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작가로 지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을 꼽으라면 역시 매일 벌어지는 내면 투쟁일 것이다.
결혼으로 누군가의 남편이 되며 책임감이 커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서른 중반에서 후반으로 가는 나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고 누군가의 아버지가 된 친구들은 나에게 한 마디씩 가볍게 건넨다.
"아이는 안 낳을 거야? 왜?"
"책을 판 건 돈이 좀 되니?"
"네가 가장인데 책임감을 가져야지."
어쩌면 걱정과 닮은 비교라고 부르고 싶다.
끊임없이 누군가와 비교해 전교등수를 올려야 했던 우리는 이제 연봉이나 자산 같은 부의 척도로, 혹은 아이의 교육이나 삶의 기회를 얼마나 가족에게 잘 제공할 수 있는 남편인지에 대한 '책임' 비교를 이어간다.
지인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작가들 사이에서도 그 비교는 꽤 유행하고 있다. 기획출판을 했는지 자비출판을 했는지 여부를 묻고, 책을 몇 권이나 냈고 얼마나 팔렸는지 혹은 어떤 출판사인지로 비교를 하는 일은 꽤 흔하다.
웹소설의 영역에서는 작품성의 여부를 따지는 시장이 아닌지라, 오로지 조회수가 높은 작품을 쓴 작가의 목소리가 커지는 문화다. 어떤 이유로든 조회수가 수천만뷰가 나온다면 실력 있는 작가가 되는 문화랄까.
대학원생에서 회사원으로, 다시 고시생에서 작가로 자연스럽게 삶의 큰 변화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은 어쩌면 당연스럽게 어려워졌다.
매주 27,000자에서 30,000자 사이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 날이 지나도 그리 익숙해지지 않는다. 요일 감각도, 날짜 감각도 흐릿해지는 게 고시생활을 닮아 있다.
이러다가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감과 자존감도 무너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숨을 쉬면서 멍한 눈으로 두드리던 자판을 멈췄다.
문득 북유럽 여행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북유럽 여행을 할 때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용 심리장치가 있느냐 묻던 아르헨티나인이 있었다.
'솔, 한국은 어떨지 몰라도 아르헨티나나 유럽에서는 심리상담을 하는 주치의가 있어.'
주치의가 스트레스 해소용 취미를 권해 자신은 뭔가를 던지는 취미를 만들었다던 아르헨티나인.
나는 원래 시계를 취미로 했기 때문에 여행당시에는 자랑스럽게 내 스트레스 해소수단을 소개했었다. 시계태엽을 감으면 멈춰있던 내 삶이 움직이는 것 같다고 답했었는데 요즘은 시계를 하는 취미도 시들해졌다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뭔가 새로운 취미를 찾기로 했다.
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스타벅스 앱을 열고 닉네임을 '대작가솔작가'로 바꾸고 집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사이렌오더로 음료를 주문했다.
"대작가솔작가 고객님!"
점원들은 재미있어하거나 혹은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내 닉네임을 불렀고 나는 쑥스러워하면서 음료를 받았다. 그리고 내 입가에 어색하게 떠오르는 미소가 스스로도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자존감이 올라갈 법한 새로운 취미를 만들었다. 놀랍게도 내가 음료를 받을 때 모르는 사람들이 흘끔거리기도 한다.
정말 내가 대작가가 된 것 같은 뿌듯함과 민망함.
그러나 그동안 불안감 속에서 어깨와 목을 타고 올라오던 근육통과 짙어졌던 다크서클은 새로운 취미를 만든 후 꽤 나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