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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주 Jul 24. 2023

7. 타자에 대한 무관심은 삶의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연구실에 와서 공부를 하면서 타자와 관계맺는 법에 대해 가장 많이 배웠다. 그리고 동시에 여전히 의문이 생기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까지 타자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어왔었는지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맺어 나갈 것인가 하는 점들에 대해서 고민해본다. 


연구실에서 책을 읽으면서 자본주의적 인간관계를 지적하는 문장들을 본 적이 있다. 에리히프롬의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 하는가』에서도 *'인간 상호관계도 마치 인간과의 관계가 아니라 사물과의 관계인 것 같다.(p111)'*고 말한다. 그런데 서로를 사물화하는 관계가 대체 어떤 관계인건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번에 발터 벤야민 세미나를 들으면서 이해해볼 수 있었다.


벤야민은 말한다. '대중은 상품의 주변에 유착'해있다고. 벤야민이 군중과 상품을 연결지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재밌었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를 향해 사물화하고 있었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사물과 군중과의 관계로부터 실마리를 유추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상품 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고, 그렇다면 상품에 유착해있는 우리는 '대중'이며 인간관계에서의 사물화는 어쩌면 사물의 속성보다도 '군중의 개념 속에서 이해해볼 수 있는 요소가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1) 도시 대중은 개인으로서 타인들의 곤경에 무관심하고, 소비자로서 상품 습득에 의존하는 부르주아적 주체에 기원을 두고 있다.

(『발터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292p, 그램 질로크, 효형출판)


2) 무감각한 태도만큼 무조건적으로 도시에 의해 규정된 심리 현상은 없다. 무감각한 태도는 사물 사이의 구별에 대한 무관심이다. 무감각한 태도는 정신적 둔함 때문에 사물 사이의 구별이 지각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물 사이의 구별의 가치와 의미가 의미 없는 것으로 경험된다는 의미이다.

(『발터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287p, 그램 질로크, 효형출판)




대중이 소비자로서 상품 습득에 의존하는 것과 타인들에게 무관심해지는 지점을 살펴보자. 우리는 자본으로 상품을 구매한다. 교환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교환을 하고 나면 그 상품은 '나의 것' 즉 나의 소유가 된다. 그리고 그 상품을 통해 편안함과 안락함을 누리는 것을 기대한다. 그러다가 상품에게서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거나 나아가 권태로움을 느끼거나 혹은 귀찮음과 같이 오히려 불편함, 불쾌감을 느끼면 곧장 버린다. 이것이 우리가 상품을 소유하면서 밟는 절차일 것이다. 내 것이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참 쉽다. 상품이 나에게 이익을 주면 취하고 불쾌감을 주면 버리면 되니 상품은 변함없이 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상품과 맺는 관계이다.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싶어 하고 통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벤야민은 상품이 교환가치만을 지니게 되는 점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대상이 가진 무수한 맥락을 거세한 채로 교환가치라는 하나의 가치만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 상품이 지닌 역사라던가 누구를 거쳐서 나왔는지, 그리고 다른 어떤 용도로 쓰일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관심을 거세한다는 것이다. 상품이 지니고 있는 맥락을 자세히 보려고 하지도 않는 태도, 바로 상품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럴 수가. 위의 인용문과 이어서 생각해보면 대상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맥락을 보지 못했던 것은 그것을 보는 일이 어렵다거나 내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라 들여다 보는 일 자체가 나에게 의미가 없는 일임을 반증하는 거였다니...


우리가 물건과 맺고 있는 이러한 관계는 상품에 유착한 군중이 타자에게 보이는 무관심과 다르지 않았다. 설레임을 느꼈다가 권태감을 느끼고 버리면 그만인 관계,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는 관계. 필요가 없어지면 버리면 그만인 관계. 타자가 가지고 있는 개성을 하나의 교환가치로 환원해버린 관계,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이 모든 관계가 진행된다는 점 말이다.


혹시 주변이 권태롭게 여겨진다면, 동일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불과하게 느껴졌다면, 내가 친구와 맺고 있는 관계에서 시간은 흐르지만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면 내가 상대방이 지닌 무수한 결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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