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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연 Sep 03. 2022

인용문 단장 (8)

우리나라가 안경을 사용하게 된 것은 이조(李朝) 선조 이후부터이며 순조 중엽에 이르러서는 안경이 일반에게 어느 정도 보급되었다. (…) 옛날에는 안경을 쓰는 범절이 중요했으며, 근래 독일에서도 남과 얘기할 때는 대개 안경을 벗었다. 무릇 안경이란 것은 본래 노인이 사용하기 마련이었으며, 따라서 남의 앞에서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자기를 존경하게시리 남을 강압하는 바와 매한가지이기 때문에, 남의 앞에서는 안경을 벗는 것이 예의바른 일로 간주됐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유난스레 안경의 이 예의범절이 매우 까다로웠는데 한번은 이조 헌종 때 안질에 걸린 왕의 외숙이 안경을 쓴 채로 헌종 옆을 지나가니, 헌종이 이를 보고 곁의 신하더러 '외숙의 목에 칼이 닿지 않을꼬?' 하고 중얼거리매, 왕의 외숙이 헌종의 이 씨부림을 듣고 극도로 겁에 질려 마침내 자인(自刃)하고 말았다.


또 1891년 당시의 일본의 전권공사 오이시 마사미(大石正已)가 역시 안경을 쓴 채로 고종에게 알현했더니,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게 이를 불경이라고 항의했으나, 일본 정부가 이 항의를 묵살해버리자, 고종은 할 수 없이 그때의 통역관이었던 현영운을 애꿎게도 유죄(流罪)에 처함으로써 엉뚱한 분풀이를 했던 것이다.


- 석주선, 『한국복식사』(보신재, 1971)




최근 있었던 청와대에서의 패션 화보 촬영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것을 보자니 한심한 기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간 듯한 심정이었다. 비판하는 치들의 골자는 청와대의 소위 품격에 패션 화보가 맞지 않는다는 것인데 고리짝에나 들어갈 만한 소리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 화보가 그렇게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느낀다면, 각종 싸구려 오락 콘텐츠로 요란을 떨면서 민속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양두구육을 하는 한국민속촌의 운영 실태에 대해서는 왜 분개하지 않는가? 국위선양이라는 미명 아래 전통문화를 난도질해 돈벌이하는 특정 가수들에게는 왜 일언반구도 없는가? 굳이 이런 식으로 말해야만 자신들의 비논리를 깨달을 것인가?


주최 측이 한복의 재해석을 주제로 내건 것이 문제라며 저명한 한복 디자이너의 비판을 근거로 삼는 이들도 있던데 이 역시 설득력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디자이너의 비판이 정당한 것은 그 자신이 전통 문화를 지키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국악인이 소위 퓨전 국악에 대해 비판적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 또한 전통 문화의 과잉 퓨전 현상에 대해 아주 못마땅하게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어쨌든 전통의 창조적인 재해석은 얼마간 존중되어야 하며 이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이 부적절한 일인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이번 화보의 경우 한복을 교묘하게 왜곡하려는 기망 의사가 전연 없었다고 생각한다. 해당 화보를 보면 한복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한 복식들이 한복과는 상관없는 복식들과 함께 섞여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해당 복식들이 처음부터 전통의 덮어씌우기 목적이 아닌 현대 작품으로서 제시된 것임을 보여주며 이는 화보를 보는 누구라도 느낄 만한 것이다. 홍보 과정에서의 설명 부족이 문제였다면 문제였다고 생각된다.


화보 촬영과 같은 시점에 '괴벨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모 정치인이 정부의 청와대 관련 정책을 저주하는 글을 올리면서 해당 논란이 정치적 공방으로 확대된 감도 있는데, 사실 그가 비판한 것은 정부의 운영 관리의 미숙함에 대한 것이었지 화보 촬영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든 논란 같지도 않은 논란에 금세 꼬리를 내리는 당국의 대응도 한심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인기 없는 정부의 방어 기제 같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얼마나 자기 정책에 확신이 없으면 저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유홍준이 문화재청장을 지낼 당시 반대를 무릅쓰고 궁궐에서의 행사 진행을 소신으로 숱하게 허가시켜주었다는 일화가 대비적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유감은 추석도 다가와서 그런지 명절 문화에 대한 생각과도 맞물리면서 전통이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맘때만 되면 SNS에서는 명절 문화에 대해 맹렬하게 매도하는 행위가 유행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가 결국 SNS를 관두게 된 전조 현상의 하나였던 것만 같다. 나라고 명절이 좋기만 했으랴.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닐지도 모르는 문화가 무조건적인 '적폐'로 몰아부쳐지는 것이 나로서는 이유 모를 꺼림칙한 감정을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혐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기도 했다.


어느 사회에나 전통 폐지론자와 전통 고수론자의 갈등이 있다. 시간은 거의 언제나 폐지론자의 편이고, 그래서 어느 시점만 지나면 고수론자에서 폐지론자 쪽으로 헤게모니가 덜컹 넘어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때 전통 폐지론자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논리 속에 윤리성의 문제와 사회성의 문제가 뒤엉켜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가령 명절 문화의 헤게모니가 폐지론자 쪽으로 넘어갈 때, 그들은 자신들이 이 허례허식에 동원되는 것이 윤리적으로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를 계속해서 성토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명절 문화가 허례허식이 아니라고 믿는 가치관이 사라져 간다는 사회적 변화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전통 고수론자들이 폐지론자의 논리에 이기질 못하면서도 섭섭함을 느끼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요컨대 전통을 다루는 문제에서의 쟁점은 고수론자와 폐지론자의 논리의 우열에 있지 않다. 변화해 가는 사회에서 전통에 대한 애착의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있다. 개인적으로는 논어 이인편에 나오는 '부드럽게 간하기'의 지혜가 그 해답의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그 지혜가 땅에 처박힐 대로 처박힌 것이 오늘의 우리 사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청와대 화보에 대한 비난과 명절 문화에 대한 비난은 각각 전통 고수론자와 폐지론자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대척점에 있지만, 양쪽의 사람들이 결국 서로 엉켜서 사는 것이 사회의 기본 틀임을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류일 것이다.


위의 글은 석주선의 『한국복식사』에서 맨 끝에 실린 대목이다. 기존에 발표된 타인의 논문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대목이라고 부기하고 있어 적절한 인용인지 조심스러워진다. 안경을 쓰고 다닌 외숙에게 겁을 주어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헌종의 일화는 야사에 가까운 것일 테지만, 불과 수백 년 전까지만 해도 안경이 존재조차 하지 않던 것이었음을 알고 나면 이 일화는 전통의 무게감이라는 것이 실은 얼마나 가벼운 것인지를 생각케 해준다. 보수건 변혁이건 지나친 급진주의가 불필요한 파국을 부르기 쉬움을 다시금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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