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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ul 19. 2024

여고 1학년생이 되어

선생님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다 그렇지 않겠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언젠가부터 간절히 바라는 게 하나 마음속에서 움트기 시작했다. 막연한 소망이었다. 여고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을 찾고 싶다는. 거의 오십 년 전인데,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선생님과 나 사이에 그럴듯한 일화 하나 없는데도. 이상했다. 해가 거듭될수록 그 마음은 더 짙어졌다. 


가끔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지만 선생님은 검색되지 않았다.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고 조용히 사시는지, 아니면 이미 같은 하늘 아래 계시는 게 아닌지, 혼자서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며 선생님 모습을 떠올려보곤 했다. 사실, 선생님을 꼭 찾아야 하는 명분은 없을지 모른다. 솔직히 선생님이 나를 기억할 리도 없다. 그건 내가 일반 학생들과 다르게 여고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나는 라디오 방송으로 강의를 듣고, 한 달에 두 번 격주로 학교에 가 수업을 하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다녔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진학을 못하고, 중학교 졸업 후 생활비와 동생들 학비를 조달하다 삼 년이 지나, 그것도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학교에 진학한 거였다. 겨우 한 달에 두 번밖에 담임선생님을 만날 수 없었는데, 선생님이 어찌 그 많은 학생들 중 나를 기억하실 수 있으랴. 그래도 불쑥불쑥 생각나는 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선생님과 있었던 일화는 오직 하나다. 입학식이 끝나고 배정된 반 교실로 들어왔을 때다. 눈부시게 예쁘고 야무지게 생긴 여자 선생님이 교실로 오셨다. 나는 키가 좀 큰 편에 속하는지라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출석을 부르기 전에 입학 축하 말씀을 하시고, 반장 뽑겠다며 학생들을 둘러보셨다. 그러더니 맨 뒤 창가에 앉은 나를 지목하셨다. “저 끝에 체크 재킷 입은 학생 일어나요.” 내가 일어섰다. 우리 반 반장 하는 게 어떠냐고 내 의사를 물으셨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할 수 없노라고.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하셨다. 이유를 묻자 집이 멀다고만 했다. 


당시 고양군에 있는 작은 의류회사에 다니며 기숙사에서 살고 있던 나는 격주로 학교에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회사 상무에게 허락 받아 입학은 했지만 일이 많을 땐 학교에 가지 않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 먼 곳에서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창덕궁 옆에 있는 학교까지 늦지 않게 가는 것도 기적이었다. 그런 상황인 나는 선생님의 제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하나의 일화가 선생님을 찾고 싶게 만들었던 걸까. 그건 아니다. 당시 간호장교를 거쳐 여고 교련 교사가 된 선생님은 특별나게 세련된 도회적인 멋을 풍겼는데,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그런 겉모습과 무척 달랐다. 다정하고 따뜻했다. 조회 시간마다 어려운 형편에 굴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고 생활하라는 말씀을 잊지 않고 하셨다. 그 말씀에 진정성이 묻어나 예쁘고 세련된 모습이 더 멋져 보였다.


교사와 문학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던 나였다. 하지만 그 꿈이 요원해지는 현실 앞에 좌절하곤 했다. 그러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힘을 얻곤 했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에서 내가 선생님을 찾고 싶었던 이유가 명징해진다. 오늘의 내가 있는 데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분 중의 한 분이 아닌가. 감사한 마음 때문에 선생님을 찾고 싶었다는 걸 이제 알았다. 


며칠 전이다. 인터넷을 열고 선생님 이름과 내가 아는 정보를 입력했다. 엔터. 잠시 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 이야기와 함께 사진이 화면에 뜨는 게 아닌가. 보자마자 알았다. 맞다, 우리 선생님이었다. 젊었을 때의 모습인 예쁜 얼굴과 머리 모양, 틀림없었다. 선생님의 이야기가 실린 곳은 어느 작가의 블로그였다. 블로그에 메모를 남겼다. 그 작가의 도움으로 선생님과 통화했다. 


예상했던 대로 선생님은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우리 선생님이니까. 날 기억하지 못하셔도 선뜻 당연히 나를 제자로 인정해 주셨다. 가슴이 울컥 대서 눈물이 났다. 내가 기억하는 그 시절 선생님의 모습을 말씀드리자 크게 웃으셨다. 반장으로 지목하셨는데 순종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일반학생들과 다르게 공부하던 우리들에게 무한하고도 진정한 사랑을 갖고 계셨다는 걸 확인하니, 선생님이 더욱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여고 1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첫 통화한 그날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설렜다. 선생님도 그러셨단다. 그날만도 두 번이나 통화를 했으니까. 이제 서로 시간이 맞을 때 우리는 만날 거다.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통화하면서도 어찌나 따뜻하게 긍정적으로 말씀하시는지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나는 다시 여고 1학년생이 되어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통화를 마치고 깨달았다. 내가 나 된 것은 나 혼자의 재주나 힘이 아니라는 걸. 바람도, 구름도, 물결도, 스치는 사람도, 무엇보다 때마다 만났던 선생님들 영향 덕분이라는 걸. 감사한 마음이 밀려왔다. 나는 또 그런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선생이었는지, 어느 날 불쑥 나를 찾는 제자가 혹시라도 있으려는지, 반성되면서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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