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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ul 30. 2024

태양을 잡으려는 손들, 자수전시회


한국 근현대 자수전시회에 다녀왔다. 제목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새보다 수놓은 손이 태양을 잡으려는 듯했다면 과장일까. 그 솜씨가 말로 다할 수 없이 경이로웠다. 칠월의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덕수궁 정원엔 빨간 배롱꽃이 화르르 피어 나를 맞았다. 배롱꽃을 보며 잠깐 오죽헌을 떠올렸다. 오죽헌에도 지금쯤 저 꽃이 지천이리라. 자수전시회를 처음 본 게 오죽헌 앞에 있는 자수박물관에서였다. 


덕수궁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자수전시회를 보는 동안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탄성을 어쩌지 못했다. 신공이다, 그렇지 않곤 할 수 없는 일이다. 얼마나 바늘에 찔렸을까. 얼마나 목과 등이 아팠을까. 도안만 보고 저리도 신묘한 작품을 만들어 내다니,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무리 배우고 익힌다 해도 색감과 표정 그 어우러짐을 저리도 표현할 수 있는 건 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으리라. 


보는 내내 감탄과 함께 아릿해 오는 마음을 어쩔까. 몇 번이나 눈물을 닦았다. 전시회장에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 눈물이 흘렀다. 전시된 작품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나도 한동안 수놓는 일을 했다. 그때 힘들고 암담했던 마음이 떠올라 눈물이 나는 것이리라. 저렇듯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들기 위해 내가 수놓는 일을 했던 건 아니다. 


열일곱 살 소녀 시절 나는 양말 만드는 회사에 다녔다. 거기서 내가 맡은 일은 양말목에 수놓는 일이었다. 수출품인 고급 양말에 가느다란 올을 세어가며 하루 종일 수를 놓았다. 눈이 아팠고 때론 핏발이 섰으며, 목과 등이 감각이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하루에 할당된 몫을 하느라 잠시 잠깐 한눈을 팔 수 없었으며, 심지어 점심시간에도 쉬지 않았다. 바늘에 찔리는 건 다반사였는데, 가장 힘든 건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암담함이었다. 


저리도 멋진 작품을 보며, 나는 왜 그날의 감정 속으로 자꾸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내가 수놓은 건 작품이랄 것도 없는 그냥 소비되는 물품에 약간 들어가는 장식일 뿐이었지만 그 수고로움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때 함께 수놓던 소녀들도 혹시 이 전시회를 본다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녀들에게 갑자기 정이 솟아나 불현듯 보고 싶어졌다. 이젠 나처럼 나이 들었겠고, 그때처럼 성실하고 순박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나는 자수에 취미가 있었다. 어쩌면 재능이 있었던 것도 같다. 학창 시절 가정 시간에 앞치마, 베갯잇, 가리개, 조각이불 등을 수놓아 만들 때, 선생님의 칭찬을 받곤 했으니까. 자수반에 들어가 양말목에 수놓는 일을 했던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재밌게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수놓는 일이 힘들긴 했어도 지루하진 않았던 게 그 이유다. 그 회사에서 나올 때까지 그 일을 했던 것도. 


그 옛날의 내 나이쯤으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 내 옆에서 관람하다 조잘댔다. 이걸 어떻게 하지? 대박이다! 그 모습이 귀여워 작은 소리로 말을 걸었다. 수놓아본 적 있느냐고. 없단다. 그림으로 그려도 어려울 텐데 놀랍단다. 이런 전시회에 온 것만도 대견했다. 재밌는 게 좀 많은 세상인가. 맑디맑은 여학생들에게서 그때 내 모습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저 나이에 나는 어떻게 살아가나 그걸 걱정했었다니. 그래도 괜찮다.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므로. 


요즘 약간 우울한 기분이 들곤 했다. 나이 들어가며 누구나 느끼는 그런 정도의 우울감이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무의미해지고, 공연히 기력이 빠지기도 하며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산재한 일들이 있는데 몸이 무겁고 의욕이 생기지 않아 부담감만 커져, 닥치는 일만 간신히 할 때도 있었다. 억지로 힘을 내보려 해도 그 자체가 무의미하게 생각되어 움직이기 싫었다. 


자수전시회 관람하면서 눈물이 자꾸 났던 건 그 옛날의 내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지만 그렇게 힘들었던 날을 견딘 내게 느낀 연민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날들에 비하면 모든 게 무척 풍요롭기만 한데. 그뿐인가. 마음만 먹는다면 웬만한 건 다할 수도 있는데, 우울한 기분을 느꼈다니. 신변에 일어나는 작은 일들에 연연할 필요 없다. 아마 더위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 아끼고 있는 에어컨을 마음컷 켜야 하지 않을까. 이쯤에서 한 번 크게 웃었다.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이 아니라, 손들. 그 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경탄스러울 수밖에 없는 작품을 남긴 손들이므로. 칠월의 따가운 햇볕 맞으며 찾아간 우리나라 근현대 자수 전시회, 내겐 더할 수 없는 감동과 함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신나고 즐겁게 앞으로 날을 살아가리라. 빨간 배롱꽃처럼 열정적으로. 지난날은 연민의 대상이 아니고, 아름다운 추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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