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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un 30. 2024

연필 한 자루

연필


그래, 연필 한 자루였다. 두 자루 세 자루도 아닌, 꼭 한 자루. 그게 길에 떨어져 있었다. 저녁 먹고 난 후 산책할 때였다. 산책로에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땅거미가 조금씩 밀려들었다. 연필은 파란색 기다란 원통형으로 끝에는 하얀 지우개가 달려 있었다. 누가 떨어뜨렸을까. 누구 발에 밟히지 않을까. 두리번대며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주울까 말까 망설였다. 집에도 연필은 많았다. 내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나도 연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또 하나 이유는 길에 떨어진 물건 함부로 주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주웠다가 혹시 덤터기를 쓰거나 난감한 일이 생길지 누가 알랴 싶었다. 하도 이상한 세상이 되어서 의도가 왜곡되는 일이 허다하다. 공연히 그런 일에 휩쓸려 머리 아픈 일이 생길까 저어 되었다.


그래도 주웠다. 집에 아무리 연필이 많기로서니 연필 한 자루 더 보탠다고 해서 연필꽂이가 넘칠 일 아니고, 쓰다 다 못 쓴다 해도 멀쩡한 물건을 그렇게 길가에 버려두는 건 내 정서상 못할 짓이었다. 또 함부로 주웠다가 난처한 일이 생길 수 있는 것도 물건 나름이지, 연필 한 자루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기랴 싶었다. 또 생긴다 해도 얼마든지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약간 망설이긴 했으나 주웠다.


주워서 손으로 쓸어보았다. 매끈하고 날씬한 것이 호리호리한 어느 여인 몸매 같았다. 내 몸매는 물론 아니다. 파란색 옷을 입은 가느다란 원통 속에 까만 연필심이 콕 박혀 있다. 정확하게 가운데에. 연필 끝에 달린 하얀 지우개는 잘못 쓴 까만 글자를 하얗게 지우라는 표식인 듯했다. 손에 쥐어보았다. 두툼한 내 손가락에 연필이 날렵하게 들어왔다.


누군가가 흘렸으리라. 아무리 물자 흔한 세상이 되었다 해도 이렇게 깎지도 않은 새 연필을 일부러 버리진 않았을 게다. 그렇다고 이 작은 걸 찾으러 올 사람은 거의 없다. 혹시나 해서 주위를 보았고 멀리 가지 않은 채 주위를 맴돌며 찾는 사람이 있나 살폈다. 비를 안은 바람만 끈끈하게 불었다. 비가 올 듯해 집으로 들어왔다. 혹시 알지 못하는 연필 주인을 만날까 싶어 손에 들고.


연필꽂이에 꽂았다. 깎지 않은 연필 일곱 자루, 깎았으나 아직 쓰지 않은 연필 세 자루, 가끔 사용하는 연필 몇 자루와 다 쓴 볼펜 깎지에 끼워 쓰는 몽당연필까지 가득 꽂혀 있다. 연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 중에 내가 직접 산 연필은 없다. 어느 행사에 참석했을 때 받은 게 있고, 아들딸이 쓰다 둔 게 있으며, 빈 강의실에 떨어진 걸 주운 것도 있다. 모양이나 색도 다양하다. 그림이 그려진 것, 그렇지 않은 것, 동그란 원통형, 육각형, 글자가 쓰여 있거나 없는 것, 노랑, 파랑, 흰색, 검은색 등.


하나하나 살피면서 심이 뭉툭해진 연필을 깎아 다시 꽂았다. 깎지 않은 일곱 자루 연필은 그대로 두었다. 연필을 깎아놓고 보니 노트에 무어든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적당한 굵기의 연필심이 그런 의욕을 갖게 했다. 노트를 펼쳐놓고 연필을 꼭 쥐었다. 의욕과 달리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렇게 한동안 무념하게 앉아 있었다. 그것도 괜찮은 일이었다. 쉼이었으므로.


볼펜을 사용하게 되면서 연필은 뒤로 밀려났다. 또 컴퓨터가 보편화되면서 볼펜 역시 예전보다 훨씬 덜 쓰게 되었다. 노트를 펼쳐 놓고 연필로 무엇이든 쓰려고 했을 때, 머릿속이 하얘진 건 무념 때문이 아닐지 모른다. 글쓰기 도구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게 더 자연스러워져서일지도.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섭다. 하얀 화면에 자판을 사용해 글자를 찍는 것이나, 하얀 노트에 연필이나 볼펜으로 글자를 쓰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글이라는 게 모두 사유의 조각들을 배열한 것일진대.


어쩌면 연필은 이제 무용한 물건이 되었는지 모른다. 초등학생이 아니면 쓸 일이 거의 없으니까. 중고생만 되어도 볼펜이나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지 않는가. 대학생 때는 볼펜도 덜 쓰게 되고. 그림까지 컴퓨터를 이용해 그리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연필 한 자루 잃어버렸다고 찾으려 애쓸 사람이 있을까.


주워 온 파란색 연필을 앞에 놓고 말했다. “우리 집에서 나와 지내자. 여기 친구들도 많잖아. 길에 떨어져 밟히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 노란색 연필 틈에 파란색 연필을 꽂아주었다. 노란색과 파란색 잘 어울린다. 깎지 않은 연필들은 나중에 온이가 학교 들어갈 때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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