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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Sep 02. 2020

1회. 208초 만에 850미터 상공에서 모두를 구하다

출간 전 연재 [태도 수업]



2009년 1월 15일 뉴욕은 맑고 차가운 전형적인 한겨울 날씨였다. 비행 기록 1만 9000시간의 베테랑 체슬리 설리 설렌 버거 기장이 모는 US 에어웨이스 1549편은 승객 155명을 태우고 라과디아 공항의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뜻밖의 사고가 일어난 것은 눈 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이륙 2분 만에 상공에서 비행기의 동체가 커다란 기러기 떼와 충돌한 것이다. 그 순간 엔진 두 개에 불이 붙으면서 동시에 멈추어버렸다. 최악의 버드 스트라이크. 비행기는 글라이더처럼 공중을 활강하기 시작했다.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중


설리는 “메이데이”를 외쳤다. 관제탑에서는 라과디아 공항으로 회항하라 지시했다. 엔진이 모두 꺼져버려 설리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관제탑은 인근의 또 다른 공항을 제안했지만 설리는 거기까지 가는 것도 무리라고 생각했다. 이미 동력을 모두 잃은 비행기가 도심 한복판에 처박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설리는 비상 착수를 결심한다. 관제탑에서 “어느 활주로를 원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설리의 대답은 관제탑을 크게 당황시켰다. “우리는 허드슨강으로 간다.”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 중


우리는, 허드슨 강으로 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물 위에 내려앉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어서 차라리 바퀴 없이 몸통으로 활주로에 착륙하는 편이 나을 정도라고 한다. 좌우 날개의 균형이 조금만 맞지 않아도 어느 한쪽이 물에 먼저 닿게 되고, 그러면 물의 저항으로 인해 동체가 찢어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비행 솜씨를 발휘한 설리는 창문 하나 깨뜨리지 않은 채 무사히 비행기를 강물 위에 착수시켰다. 모든 것이 버드 스트라이크의 순간부터 불과 208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착수에 성공한 지 3분 만에 155명 모두가 밖으로 탈출해 날개 위에 올라섰고, 모든 사람이 구조되는 데 20분이 걸렸다. 설리는 섭씨 2도의 차가운 강물이 허리춤까지 차오른 기체 안으로 두 번이나 들어가, 기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언론은 이 일을 ‘허드슨강의 기적’이라 부르며 설리를 영웅으로 치켜세웠지만 정작 그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는 태도를 보였다. “영웅이라는 말은 여전히 편하지 않다. 우리는 최선을 다했고, 훈련받은 대로 행동했으며, 현명한 결정을 내렸고,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이 사건을 회고하며 집필한 책의 제목은 『가장 높은 의무』다.


실제 비행기가 허드슨 강에 떨어진 직후 구조되는 사람들의 모습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에서 위 현장을 재현한 장면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힘이 강하다. 사고의 초점이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이유’에 맞추어져 있어 애초에 내 능력 범위 내의 일인지를 계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야 하는 이유에 초점을 맞출 때는 나의 힘을 넘어 남의 힘까지 끌어오게 된다. 이른바 자력(自力)이 아닌 타력(他力)이다.

타력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족, 동료, 직원들의 얼굴에 깃든다. 나를 믿어주고, 내가 지켜야 하고, 내가 해내지 못했을 때 고통받을 사람들의 얼굴이 바로 타력이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힘이 된다. 평범한 외모에 심지어는 왜소한 체구인데도 조직을 이끌 때는 마치 큰 사람처럼 보이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의 아우라에는 타력이 깃들어 있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런 힘이 생기지 않는다.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고작 한 사람의 힘 아닌가.

진정으로 큰 힘은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힘, 다름 아닌 책임감이다.

책임감은 책임에 대한 감각이다. 책임감이라는 큰 힘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책임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지는 책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1. 보이는 책임
2. 보이지 않는 책임


일상적인 시기에는 각자가 보이는 책임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별 탈 없이 굴러간다. 하지만 보이는 책임은 일상에 적용되는 매뉴얼이고, 비상시에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역량을 넘어서 숨어 있는 잠재력까지 끌어내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는 책임에 대한 강한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보이는 책임은 다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책임에 이르러서는 나 몰라라 하는 자세다. 딱히 잘못한 것은 없기에 비난할 수는 없어도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안 되는 데다, 적당히 하려는 자세가 외려 의욕에 찬 다른 사람들의 기세까지 꺾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현명한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뚜렷한 악(惡)보다도 보이지 않는 책임만 게을리하는 약삭빠른 이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리더가 되기를 원하는가. 간절히 원한다고 해서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책임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가져야 리더가 된다. 자리가 주어지면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사람 역시 리더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보이는 책임에만 관심 있는 태도일 뿐이다. 무한히 펼쳐진 인다라망을 떠올리며 지금 내가 이 자리에서 하는 일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숙고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책임을 의식하고 그것을 이미 행동으로 옮길 때, 즉 이미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 세상은 공식적인 리더의 자리를 제공한다.


보이지 않는 책임을 수행하는 사람,
즉 이미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세상은 리더의 자리를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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