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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원 Jun 22. 2022

난 서울이 싫다.

  빡빡하게 들어선 빌딩.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무수히 많은 인간들. 밤을 수놓는 젊은 거리의 화려한 네온사인. 이 곳은 서울이다. 난 서울이 싫다.

  화려함 뒤에 감춰진 도시의 공허함은 사람의 감정을 밑바닥 저변으로 끌고 내려간다. 빵빵- 클락션을 울려대는 차들이 도로를 질주하고, 나이대부터 성향 까지 천차만별인 사람들이 거리에서 침을 짝짝 뱉어대며 고성을 지르고 싸워댄다. 일을 마치고 퇴근 지하철에 올라탄 수 천명의 사람들 얼굴에는 찌든 세태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한국 최대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서울의 지하철은 퀄리티의 편차가 크다. 운이 좋으면 깨끗한 열차를 타지만, 운이 좋지 않으면 내 나이보다 오래 된 열차에 몸을 실어야 한다. 퇴근 인파가 풍기는 찌든 삶의 냄새는 덤이다. 돈 많은 인간들은 강남, 청담, 평창동, 명동에 있는 반짝거리는 보석같은 아파트에 살지만, 돈 없는 인간들은 불야성을 이루는 도심에 밀려 불규칙하게 촘촘히 도포된 서울의 빌라촌에 산다. 지하철에서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세태의 찌든내를 내뿜는 이들 대다수가 아마 열차에 내리면 그 곳으로 향할 것이다. 시끌벅쩍한 중심가에서 밀려난 쇠락한 자신의 집으로. 도시에서 소음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한국의 메갈로폴리스 서울에서는 이 모든게 극대화돼서 나타난다.
  
  서울의 중심을 이루는 곳에서 실거주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서울의 도심, 중심이라 불리우는 공간을 거니는 사람들은 나름 멋을 부리며 나왔겠지만, 종국의 그들은 도시의 향락에서 빠져나와 쇠퇴한 거리에 위치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야한다. 멋 부린 비싼 옷을 벗어 싸구려 실내복으로 환복하고, 번들 거리는 화장을 지우고, 바닥을 기어다니는 바퀴벌레를 손으로 잡고, 하수 시설이 좋지 않아 허구한 날 막히는 집 안 변기를 뚫으면서 자신의 현실을 인지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 그것은 여러 가지 형태로 분출되는데, 여기에서는 공간에서 나타난다. 서울은 공간이 주는 괴리감이 발현하는 정점인 곳이다. 상류가 있다면 하류가 있다. 모든 도시, 모든 공간이 그러하겠지만 서울은 더더욱 그러하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인간들은 치열하게 산다.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가기 위해. 마치 강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산란기의 연어처럼 말이다. 역류에 성공한 연어들이 극소수인 것 처럼, 신분상승에 성공한 서울 사람들 역시 극소수에 불과하다.

  서울의 웅장함과 화려함은 사람들의 환호와 함께 기분좋은 긴장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실상 그 속은 곪아있다. 나라 최대의 환락가, 유흥가가 결집해 있는 곳이 바로 서울 아닌가. 서울은 부유, 출세, 꿈의 상징인 동시에 타락의 상징이다. 성공과 쇠락을 동시에 가진 곳. 바로 서울이다. 서울에서 성공과 쇠락은 공존하지 않는다. 그저 그 선이 명확히 나뉜 채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서울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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