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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기원 Jun 15. 2021

영화 예찬론자의 문화 소비에 대한 변(辯).

혐오 시대에 문화는 어떻게 인식되고, 어떤 가치를 가져야 하는가.

 영화도 교양이다. 영화도 지식이다. 영화도 삶의 방향을 제시한다. 영화에 대한 이런 예찬은 나의 평소 지론이다. 몇몇 몰상식한 독서 예찬론자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곤 한다. 책은 고귀한데, 영화와 드라마는 천박하다는 거다. 전형적인 질 나쁜 이분법 논리다. 영화, 드라마 등의 대중매체를 공격해서 책의 가치를 올라가는 상대적인 현상으로 자기들의 허영을 채우겠다는 심리다.  그들의 이런 조악한 수준의 비판(?)의 기저에는 책 이외의 다른 대중매체들을 하위문화라고 깔보는 허영심이 깔려있다. 웃기는 일이다. 한국 문학의 대표 작가 김훈은 "문학이 무슨 지순(至純)하고 지고(至高)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라고 했다. 가히 명작가다운 명언이다. 그렇다. 책이 무슨 지고지순한 가치가 있어서, 대중들이 즐기는 영화, 드라마 등의 다매체 위에 군림한다는 말인가. 어떤 이에게 책은 라면 받침대 대용이며, 잘 타는 장작이자, 그저 짐만 되는 애물단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어떤 매체든 귀천은 따로 없다. 수요에 따라 공급이 이뤄지고, 필요에 따라 사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지 이 밖에 다른 논리가 문화의 소비를 결정짓지 않는다.


 첫 번째 문단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자칫 잘못하면 나도 그들처럼 어떤 문화 양식 따위를 혐오하는 인간으로 오해받을 수 있겠다. 해명하자면, 내가 책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무시하는 몰상식한 몇몇 독서 예찬론자들 못지않게 나도 책을 사랑한다. 잘 쓴 책은 사람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주고 지적 수준을 고양시킨다. 나도 시간이 날 때면 대형 서점에 가서 책에서 뭍어나오는 특유의 기분 좋은 향기를 즐긴다. 그리고 사람을 파묻어도 모를 정도의 방대한 장서들 중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제목의 책을 꺼내 읽는다. 책을 고르고, 훑어보고, 그 분위기를 음미하는 이 모든 과정을 나는 좋아한다. 즉 나는 과 함께, 영화도 나의 삶 일부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영화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영화가 책에 비해 역사성이 짧다는 것 외에, 영화와 책의 성질은 거의 유사하다. 책은 활자라는 텍스트로 존재하지만, 영화는 영상이라는 텍스트로 존재한다. 텍스트는 우리가 씹고 뜯으며 해석할 껀떡지(?)를 제공한다. 그 껀떡지 덕에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가치를 찾고, 감상에 젖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영화도 다를 게 없다. 오히려 영화는 책이 제공하는 텍스트보다 그 종류가 훨씬 다양하다. 영상, 음향, 음악, 촬영, 미장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영화도 책과 같이 이런 다양한 껀떡지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다채로운 체험의 시간을 선사한다.


 영화를 더 좋아하든 책을 더 좋아하든 그건 누가 뭐라 할 수 없는 개인 자유다. 내가 책을, 내가 영화를 더 좋아한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나. 다만, 자신이 책을 더 좋아한다는 이유가 영화의 가치를 절하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모든 비판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뒷받침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예컨대, 누군가 '영화가 제공하는 콘텐츠의 비대함을 나는 소화하기가 힘들어'라고 했다 치자. 이건 그런대로 영화를 싫어하는 논리적 근거가 될 법해 보인다. 그런데 내가 책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영화가 천박하다는 건.. 뭐 딱히 논박이 불가능하다. 논박도 '논리'라는 틀에서만 가능한 행동이다. 취향 고백에 무슨 반박을 할 수 있겠나.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에게 맞는 문화 매체들을 즐기고 사랑하면 된다. 단순 문화를 즐기는 취향의 차이에서뿐만 아니라, 생활 어느 영역에서든 '나는 이게 더 좋으니까, 이건 쓰레기야.'라는 말은 다양성을 주요 가치로 삼고 존중하는 21세기 사회에 어울리지 않다. 그럼에도 이런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남의 취향을 천박하다고 설정해, 자신의 취향이 고매하다는 인식을 강조하려는 허영이라 봐야 한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상대하지 말고, 마음껏 불쌍하게 여겨주자. 애초에 멘탈 체계가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다. 상처가 많은 사람들은 남을 공격해 나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자임하겠지만, 실상은 속이 뒤틀릴 대로 썩어 남과 유대를 맺는 법을 모르는 불쌍한 인간일 뿐이다. 자기만 그걸 모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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