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정연 May 03. 2023

「오감도 시제6호」와 흥덕왕

"「지비」는 「거울」, 「이런 시」, 「아침」 등과 함께 이상이 시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많은 글 중에서 그래도 시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작품이요,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시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의미의 세계로 턱걸이하지 못한 무의미한 허드레나 낙서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허술한 글들이 너무나 많다. (…) 작품적 성취도를 고려하지 않는 새로움의 날조는 실상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평론이라는 것은 대체로 보편을 내세우면서 당대를 겨냥할 때가 많다. 그리고 좋은 평론은 대체로 보편과 당대 모두를 명중하는 데 성공하는 듯하다. 위의 대목은 이상의 시에 대한 가장 박한 평가의 하나인데, 큰 틀에서는 보편타당한 비판을 지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진화되기는커녕 허세 짙은 추종자들이나 자꾸 불리는 듯한 이상 시의 신화를 바로잡아야 하겠다는 당대의 문제를 저격하며 제시된 것이다.


세부 내용을 인용할 수는 없겠지만 이와 같은 비판은 시는 언어 예술이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기반한 명쾌한 논리를 수반하고 있어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전문가의 말을 따라 뒤서가는 입장에서는 이상 시의 특징으로 흔히 얘기되는 난해함을 마주쳤을 때 지레 먹게 되는 겁을 덜어 주었다는 점에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기실 그것은 아리숭하게만 보여지는 가령 '오감도'의 열댓 편을 어떻게든 의미 있는 작품으로 만들려는 동감하기 어려운 몸짓들 사이에서 가장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해석이기도 했다.


가령 같은 저자의 다른 책에 등장하는 「오감도 시제1호」에 대한 설명은 그 시에 대한 가장 명쾌한 해석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무섭다면서 13인의 아이가 도로로 질주하는 것이 이 시의 기본 요소이다. 이 기본 요소의 부연과 부정과 반복과 부분적 변형을 통해서 이 시가 설계된 것이다. 그리고 이 부연과 부정과 반복과 부분적 변형은 어떤 사실적 충실이나 기술상의 엄밀성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도로로 질주하는 무서워하는 아이라는 기본소를 기계적 조작을 통해 확대하여 의미의 출구 없는 미로를 설계해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란 첫 진술은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란 마지막 진술에 의해서 부정되고 무효화되어 있다. 이래도 저래도 마찬가지이며 무방하다는 것이다. 뚫린 골목이라도 좋고 막힌 골목이라도 좋다는 것이다. 왜 13인인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지만 20인이 되면 셀 수가 없고 7인이 되면 시가 너무 짧아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거짓 희망을 주기 위한 함정이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이 보여주는 것의 하나는 이상의 시를 쓰는 아이디어가 그다지 복잡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무렵 개인적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오감도 시제6호」였다.


  앵무 ※ 2필(二匹)

  앵무 ※ 2필

  앵무 ※ 앵무는 포유류에 속하느니라.

  내가 2필을 아아는 것은 내가 2필을 아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물론 나는 희망할 것이니라.

  앵무  2필

  "이 소저는 신사 이상의 부인이냐" "그러타"

  나는 거기서 앵무가 노한 것을 보았느니라.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졌었겠느니라.

  앵무  2필

  앵무 ※ 2필

  물론 나는 추방당하였느니라. 추방당할 것까지도 없이 자퇴하였느니라. 나의 체구는 중축(中軸)을 상실하고 또 상당히 창랑(蹌踉)하여 그랬던지 나는 미미하게 체읍(涕泣)하였느니라.

  "저기가 저기지" "나" "나의-아-너와 나"

  "나"

  SCANDAL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너" "너구나"

  "너지" "너다" "아니다 너로구나"

  나는 함뿍 젖어서 그래서 수류(獸類)처럼 도망하였느니라. 물론 그것을 아아는 사람 혹은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러나 과연 그럴는지 그것조차 그럴는지.


아마추어의 눈길로 본 것이기는 하나 「오감도 시제6호」 역시 기호의 표기나 비정상적인 대화체의 삽입과 같은 데서 오는 처음 읽을 때의 신선함을 제외하면 그다지 매력적인 시로는 여겨지지 않았다. 특히 시 가운데 '창랑'이라는 말은 한자조차 생경해 당혹스럽게 느껴지는데 비틀거리는 모양을 가리키는 일본어 표현을 정제 없이 직역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이 시가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이 시의 내용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흥덕왕의 앵무새에 얽힌 설화를 그럴듯하게 변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다. 이 설화의 내용이 1930년대 당시에 유명한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1960년대에 씌어진 이어령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후기에 '앵무 설화를 기억하십니까?' 비슷한 문장과 함께 언급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므로 이상 당시에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참조를 위해 기록의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제42대 흥덕대왕이 보력(寶曆) 2년(826) 병오년에 즉위하고, 얼마 안되어 어떤 사람이 당에 사신으로 갔다가 앵무새 한 쌍을 가지고 왔는데, 오래지 않아 암컷이 죽었다. 홀로 남은 수컷이 애처롭게 울기를 그치지 않자, 왕은 사람을 시켜 앞에 거울을 걸게 하였다. 새가 거울 속의 그림자를 보고 짝을 얻은 것으로 생각하여 그 거울을 쪼다가 그림자임을 알고서 슬피 울다가 죽었다. 왕이 노래를 지었다고 하나, 알 수 없다. (『삼국유사』)


(원년)(826) 겨울 12월에 왕비 장화부인(章和夫人)이 죽으니, 정목왕후(定穆王后)로 추봉(追封)하였다. 왕이 왕비를 생각하며 잊지 못하고, 슬퍼하며 즐거워함이 없어서, 여러 신하들이 표문(表文)을 올려 다시 왕비를 맞아들일 것을 청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짝이 없는 한 마리 새도 짝을 잃고 슬퍼하는데, 하물며 좋은 배필을 잃은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어찌 무정하게 바로 다시 아내를 얻겠는가?"라고 하면서, 끝내 듣지 않았다. 또한 시녀를 가까이 두지 않고, 좌우에 두고 부리는 사람은 오직 환관뿐이었다. (장화부인은 성이 김씨로 소성왕의 딸이다.) (『삼국사기』)


이 두 기사의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① 흥덕왕이 즉위하던 해 겨울에 왕비인 장화부인이 죽었다. (장화부인은 소성왕의 딸이므로, 두 사람은 사촌지간이다.)

② 흥덕왕이 즉위한 직후 당에 간 사신으로부터 앵무새 한 쌍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 가운데 암컷이 일찍 죽자, 수컷이 슬프게 울기를 그치지 않았다.

③ 흥덕왕은 짝을 잃은 수컷의 앞에 거울을 걸게 할 것을 지시했고, 수컷은 거울 속의 그림자를 짝으로 착각했으나 아님을 안 뒤 울다가 죽었다.

④ 흥덕왕이 사별한 뒤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 있자 신하들이 재혼을 청했으나, 왕은 짝을 잃은 (앵무)새의 얘기를 하며 거절했다. 그는 재혼하지 않음은 물론 시녀도 가까이 하지 않았고 환관만을 부렸다.

⑤ 흥덕왕은 앵무새에 대한 노래를 지었다고 하나 자세히는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설화 속의 주인공들은 흥덕왕과 죽은 장화부인, 그리고 수컷 앵무새와 죽은 암컷 앵무새의 넷이라고 할 수 있다. 「오감도 시제6호」의 내용은 이 내용을 기반으로 배필을 잃은 흥덕왕에 감정을 이입하여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앵무 ※ 2필(二匹)

앵무 ※ 2필

앵무 ※ 앵무는 포유류에 속하느니라.

내가 2필을 아아는 것은 내가 2필을 아알지 못하는 것이니라. 물론 나는 희망할 것이니라.


이 시에서 우선 특이하게 느껴지는 것은 서류 등에서 쓰이는 참고표가 구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고표는 이 대목에서 두 번 등장하고 그 뒤로는 쓰이지 않는다. 참고표가 시에서 그다지 큰 의미를 차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시의 내용에서 '2필'이라는 개수와 '앵무는 포유류에 속하느니라'라는 명제는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그 뒤로는 앞에서 강조했으니 쓰이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보여진다.


첫 줄의 '앵무 ※ 2필'은 암컷과 수컷 앵무새를 지칭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둘째 줄에서는 '2필' 한 단어만이 쓰이고 있다. 이것을 2필이라는 숫자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그 역할은 이미 참고표가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동물의 종류를 표기한 '앵무 2필'과 표기하지 않은 '(  ) 2필'을 구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흥덕왕 설화의 상황에 대입해 본다면, '앵무 2필'이 수컷과 암컷 앵무새라면, '(  ) 2필'은 '인간 2필', 즉 흥덕왕과 장화부인(또는 이들에 감정을 이입한 이상)을 가리키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바로 이어지는 세 번째 줄이다. '앵무는 포유류에 속하느니라.' 앵무새는 포유류가 아니지만, 인간은 포유류다. 따라서 이 문장은 '2필'이어야 하는 앵무새의 상황을 자신의 상황과 동일시하는 명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줄에서의 '내가 2필을 아는 것은 내가 2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라'라는 말은 무슨 의미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이어지는 '물론'이라는 단어가 이 문장을 큰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뚫린 골목이라도 좋고 막힌 골목이라도 좋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2필을 알든 알지 못하든 중요한 것은 내가 희망한다는 것이다. 흥덕왕 설화에 대입시킨다면 그것은 상실한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해결되는 것에 대한 희망일 것이다.


앵무  2필

"이 소저는 신사 이상의 부인이냐" "그러타"

나는 거기서 앵무가 노한 것을 보았느니라.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졌었겠느니라.


두 번째 대목을 보면 서두에 '앵무 2필'만 나오고 '(  ) 2필'은 나오지 않는다. 앵무새의 심정에 인간의 심정이 이입된 첫 번째나 세 번째 대목과 달리 여기서는 앵무새와 인간의 입장이 구별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흥덕왕 설화를 고려한다면 이 대목은 수컷 앵무새에게 거울을 비춰 주었다는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줄의 내용은 앵무새 앞에 그림자를 비추게 하고 그것을 마치 암컷인 것처럼 속이는 행위를 익살맞게 표현한 문답이다. 그러나 세 번째 줄에서 사실을 알아차린 앵무새는 노하고, 암컷이 실제로 있는 것처럼 속이려고 한 인간은 이내 부끄러워한다. 얼굴이 '붉어졌다'라고 쓰지 않고 '붉어졌었겠느니라'라고 쓴 것은 이 일화의 내용이 시인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앵무  2필

앵무 ※ 2필

물론 나는 추방당하였느니라. 추방당할 것까지도 없이 자퇴하였느니라. 나의 체구는 중축(中軸)을 상실하고 또 상당히 창랑(蹌踉)하여 그랬던지 나는 미미하게 체읍(涕泣)하였느니라.


세 번째 대목에서는 다시 '앵무 2필'과 '(  ) 2필'이 모두 언급된다. '물론 나는 희망할 것이니라'에서 그랬듯이 앵무새=인간은 '물론' 추방당한다. 추방당했다는 것은 괴로운 일을 겪었을 때 오는 소외감을 흔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상은 다른 글에서도 '꿈은 나를 체포하라 한다. 현실은 나를 추방하라 한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다. '추방당할 것까지도 없이 자퇴하였느니라'라는 것은 이러한 '추방'에 타의도 있지만 자의도 없지 않음을 밝히고 있는 문장이다. 흥덕왕 설화를 참조한다면, 가령 흥덕왕이 슬픔에도 불구하고 재혼을 스스로 거부한 것도 그와 같은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축을 상실'한 체구나 '미미하게 체읍'했다는 묘사 등은 슬픔에 잠긴 모습을 그린 것이다. 시 속에서 가장 루즈한 문장이라고 느껴진다.


"저기가 저기지" "나" "나의-아-너와 나"

"나"

SCANDAL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너" "너구나"

"너지" "너다" "아니다 너로구나"

나는 함뿍 젖어서 그래서 수류(獸類)처럼 도망하였느니라. 물론 그것을 아아는 사람 혹은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러나 과연 그럴는지 그것조차 그럴는지.


마지막 대목에서의 툭툭 끊어진 듯한 말들은 이 시에서 가장 난해한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흥덕왕 설화의 주요 주제인 사별한 사람의 심정과 연관지어 고려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가령 '저기가 저기지'라는 것은 이승과 저승에 대한 인식을, '나의-아-너와 나'는 나와 우리의 개념을 혼동하는 태도를 순간적인 말들로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 'SCANDAL'을 두고 '너구나'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전적으로 스캔들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나 불명예스러운 소문 등을 뜻한다. '나'를 계속 되뇌는 것도 홀로 남은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줄의 내용은 선뜻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사람 혹은 보는 사람은 없었지만'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자신의 행동의 이면에 숨은 심리를 고백한 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문장의 내용은 설화의 내용에서 직접적으로 차용한 것은 아닌 듯하다. 흥덕왕은 아내를 잃은 이후에도 10년간 더 재위했다. 시 속에서 마지막 줄의 고백은 따라서 '미미하게 체읍'하던 시절 이후의 나날들을 시인이 상정하여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만 봐서는 남들은 알기 어렵겠지만 '미미하게 체읍'하기를 그친 이후에도 '함뿍 젖어서' '수류처럼 도망'하는 시간들은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심정을 정말로 아무도 모를는지는 또 모를 일이다.


이상과 같이 살펴본 것처럼 「오감도 시제6호」는 여러모로 흥덕왕의 앵무새에 관한 설화를 시로 승화시킨 것으로 볼 여지가 많지 않나 생각된다. 뜬금없이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은 아직까지 이와 같은 견해를 제시한 연구를 어디서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내 생각이 진지하게 믿을 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날이 올지 누가 알겠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