸하고 때론 피맛이 돈다.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나란 존재감이 반짝 해상도를 높이는 순간이다. 손가락 사이로 새는 투명한 시간들을 꽉 움켜쥐는 확신감도 좋다. 식구들을 먹여 살리느라 가장의 어깨가 무겁다는 표현은 진부하다. 적어도 내겐 아무 감흥이 없다. 그런 표현은 공허할 뿐이다. 그보다는 무게 60킬로짜리 원판을 어깨에 얹고 질질 는 내가 훨씬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내가 애쓰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까. 나는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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