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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nction Feb 17. 2024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구례


외가가 구례다. 장인어른 고향도 같고. 인구 삼만도 안되는 지리산 기슭이란 인연 덕에 전여친(현 높으신분)에게 쉽게 들이댔더랬다. 결혼 한해 전 이모를 뵈러 간 뒤로 가본 적은 없지만 구례에서 방학마다 보낸 어린 시절의 막연하고 나른한 기억은 뼈속까지 바닷가 마초인 내게도 시골의 추억을 갖게 해주었다.


여러 경로로 추천이 뜨기도 했고, 마침 자료실에 들어온 신작이라 일종의 쾌락 독서로 시작한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마음 속 어딘가 묻혀있던 구례를 다시 만나게 해주었다. 하필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은 가족사와 겹쳐서 그런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대목도 나한텐 괜히 치부를 들춰보인 기분이 들었으니 말이다.


고시준비를 했을때나 공무원 면접을 봤을때 어머니가 늘상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 ‘너 신원조회에 걸리니 않겠냐.‘ 하도 사고치고 다녀 그런것도 있었겠지만, 그걸 빼놓고도 뜬금없는 말은 아니었었다. 이유인즉슨 사진으로만 뵀던 외종조부(작은 외할아버지)님의 좌익 경력 때문이었다. 빨치산으로 유명했던 지리산에 살던 가방끈 긴 사람이 사회주의에 발을 안담그지 않았을테고, 그로 인해 전쟁통에 어린 외삼촌만 남겨두시고 불귀의 객이 되셨던 가족사에 어머니는 짐짓 걱정이 되어 그러셨던 것이었다. 지금 보면 그리 가까운 촌수도 아닌데다 그렇게 영향을 줄 만큼 높은 지위도 아니니 그냥 노파심에서 온 기우였지만 작가님의 자전적 고백이 남의 이야기같이 들리진 않더라.


거기에 얽히고 섥힌 가정사 이야기도 그랬다. 외가 어르신들께 누가 될 수도 있어 상세히 말하긴 그렇지만, 반세대정도 나보다 앞선 작가님의 경험이 중학생때 외할아버지 상때의 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간의 중첩이 더 그렇게 만들었겠지.


글쎄다, 글재주가 좋았더라면 정작가님처럼 글을 업으로 삼고 살았겠지만, 설사 그랬다 한들 빨치산의 딸과 좌익의 외종손(종가집 손주 말고)의 무게감이나 삶의 궤적은 천지차이일거라 이런 이야기는 쓰지 못했을 터. 약간의 공감을 가지며 이전 작품을 더 읽어봐야겠단 다짐만 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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