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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Nov 02. 2024

온이의 생일잔치


여섯 번째 생일을 맞는 온이가 며칠 전에 전화했다. 토요일 자기 생일에 초대한다고. 요즘 아이들은 신인류인 것 같다. 예전에 우리가 자랄 때와 달리, 꼭 초대하고 초대받아야 가는 건 줄 아니 말이다. 무슨 선물을 해줄까 물었더니 선물은 안 사 와도 된단다. 할머니가 오시는 게 선물이라며. 케이크를 준비하겠다고 하니 아주 기쁜 듯 크게 웃었다. “이제 세 밤만 자면 오실 거죠?” 쐐기 박듯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언젠가는 말도 없이 갔더니 온이가 문 열어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초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오셨느냐며. 기가 막혔다. 그럼, 이대로 그냥 갈까? 하면서, 부러 나가려 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에요. 그냥 묻는 거예요. 가시면 안 돼요.” 온이는 급하게 수습하느라 호들갑 떨었다. 그래도 나가려고 하자 내 손을 잡아끌어 소파에 앉혔다. 웃음을 참지 못해 할 수 없이 큰소리로 웃자, 장난인 줄 알고 온이도 과장된 몸짓으로 웃어댔다. 그때가 생각나서 그랬나 보다. 세 밤 자면 꼭 올 거죠, 라며 쐐기를 박은 것은.


하여간에 요즘 아이들 보면 우리 자랄 때와 달라도 무척 다르다. 싸우고 나서도 그냥 그 친구 집에 가서 ‘ㅇㅇ야, 놀자!’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사과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필요한 듯하다. 온이와 또온이가 다투더라도 그렇다. 형제끼리도 그런데 남들하고야 당연한 일 아닌가. 요즘 교육 방법이 그런지 몰라도, 왠지 거리감을 느낀다. 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더라도 자연스러울 테지만.


드디어 온이 생일날, 아들과 함께 출발했다. 자기 시간을 유난히 아끼는 아들이라도 온이들은 언제나 최우선이다. 안 그래도 특강 기간 동안 못 보는 그리움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달랬던지라 선뜻 따라나섰다. “그렇게 보고 싶니? 결혼해 네 자식 낳으면 비교도 안 될 텐데.” 내 말에 빙그레 웃는다. 생크림 케이크를 차 뒷자리에 얌전히 놓고 온이들 만날 생각에 들뜬 마음은 하늘의 구름보다 더 높다.


미리 예약한 식당에서 딸 내외, 온이, 또온이, 우리. 오랜만에 다 모였다. 만 세 살짜리 또온이는 식당에 부설된 키즈카페로 먼저 달려가고, 온이는 잠시 음식을 먹는 듯하더니 역시 그곳으로 달려간다. 덕분에 우리는 느긋하게 식사를 즐겼다. 주인공이 빠진 어른들만의 식사는 여유가 있었다. 딸과 아들은 고기를 굽고 사위와 나는 먹었다. 곁들여 나온 된장찌개를 떠서 사위에게 주니 감동했단다. 처음으로 찌개를 떠준 거라며. 나는 식구들에게 별로 친절한 편이 아닌가 보다. 사위의 그 말에 우리는 모두 웃었다.  


다음 코스는 카페다. 산자락에 있는 이름난 카페. 솔직히 나는 카페 문화를 즐기진 않는 편이다. 거기에 앉아 있느니 한걸음이라도 걷자는 주의니까. 그런데 놀라웠다. 과장하면 그 근처 사람들을 다 모아놓은 듯 사람들이 북적댔다. 주차 요원 몇 명이 교통정리를 할 정도로.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시간이 걸렸고, 마시멜로 구워 먹는 모닥불 앞은 도통 순서가 오지 않았다. 커피는 비싸고 빵도 터무니없이 비쌌다.


식사비는 사위가 냈고 카페에선 내가 지갑을 열었다. 그래서 더 비싸게 느꼈던 걸까. 그건 아니다. 자리가 편안하고 좋은 것도 아닌데, 자리 값이라고 보기에도 과하다. 분위기 값이라면 그럴 듯도 하다. 도봉산자락의 산바람이 산들산들 부는 곳이었으니까. 들꽃도 드문드문 피었고, 무엇보다 마시멜로 구워 먹는 걸 온이들이 무척 즐거워했다. 그거면 되었다. 온이 생일 아닌가. 촌스럽게 비용이 얼마고 비싸고 하는 건 속으로만 생각할 일이다.


마지막 코스는 집에서 케이크를 자를 차례다. 우리는 두 대 차에 나누어 타고 온이네 집에 도착했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불을 껐다. 우리 모두 박수를 쳤다. 온이의 행복한 얼굴, 또온이의 환한 얼굴. 케이크를 잘라 각자 접시에 놓고 조금씩 먹었다. 우리는 먹고 이야기 나누느라 온이가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갑자기 온이 목소리가 들렸다.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우리 모두의 시선이 온이에게로 쏠렸다. 노래와 율동이 어우러진 공연이었다. 노래 세 곡과 춤이었다. 아, 어쩌면 좋을까. 고슴도치라고 해도 좋다. 이렇게 멋진 공연은 생전처음이다. 능청스럽게,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표정을 지어가며 노래와 율동을 하는 온이는 뮤지컬 배우 같았다. 오전에 만나자마자 나에게 준비한 게 있다고 하더니 이 공연이었나 보다. 우리 모두 황홀하게 온이 공연에 열중해 있는 사이, 순서가 모두 끝났다. 끝이라고 외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보니, 사진이나 영상을 찍지 못한 게 아닌가.


“온아, 사진 못 찍었어. 한 번 더 공연해 줘.” 우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안 됩니다. 공연은 한 번 하면 끝입니다.” 온이는 단호했다. 누가 그런 규칙을 정한 거냐고 한 번만 더 해달라고 사정했으나 소용없었다. 내년 생일에 또 공연을 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꼼짝없이 내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쉬웠다. 노래와 율동에 빠져 사진이나 영상 찍을 생각도 못하다니.


우리 인생도 그런 걸까. 어떤 것이든 그것에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인생의 종착역에 다다라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그곳에. 온이는 무슨 생각에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내게는 교훈적으로 들렸다. 내년에도 우리가 생일에 와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을까. 한 번 더 공연하는 게 귀찮아서였을까. 아무튼, 나는 내년 온이 생일잔치를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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