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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Jul 15. 2023

[ 소설 ] 운명과 우연

5탄. 흩날리다

우영과 처음으로 다툼을 하고 헤어진 후 일주일이 지났다. 도 아린처럼 회피주의자였다. 화가 나면 입을 닫아버리고 동굴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서로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한없이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냉정하고 서늘했다. '내가 너무 했나? 무턱대고 의심해서 화난 거는 이해하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잠수를 탄다고?'

답답한 아린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내 반쪽'이라고 저장해 놓은 우영의 전화번호를 누를지 말지 망설였다. SNS를 하지 않는 남자라서 실시간으로 그의 상황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야! 답답함과 짜증,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나마 카톡 프로필이 전부였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앱을 켜서 사진이 바뀌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그대로였다. 두 사람이 함께 간 진해 군항제에서 우영이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아린이를 찍은 사진이었다.

여자5개월의 연애 기간 중 그곳이 가장 좋았다. 역사가 오래돼서 다른 곳보다 꽃들이 크고 풍성했고 양 옆으로 우거진 나무들이 맞붙어서 벚꽃터널을 만들었다. 모든 것이 눈부셨다. 연한 핑크빛의 휘날리는 벚꽃, 깍지를 낀 남녀의 두 손, 아린이의 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서 귀 뒤로 넘기는 우영의 크고 따뜻한 손길, 흩날리는 눈꽃잎을 맞으며 남자의 몸 개그에 까르르 웃어대는 아린의 유쾌한 웃음소리들이 세세하게 그려졌다.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를 아린은 처음으로 느꼈다. 우영이 그리웠다. 몇 번씩 깨는 노루잠을 잤던 그녀는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 후 그의 팔베개에서 깊은 단잠을 잤었다. 다시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고  번의 신호음이 가고 나서야 그가 받았다.

"여보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아린은 수화기 너머의 음성을 기다렸다.

"그래.. 잘 지냈나?" 남자의 무뚝뚝한 대답에 울보는 또 목이 메었다. 사랑 앞에서 자존심 따위는 구겨진 채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오빠 진짜 너무 한다. 어떻게 그렇게 연락을 딱 끊을 수 있는데?"

"일하느라 조금 바빴다. 어딘데? 도서관이가?"

"아니. 내가 공부가 되겠나? 집이다. 보고 싶어서 전화했다. 오빠는 내 안 보고 싶었나?" 운명론자에게 밀당 따위는 없었다. 사랑에도 갑을관계가 있다면 그녀는 을이 분명했다.

"내 5시에 퇴근하니까 마치고 보자. 데리러 갈게." 보고 싶었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데리러 온다는 말에 섭섭함은 사라졌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 여전히 우영에 대한 의심은 그대로였고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불안감이 사라질 듯했다.

"아니. 내가 오빠 데리러 갈게. 5시까지 회사 정문에서 기다릴게."

"그래. 그럼 그렇게 해라." 남자의 단호함에 아린은 적잖이 놀랐다.


도서관에서 회사까지 가는 길이 험난해 오지 말라고 할 줄 알았다. '보기보다 뒤끝이기네. 얼굴 보면 괜찮아지겠지.' 스스로를 달래며 거의 2시간에 걸려서 우영의 회사 앞에 도착했다. 같은 부산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낙동강 건너편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처음 소개팅 하던 날 입었던 원피스 차림에 친구에게 빌린 명품 가방을 들고 긴장된 마음으로 우영을 기다렸다. 혹시라도 예나라는 여자 후배를 만나면 썩소를 날리며 밟아줘야지 다짐했다. 5시 정각이 되자 사람들이 쏟아져서 명동 한복판에 있는 것 같았다. 수백 명은 될 듯한 사람들 틈 속에서 눈동자를 굴리며 단번에 그를 찾아냈다. 그리고 우영이에게 헤드락을 걸며 키가 170은 되어 보이는 까만 단발머리의 여자도 보였다.


아린은 질투심으로 끓어올랐다. 우영의 어깨에 올라온 여자의 손목을 확 부러뜨리고 싶었다. 남녀사이에 우정은 존재할 수 없다. 언제든지 묘한 감정이 생길 수 있는 관계에서 아무렇지 않게 스킨십을 해대는 꼬락서니가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하하호호 웃어대며 걸어오던 두 남녀는 아린을 발견했다. 큰 키의 그녀가 머리를 찰랑거리며 성큼성큼 다가왔고 우영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천천히 뒤따라왔다.


“안녕하세요? 우영이 오빠 여자친구분이시죠? 저는 전에 통화했던 이예나 라고 해요.”

“아…네… 안녕하세요.” 하얀 피부에 쌍꺼풀이 있는 동그란 눈, 계란형 얼굴이 꽤나 미인형이었다. 그녀는 아린을 위아래로 눈동자를 굴리며 쓱 훑어보더니 알듯말듯한 눈웃음을 지었다. ‘뭐야? 비웃는거야? 눈빛이 재수없네.’ 무슨일이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에 우영이 말을 꺼냈다.

“오는데 시간 많이 걸리드쟤? 이 근처에 유명한 중국집 있는데 그거 먹으러 가자.”

“아~언덕에 있는 그 집? 거기 짬뽕 진짜 맛있잖아. 어제 술 많이 먹어서 해장해야 되는데 나도 같이 가도 되쟤? 괜찮죠 아린언니~~?”

‘언니? 언제 봤다고 언니래. 내 이름도 아네. 지 얼굴 믿고 애교질 해대는 거 진짜 꼴보기 싫다.’

아린이 대답을 하지 않고 우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예나의 눈길도 우영을 향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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