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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별곡 Aug 14. 2023

<소설> 운명과 우연

7탄 주선자는 죄가 없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친구의 흐느낌을 들으며 한창 종수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수영은 다음에 가자는 그를 달래서 아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난 친구는 시골집 소처럼 순하고 동그란 눈망울로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눈물부터 흘리는 친구였다.


고3 때 같은 반으로 처음 만나서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수영은 아린의 해결사 노릇을 했다. 아린이 친구들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쉬는 시간이고 점심시간이고 공부만 하는 모습에 모두들 그녀를 꺼려하고 재수 없어했다. 그러나 모임의 대장인 수영은 아린의 그런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아니면 축 쳐진 눈꼬리와 어리바리한 미소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녀를 모임에 합류시켰다.


"야!!  이따가 점심때 우리 쪽으로 온나. 이제부터 밥 같이 먹자."

차갑게 톡 쏘듯이 괜찮다고 대답할 줄 알았던 아린은 내심 기다렸는지 흔쾌히 승낙을 했고 그날 이후로 쭉 함께였다. 행동파 수영은 범생이 아린이를 야자를 째게 하고 영화관에 끌고 갔고 대학생이 돼서는 싫다는 그녀를 클럽에 끌고 갔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숙맥같이 살아서는 안된다는 게 그녀의 모토였다. 게다가 성인이 되어서도 변변한 남자친구도 없이 고시의 길로 접어든 친구가 안타까웠는지 끊임없이 소개팅을 주선했다.


아린의 동네에 있는 삼겹살 집에 도착한 그녀는 벌써 소주 한 병을 다 먹어가는 아린을 보고 경악했다. 마스카라는 번져서 엉망이었고 고이고이 아끼다가 빌려준 수영의 명품백에 삼겹살 기름이 튀는 게 보였다.

"야!!!! 이게 뭐고? 내가 귀하게 매고 다시 들고 오랬쟤?"

"야! 이 지지배야. 그게 지금 친구보다 중요하나?

니가 주선했으니 책임져라. 우영이 오빠한테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가시나 몰랐나?"

술에 취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 수영이를 원망하는 아린이었다.

"오빠가 일을 하니까 직장에 여자 후배 있는 거는 당연한 거 아니가? 니가 이해를 해야지. 맞쟤? 자기야?"

맞장구를 쳐달라며 화살을 남자 친구 종수에게로 돌리는 수영이었다.

"그렇지~ 우리 회사의 반이 여자다. 누나야. 그리고 우영이 형이 원래 사람이 좋아서 직장에 아는 동생들이 많다."  

수영은 종수의 발을 세게 밟았다. 굳이 그 말까지 왜 해서 불을 지르냐는 표정이었다.

"뭐? 오빠가 원래 아는 여자가 많다는 거가? 그럼 내가 최예나인가 최예영인가 그 가시나 말고 신경 쓸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네?"

"니도 대학 동기들 대부분이 다 남자들인데 사귀는 거 아니잖아. 그거랑 똑같으니 오빠야를 믿어라."

"니 지금 내 말고 오빠 편드는 거가? 무조건 내편 들어야 하는 거 아니가? 니가 최예나인가 그 지지배가 하는 꼬라지를 못 봐서 그런다. 내 눈에는 오빠 와이프나 전 여친인 줄 알았다. 마치 내가 오빠랑 바람피우는 불륜녀 같이 느껴지더라."

"워~워~ 누나 쫌 진정해라. 빈속에 술 많이 마셨네. 우리 수영이한테 꼬장 그만 부리고 형님이랑 헤어지게 되면 내가 더 좋은 사람 소개 해줄게."

"그러니까 종수 니 나보고 오빠랑 헤어지라는 거가?"

"양아린! 그 말이 아니잖아. 왜 우리한테 난리인데. 보자 보자 하니까 너무하네."

"몰라. 너네가 해결해라. 그 최예나라는 가시나 오빠한테서 떨어지게 만들어라."


소주 한 병에 정신이 나가 중국집에서 뒤집힌 속을 수영과 종수에게 화풀이하는 아린이었다. 괜히 그들이 원망스러웠다. 취업 준비생에게 쓸데없이 소개팅을 시켜줘서 헛바람만 들게 했다는, 모든 것을 그들 탓으로 돌리고 싶은 억지를 부렸다.

종수는 예나가 원래 직선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스타일이라 사람들 사이에 호불호가 강하다며 아린에게 웬만하면 만나지 마라고 했다. 수영은 별 도움이 안 된다며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종수를 타박했다.

아린에게 오빠가 나랑 결혼까지 생각한다면 아는 여자 후배들을 정리하는 게 좋겠다며 단호하게 이야기하라고 조언했다. 우영이 그렇게 하지 않고 오늘 같은 일이 계속 반복된다면 더 깊어지기 전에 헤어지는 게 맞다는 충고도 덧붙였다.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여사친을 쿨하게 인정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고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우영에 대한 감정이 짙어져서 헤어질 자신이 없는 마음에도 화가 났다.


아린이 대답이 없자 수영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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