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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Dec 13. 2024

초저출산 시대에 붙임


우리나라 출산율이 0.7대로 떨어졌다고 한다. 나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등등 자극적인 표어를 보며 자랐고, 2부제 3부제 수업까지 하며 초등학교에 다닌 베이비부머 중의 한 사람이다. 그때는 한 집에 대여섯 명의 형제들이 있는 게 보통이었는데, 지금은 한 명의 아이도 태어나지 않는다니, 격세지감을 느껴야 할까 걱정해야 할까.


정부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숱한 방법을 기울여 실행했지만 출산율이 높아지는 것 같진 않다. 또 그쪽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한 이론과 가설을 가지고 목소리 높이는 것을 보면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어 귀를 기울이게도 된다. 누구는 진화론적 입장에서 볼 때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고, 누구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회구성원들의 의식이 반영된 거라 하며, 또 누구는 잠시 쉬어가는 길목이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고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의 노력이 소용없다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오늘 아침 외손자의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딸이 사진 찍어 보냈다. 통지서를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두근거렸다. 입가에 환한 미소가 비어져 나왔다. 딸은 사진 아래 ‘드디어’라는 문자를 함께 써서 보냈다. ‘드디어’라는 단어에 내포된 의미를 나름대로 생각하며 딸의 그 마음이 전이되는 듯했다. 기다렸고 기대된다는 희망이 그 어휘에 숨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기다렸고 기대된다.


걱정되는 것도 많다. 그중에 가장 큰 걱정은 손자가 본격적인 경쟁사회에 발을 내딛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경쟁’이 사는 날까지 따라다닐 거라는 생각을 하면 숨이 막힌다. 거기서 아무도 놓여나지 못하는 게 우리의 냉혹한 현실이다. 그 사회 속으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가 들어가게 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기대되던 것들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러면서 숨이 막힐 듯 답답해진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재능을 펼치며 행복하게 살 수 없는 걸까. 경쟁보다 서로를 인정하고 존재의 양식으로 말이다. 이 무슨 이상적인 사고냐고 할 사람도 있을 테지만 경쟁사회에서 최고가 되려고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이, 후손을 그런 사회에 살게 하고 싶지 않아, 출산을 주저하거나 포기하는 건 아닐까. 누구라도 꿈을 펼치며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될 때는 생각이 다를 것 같다. 적어도 그런 기대만이라도 할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손자와 함께 산책하던 날이었다. 아파트 정원에는 민들레꽃이 지고 홀씨가 바람에 가만가만 흔들리고 있었다. 손을 잡고 가던 아이가 갑자기 내 손을 놓고 뛰어갔다. 그리고 홀씨 앞에 엎드려 관찰하더니 소중한 듯 두 손을 그러모아 홀씨를 감쌌다. 후, 후, 작은 입을 오므리고 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씨앗이 여기저기 퍼져서 민들레꽃이 많이 피기를 바라서란다. 그 모습이 하도 귀여워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내년 봄에는 손자의 바람처럼 민들레꽃이 노랗게 필 정원을 그려보며.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경쟁 사회가 부담스러운 건 틀림없다. 또 현재가 행복하지 않기에 미래도 행복하지 않으리라 지레짐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식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고, 그렇게 되도록 우리 모두 노력한다면 달라질지도 모른다. 살아보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여 차단하는 건 섣부르지 않을까. 우리 한 사람부터 건전한 사회, 존재의 양식으로 사는 사회를 꿈꾸는 건 어떨까.


민들레홀씨가 퍼져나가 꽃을 피우듯 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들도 번져간다면, 아니 그전에 출산을 기대하는 사회로 바뀔 수만 있다면 초저출산 문제 해법에 다가갈 수 있을까. 초저출산의 시대에 민들레홀씨를 입으로 부는 손자의 모습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걱정되는 일이 있더라도, 본격적인 경쟁사회로 내딛는 손자의 초등학교 입학이 기다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은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양식으로 형성된다. 어떤 현상이 만들어지는 것은 다수의 행동과 의식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꿈꾸는 바람직한 세상을 만드는 것도 우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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