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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Jun 14. 2023

[소설] 운명과 우연

1탄. 낯설지 않은 그 남자

당신과 나는 운명인가요? 아니면 우연일까요?


골목 밖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에 눈을 뜬다. 목이 늘어난 반팔티와 무릎이 나간 파자마를 입고 있는 여자는 핸드폰 액정을 쳐다본다. 오후 5시, 직장인들이 퇴근 한 시간을 남겨두고  계속 시계를 쳐다보는 시간이다. '오늘 소개팅 나가지 말까?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을 것 같은데...'


어젯밤 '우리 회사에 불합격하셨습니다.'는 이메일을 받고 소맥을 끝도 없이 들이켰던 그녀는 지금 고민 중이다. 앞으로 한 시간 삼십 분 후 절친 수영이와 그녀의 남자 친구가 마련한 소개팅이 있다.

첫 만남에 지각을 할 바에야 차라리 약속을 미루는 게 낫지 않을까? 벌써 수십 차례 탈락 메일을 받은 그녀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기 싫다. 캄캄한 방에서 노트북으로 미뤄났던 미드 'CSI 과학수사대' 나 밤새도록 보고 싶다.


그러나 친구 중에서 가장 기가 센 수영이에게 욕을 한 바가지 듣는 건 더 무섭다. 후다닥 준비를 서두른다. 드라이클리닝 후 고이 모셔 놓은 미니 원피스를 꺼내 입고 마스카라로 한껏 속눈썹을 올린 후 코랄색 립스틱을 바른다. 동생의 보석함을 몰래 열어서  진주 귀걸이도 낀다. 이만하면 됐지? 가서 맛있는 거 먹으며 스트레스나 풀고 와야지.


수영이 커플이 벌써 몇 번 소개팅을 해줬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마음에 들지가 않았다. 이번에도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놈이 그 놈이지 뭐.'


지하철을 타고 도착한 시각은 약속 시간보다 30분 늦은 7시 5분. 수영이는 전화를 해서 왜 이렇게 늦게 오냐고 욕을 한다. 우리는 벌써 들어와 앉았다며 빨리 오라고 안절부절이다.

"미안해. 낮잠 자다 이렇게 됐다. 알람 맞췄는데 끄고 다시 잤네. 그 오빠 화 많이 났쟤?"

"몰라. 빨리 온나! 근데 얼굴은 좀 못 생겼더라. 성격은 좋은 것 같으니까. 얼굴 기대는 하지 말고 알았쟤?"

핸드폰 사진은 믿을 수 없어서 소개팅 전 일부러 얼굴을 보지 않았다. 얼마나 못 생겼길래 얘가 이렇게 보기도 전에 밑밥을 깔지? 맛있는 거나 먹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소개팅 장소는 서면 유흥가거리에 위치한 주점으로 정했다. 둘이서 어색하게 카페에서 만나기보다는 2대 2로 보는 게 빨리 친해질 것 같다는 소개팅 남의 제안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친구 커플만 있고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내 너무 늦었다고 화나서 집에 간 거가?"

"아니다. 오기 전에 머리랑 옷 다시 본다고 화장실 갔다."

"그래? 못 생겼다니 별 기대 안 하는데ㅋㅋ 하루종일 잔다고 암것도 안 먹어서 배고프다. 뭐 시킬지 보자."

"누나~그 형 진짜 착하다. 그리고 엄청 웃기다. 누나가 재미있는 남자가 이상형이라며 좋다고 했잖아."

친구의 연하 남자 친구가 그 사람의 칭찬을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네가  착하다며 소개해준 형들이 한둘이냐? 아무리 착해도 양쪽 눈썹이 붙은 사람을 소개하는 건 아니지 않나? 진짜 최악이었다.' 예전 소개팅 남 얼굴이 떠올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데 그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젤을 발라 잔뜩 새운 앞머리에 여드름이 난 주먹만 한 얼굴, 180 정도 되어 보이는 호리호리한 몸매, 그리고 왠지 낯설지 않은 눈웃음이 그녀의 마음을 흔든다. '뭐지? 완전 고등학생처럼 생겼네. 서른 살 넘었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더 누나 같이 보이는데.. 근데 얼굴이 왜 이렇게 낯이 익지? 어디서 봤더라...'

"안녕하세요? 서우영입니다."

"네 저는 양아린이에요. 많이 기다리셨죠? 늦어서 죄송해요."

목소리마저 어린이처럼 앳되고 혀가 살짝 짧다. 너무 귀엽잖아? 못생긴 귀요미네. 여자는 오랫동안 못 느꼈던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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