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로의 말들을 연습 중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울보였다.
슬퍼도 울고 억울해도 울고 화가 나도 울었다.
엄마는 남들 앞에서 우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 했지만 울보 버릇을 고치지 못해 변호사가 되어서도 종종 운다.
특히, 이혼 소송 상담을 할 때 더 그러하다.
이변: 어떤 이유로 이혼을 하려고 하시나요?
K: 가정폭력 때문에요... 몇 번은 참았는데 이제는 못살겠다 싶어서 애들이랑 친정으로 도망나왔어요.
이변: 마음 고생 많으셨겠어요
K: 애들이 절대 전학 못간다는 걸 겨우겨우 전학시켰어요. 이제 제 월급으로 살아야 되니까 학원도 한 두개만 다니게 하고… 애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엄마도 아프신데 죄송하고...
K와 같이 워킹맘인 처지에, 몇 달 전 암선고를 받으신 엄마를 두고 있는 나로서는 울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이변: 그래도 이혼을 하겠다는 결정은 맞는 결정이에요. 잘 결정하셨어요.
가족들과 함께 이 시간을 잘 이겨내시면 더 좋은 일이 있을 거에요. 저도 열심히 돕겠습니다.
K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혼 소송을 할 때 자식 이야기를 하며 운다.
나의 결정 때문에 아이가 불행해지는 건 아닌지, 이혼으로 아이가 피해를 보는 건 아닌지 다들 비슷한 걱정을 한다.
K: 주말에 아웃백에 갔는데 아이가 제일 비싼 스테이크를 고르더라구요. 너무 비싸서 못 사줬는데 마음이 아팠어요...
이변: 어머, 인터넷에 찾아보니 20만 원이 넘는 스테이크가 있네요? 이건 저도 못 사주겠어요... ㅎㅎ 이혼 때문에 못 사주는게 아니라 그냥 비싼 스테이크인걸요.
K: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랑 싸웠대요.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닌데... 엄마 아빠가 이혼한다니까 스트레스를 받는걸까요?
이변: 음..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면 사춘기에 들어갈 시기에요. 그냥 그런 시기인 것 같은데요...
일생일대의 이벤트를 겪으면서 얼마나 불안할지 이해가 되고, 나 역시 딸 앞에 서면 약자가 되는 '엄마'이기에 되도록 진심의 말의 건네려 노력한다.
나의 말이 모든 이들의 마음에 와닿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에는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위로의 말들을 연습한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K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저는 대학교와 로스쿨을 수석졸업했어요.
많은 분들이 수석의 비결이 뭐였냐고 많이 물어봤지만, 한번도 솔직하게 답하지 못했어요.
사실 수석의 비결은 제 안에 있던 '결핍'과 '간절함', '모자람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었어요.
저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빠듯한 집이었어요.
빠듯한 살림에 엄마는 항상 집에서 머리를 잘라 주셔서 나는 언제 한 번 미용실에 가서 이쁘게 머리를 잘라 보나 생각했죠. 부모님은 자동차를 사는 것도 낭비라고 생각하셔서 편하게 부모님 차를 타고 학원에 오는 친구들이 참 부럽기도 했어요. 저는 15분 이상을 걸어서 학원에 가거나 친구네 차를 얻어타야 했거든요. 또 주말에는 돈이 들지 않는 뒷 산이나 공원에 가서 시간을 보냈기에 대학은 꼭 서울로 가서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열심히 공부해서 그래도 좋은 대학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서울생활은 참 돈이 많이 들더군요.
학비에 생활비를 보내주시는 부모님 생각에 장학금을 꼭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다 보니 제가 수석졸업이었어요.
제가 학비 걱정을 안 했다면 아마 수석졸업도 못했겠죠. 때로 결핍은 이렇게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로스쿨 때는 더했어요.
대학을 마치고 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빨리 취직해서 밥벌이를 했으면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니까 일단 취직을 하고, 나중에 더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3년간 열심히 학비를 모아 로스쿨에 가려고 할 때 아버지가 암선고를 받으셨어요.
암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로스쿨을 가도 되나, 이 집에 돈 버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데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닌가, 정말 잠을 못자고 고민했어요.
결국 저는 이기적인 년이 되기로 하고 로스쿨에 갔지요.
그렇게 로스쿨에 갔는데 제가 어떻게 공부를 안할 수 있었겠어요.
배가 부르면 졸릴까 3년간 배 부르게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네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했고, 졸업할 때 보니 제가 수석졸업이더군요.
저에게 간절함과 어려움이 없었다면 아마 수석졸업을 못했겠죠. 때로 어려운 상황은 극한 상황에서도 한 발을 더 가게 만들어 주는 힘이 됩니다.
물론 결핍은 불편하고, 때론 서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제가 잘 컸으니 부모님이 밉다거나 원망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빠듯한 형편에서도 항상 최선을 다한 부모님이 존경스럽고 고맙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아이가 너무 귀하고 사랑스럽지만 제 아이에게 모든 것을 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장난감이 몇 개 없어도, 좋은 학용품을 가지지 않아도, 때론 엄마 손이 부족해도 그 속에서 아이는 성장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미안해 하지 말아요.
좋은 곳에서 외식하지 않아도, 좋은 곳을 가지 않아도, 엄마의 따뜻한 밥 한 그릇에 아이는 잘 자랄 겁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K와 아이의 행복을 기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