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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원 May 20. 2021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고.

작가 유시민이 풀어낸 국가에 대한 고찰

 이 책을 쓴 작가 유시민은 한국의 몇 없는 자유주의 계열의 진보 지식인이다. 오랜 정치생활을 청산하고 현재는 자칭 작가로 활동하며, 방송과 글쓰기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유시민은 2010년 용산 참사 당시, 공권력이 저항하는 시민들을 진압하고, 그걸 보도하는 언론의 이중적 모습을 보고 국가의 본질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진지한 고찰 끝에 국가의 정의에 대한 역사와 여러 인문학자들의 견해, 그리고 현대 국가가 나아가야 하는 바람직한 모습이 무엇인지 정리하여 책으로 출판할 것을 결심한다. 이는 초판 서문에 나와있는 내용이다. 내가 읽은 개정판이 출판된 것은 2017년. 초판과 개정판 사이의 공백은 7년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에 많은 변화가 우리 정치와 사회를 덮쳤다. 유시민의 생각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개정판 서문에 따르면, 유시민은 2010년 초판은 당시 자신이 정치인으로서 썼던 글이기에, 현재 본업인 작가의 입장에서 지금 다시 읽어보면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서술한다. 초판은 논리보다는 감정이, 이성보다는 주관이 더 드러나는 글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2010년과 2017년의 한국 정치 상황은 너무나도 달라졌다. 2010년 용산참사라는 비극에서 시작한 글로 2017년의 국정농단 사건의 문제의식까지 다루는 것은 어려웠다. 2017년 당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논리와 담론이 담긴, 보다 객관적이고 시류가 있는 글이 필요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이번에 내가 읽은 국가란 무엇인가 개정신판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하고 읽게 된 과정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워낙에 내가 유시민이라는 사람을 지식인으로써 동경하기에, 선택에 앞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 책에 대한 내 간략한 감상은 글과 내용이 논리적이고 담백하다는 것이다. 사실 좀 더 단호히 말하자면, 개정판까지 써내며 한국 전체의 문제의식을 담아내고자 노력했다는 서문의 포부에 비해 한국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나 문제 제기는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유시민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을 담은 저서라기보다 논리적인 구조에서 수 많은 철학가와 사상가들이 사유한 국가에 대한 견해를 담백하게 재가공한 수준이라 생각하시면 편할 듯 싶다. 그럼에도, 중간 중간 그의 날카로운 사견이 드러나는 문장도 읽을 수 있었다. 요컨대 국가주의에 대한 설명에서 본인의 경험을 녹여 한국 지도자가 국가주의를 어떻게 활용했는가를 설명하는 단락은 잠시나마 그가 객관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펼치는 예리한 논리를 잘 살펴볼 수 있다. 또 그가 인용한 방대한 저서와 정보들을 보면, 광범위하게 다양한 지식을 축적해온 정보수집가라는 그의 새로운 면모도 찾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을 새로운 독자들이 책 내용에 작가의 어떤 새로운 시각이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국가란 무엇인가는 국가에 대한 유시민의 고찰이 담기긴 했지만, 방대한 사상가들의 생각을 정리하고 코멘트하는 차원에서 그친다. 즉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을 서양 철학가, 사상가들의 국가에 대한 거대한 담론을 어렵지 않은 언어로 풀어 정리한 개론집에 가깝다고 보시면 좋다. 물론 그걸 감안하더라도, 국가담론과 철학을 이 정도로 정리한 책이 시중에 없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내가 읽은 몇 가지 인상깊은 부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 책의 44p, ‘대한민국의 기원-한국전쟁’ 챕터는 이 책에서 몇 안되는 작가의 사견이 드러나는 글 중 하나이다. 책은 홉스와 마키아벨리의 담론을 설명하는 도중에 정치학자 박명림 교수의 말을 빌려 한국전쟁이 한국형 국가주의의 기원임을 서술한다. 좁은 땅덩이에서 무려 500만이 무참히 죽은 전쟁 이후, 30년 간 우리나라는 거대한 소용돌이와 함께 압축성장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말이다. 10만 남짓하던 군대는 전쟁을 거치면서 60만이 넘은 대군으로 성장하고, 경찰의 규모도 단기간에 5만명을 넘긴다. 1961년 이후 쿠데타의 주체만 바뀌며 이어온 군부독재는 몇 십년만에 시민들이 노력하여 종식시켰고, 문민정부가 새롭게 들어선다. 다른 국가에서는 몇 백년에 걸쳐 이룩한 결과를 우리는 대단히 짧고 압축적으로 이뤄낸 것이다. 이런 압축성장은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분열을 만들어낸다. 분열을 수습하고 사회적 통합을 이뤄내 본인의 치적을 쌓아햐 했던 군부독재자들 입장에서 한국전쟁은 대단히 좋은 통합의 빌미이자, 권력 강화용 수단이었다. 책에서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뤄지는 독재자들이 철학적으로는 홉스를, 통치기술로는 마키아벨리를 추종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한다. 그들은 사회 통합을 위해 한국전쟁을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이용했고, 북괴의 침략을 막아내는 것을 시민들이 살아가는 목적으로 설정한다. 그들은 한국전쟁이라는 좋은 빌미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와 정치활동의 자유 그리고 평등권을 앗아가며 독재를 정당화했다. 전제정치를 가장 이상적 정치체제론 본 홉스의 철학과 신민의 절대적 결속을 강조한 마키아벨리의 통치술로 이를 설명하기엔 정말 적절했다. 홉스와 마키아벨리의 국가론은 군부독재를 거쳐 한국형 이념형 보수주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부분에서 작가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술을 언급하며 자신의 견해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대다수가 압도적으로 반대한 4대강 사업을 본인의 확신으로 수십조원을 투자해 밀어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적대적 행위를 강조하며 국론통일을 강조했다. 이 두 대통령은 국민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기인한 대중의 공포심리를 이용해 국가권력을 장악했다. 이들도 과거 군부독재자들이 그랬듯 홉스와 마키아벨리의 철학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작가의 이런 견해에 나도 일부 동의한다.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은 국가주의 국가론에 충실했다. 이들은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분열로 생각했고, 분열은 곧 악이라는 논리를 세운다. 때문에 국정원을 이용해 정부를 비판하고, 정부 정책에 불만을 표하는 유명인사들의 뒤를 캔다. 그리고 댓글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했다.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사회는 건전한 비판조차 전혀 수용되지 않는 구조로 변해갔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견해와 비판같은 시민의 자유보다, 국가의 종속이었다. 국가의 종속을 위해선 국론통일과 나라의 정책방향을 결정하는 강력한 통치자의 리더십이 필요했고, 그 리더십의 주체는 바로 대통령 자신이었다. 때문에 시민사회의 비판에도 대규모 토목사업을 추진하고, 주류사학계가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였던 것이다. 그들은 국가주의 국가론이 원했던 지도자의 모습을 구현하는데 최선을 다했고, 홉스의 철학과 마키아벨리의 통치술을 실현했다. 그러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다양한 목소리의 존중을 보장하는 민주주의 제도와 지속적으로 마찰을 일으킨다. 그리고 건전한 비판마저 수용하지 않아 결국 권력이 부패하기 시작해도 그 진실은 은폐당하고 묻히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부패는 정권을 붕괴시킨다. 대표적으로 국가주의 국가론에 충실했던 박근혜 정부는 어떠한 비판마저 수용하지 않는 불통 행보를 보이다, 국정농단이라는 대규모 부정부패가 언론보도로 드러나면서 처참하게 몰락한다.

 

 이제 내 생각에서 잠시 벗어나 책으로 돌아가보자. 작가는 국가주의 국가론이 민주공화정이 대다수인 세계에서 이제는 낡은 이론으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정치 통치자들에게는 여전히 매력적인 사상으로써 생존력이 있음을 설명한다. 실제로 민주화 이후 약화하긴 했지만, 한국전쟁의 공포를 겪은 시민들의 동의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한국에서 근 50년간 살아남았다. 국가의 위기가 찾아오고 또 국가주의 이론으로 무장한 강력한 지도자가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등장한다면, 불씨처럼 숨죽이고 있던 국가주의 국가론은 언제든 다시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작가는 현재는 잠잠한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부활을 염려하며 이 챕터를 마친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유시민이 생각하는 애국심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이었다. 그의 생각은 130p 애국심에 대한 여러 사상가들의 생각을 정리하기 앞서, 작가 본인의 견해를 서술한 챕터인 ‘애국심의 두 얼굴’에서 찾을 수 있다. 애국심의 대상은 무엇인가. 유시민은 그건 콕 집어 알 수 없다고 설명한다. 애국심은 기본적으로 사랑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애국심은 이성끼리, 부모와 자식끼리 사랑하는 것과 같다. 작가는 사랑하는 대상에게 있는 어떤 특정한 것을, 잘생긴 얼굴이나 날씬한 몸매, 고운 마음씨 여러 요소를 높이 평가할 수 있겠지만, 오직 그것만으로 사랑의 감정을 설명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애국심은 기본적으로 국가라는 대상을 사랑하는 동시에 타국을 배척하는 감정이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배타적인 집합체이다. 국가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폭력을 독점하는 동시에, 권력행사의 대상이 국경이 제한하는 영토내로 한정된다. 유시민은 타국과 자국의 영토를 나누는 이 국경 자체가 배타적이라 설명한다. 국경으로 제한된 영토 안에서 두 개의 권력이 동시에 발현될 수 없고, 한 영토의 국민은 동시에 다른 국가에 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의 배타성은 애국심을 배타적 감정으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작가는 극단적으로, 인류가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인류를 사랑하게 되려면 지구 밖에 적대적인 경쟁상대가 있어야 한다고 표현한다. 만약 인간과 전혀 다른 외모를 하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명활동을 하는 에일리언 군단이 지국를 침략한다면 인류는 모든 차이를 단번에 극복하고 단결하여 세계 정부를 구성하여 맞서 싸우리라는 것이다. 지나치기는 하지만 작가 본인이 생각하는 애국심의 배타성을 한번에 이해시킬 수 있는 언어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외부의 적이 존재할 때 국가의 일원이 단합하여 맞서는 모습은 흔히 찾을 수있다. 당장 한일전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들은 축구팀의 적인 일본팀을 적으로 인식하고 자국의 승리를 위해 똘똘 뭉쳐 필승 코리아를 외친다. 일제가 조선을 침탈한 강점기때는 수많은 애국열사들이 대한독립을 외치며 장렬히 순국했다. 이처럼 애국심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고귀한 감정이기도 하지만, 적대적인 국가가 존재해야 끓어오를 수 있는 배타적 감정인 것이다.

 

 이 밖에 애국심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생각 중 특히 톨스토이의 견해가 기억에 남는다. 톨스토이는 애국심을 사악한 감정이라고 정의한다. 애국심은 인위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유해한 감정이라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인류의 수많은 병폐들이 애국심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많은 살육을 일으킨 대규모 전쟁과 빚까지 져가며 비이성적으로 확장되는 오늘날 군비경쟁이 바로 이 애국심으로부터 야기되었다는 것이다. 혹자는 올바르지 않은 방식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문제이나, 애국심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 애국심이나, 올바른 애국심에 대한 구분과 그 경계는 매우 불분명하고 쉽게 정의할 수 없다. 톨스토이는 바로 이러한 지점까지 우려했다. 때문에 톨스토이는 윤리적‧ 비윤리적 애국심을 분리할 수 없다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애국심을 근절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나는 톨스토이의 견해에 감정적인 동의를 일부 한다. 그러나, 그 표현과 주장이 너무 과한 것 같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시에 매우 감정적인 동물이다. 톨스토이가 주장하는 이성적 존재에 의한 애국심의 제한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국가의 단합과 국민의 단결을 위해 애국심을 사용한다. 이는 인류 역사에서 변하지 않은 진리이다. 지도자 개인의 충동이 아닌 조직된 시민들의 이성적 사고를 최대한 반영하는데 최적화된 민주공화정 국가들 역시 애국심을 국가 행정과 국론 통합을 위해 활용한다. 비록 애국심이 인류의 수많은 병폐를 일으킨 가장 큰 원인인 것은 맞다. 극단화된 애국심은 전체주의, 국가주의로 변질되어 국가 행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옛날 제국주의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애국심이라는 감정이 수많은 병폐를 일으켰다고 해서, 애국심을 악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애국심은 필연적으로 발현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애국심이 없어진다면 그것은 곧 무정부상태, 즉 홉스가 말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황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윤리적‧비윤리적 애국심의 경계를 세우기 상당히 모호하지만, 보편적인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적절히 조절되는 애국심은 충분히 선한 영향력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라는 네크라소프의 시구는 애국심의 선한 얼굴을 보여주는 타당한 격언일 것이다. 국가에 대한 비판, 무능하고 부패한 국가 지도자를 탄핵하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회복하자는 시민들의 시위 모두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존재치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국가를 사랑하기에 잘못된 선택을 한 정부를 비판하고, 우리의 정치지도자가 올바른 길을 가는 것을 바라며, 부정부패를 일으킨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분노한다. 애국심은 국가를 파멸로 이끌기도 하지만, 국가의 자정을 일으키는 원동력으로써 작용한다. 내가 사는 국가가 지금보다 더 낫고, 좋은 곳이 되기를 바라는 시민 마음에 자리잡은 애국심 때문에,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는 적어도 기본적인 시스템은 유지하며 작동한다. 톨스토이가 바라는 애국심이 근절된 세상에서는 국가를 향한 애정 어린 날카로운 비판도, 더 나은 국가를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고 인상 깊었던 몇 부분을 소개해보았다. 대다수가 철학자들의 생각을 재가공한 글보다, 작가 개인의 생각이 드러나는 단락들이었다. 담백한 전체보다, 예리한 일부에서 작가가 담고자 한 2010년, 2017년의 문제의식이 더 잘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담백했던 지식의 재가공도 마냥 심심한 것은 아니었다. 앞서 설명한 애국심에 대한 톨스토이의 가치관이나, 홉스와 마키아벨리의 국가론은 내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글에 담지 않았지만, ‘혁명이냐 개량이냐’란 주제에 대한 톨스토이와 하이에크의 사상과 전직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작가 본인의 경험을 빚어낸 복지국가론에 대한 서술도 흥미롭게 읽은 챕터 중 하나였다. 국가에 대한 사상가들의 온갖 생각을 단순히 풀어낸 개론집에 그친 것 같다는 아쉬운 감정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인류사에 지대한 공헌을 한 학자들의 식견을 책 한권을 통해 접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래도 만족한다. 그리고 책 한권에 방대한 담론을 압축해서 표현하는 일이 작가에게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책의 맺음말을 보면, 작가가 이 책을 쓰면서 국가에 대해서 상충하는 요구와 기대를 가진 국민들이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국가시스템 원리를 잘 이해하도록 돕고 싶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작가의 바람처럼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읽고 수월하게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글이 단순해야 한다. 실제로 ‘국가란 무엇인가’는 문장이 어렵지 않고 직관적이다. 그리고 작가의 필력이 더해져 읽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작가는 2010년, 2017년에 시작된 국가에 대한 고찰의 답을 내놓지 않는다. 답을 찾고, 결론짓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는 듯한 느낌이다. 유시민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을 주입하기 보다 독자들이 스스로 해답을 찾는데 보탬이 되기를 바랐기에, 단순하고 심심하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 이 책을 썼던 것이 아닐 까 싶다. 이 책을 읽고 국가의 철학적 정의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도 된다. 어차피 국가에 대한 사고는 여러 학자들의 이견이 갈릴 정도로 다양하고 하나로 정의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나만의 사고를 확립하자. 최소한 국가가 나에게 끼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고 내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국가는 어떤 모습인지 말이다. 이 정도만 책을 읽고 정리해도 국가 시스템이 올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폭주할 때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평소 국가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하지 않은 사람은 대통령이 잘못해도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미숙해도 나름의 이상적인 국가관이 있는 사람은 대통령과 정치인의 잘못에 대해 시정을 요구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주권자로서 마땅히 행사해야할 권리를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가의 역할을 나름대로 정의하고, 주권자 시민으로서 권력이 두려워하는 힘을 가지는 것. 나는 그것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궁극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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