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e Oct 17. 2024

자식에게 미안하다는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위로의 말

- 위로의 말들을 연습 중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울보였다.

슬퍼도 울고 억울해도 울고 화가 나도 울었다.

엄마는 남들 앞에서 우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 했지만 울보 버릇을 고치지 못해 변호사가 되어서도 종종 운다.


특히, 이혼 소송 상담을 할 때 더 그러하다.


이변: 어떤 이유로 이혼을 하려고 하시나요?

K: 가정폭력 때문에요... 몇 번은 참았는데 이제는 못살겠다 싶어서 애들이랑 친정으로 도망나왔어요.


이변: 마음 고생 많으셨겠어요

K: 애들이 절대 전학 못간다는 걸 겨우겨우 전학시켰어요. 이제 제 월급으로 살아야 되니까 학원도 한 두개만 다니게 하고… 애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엄마도 아프신데 죄송하고...


K와 같이 워킹맘인 처지에, 몇 달 전 암선고를 받으신 엄마를 두고 있는 나로서는 울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이변: 그래도 이혼을 하겠다는 결정은 맞는 결정이에요. 잘 결정하셨어요. 

가족들과 함께 이 시간을 잘 이겨내시면 더 좋은 일이 있을 거에요. 저도 열심히 돕겠습니다. 



K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혼 소송을 할 때 자식 이야기를 하며 운다. 

나의 결정 때문에 아이가 불행해지는 건 아닌지, 이혼으로 아이가 피해를 보는 건 아닌지 다들 비슷한 걱정을 한다. 



K: 주말에 아웃백에 갔는데 아이가 제일 비싼 스테이크를 고르더라구요. 너무 비싸서 못 사줬는데 마음이 아팠어요... 

이변: 어머, 인터넷에 찾아보니 20만 원이 넘는 스테이크가 있네요? 이건 저도 못 사주겠어요... ㅎㅎ 이혼 때문에 못 사주는게 아니라 그냥 비싼 스테이크인걸요.


K: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랑 싸웠대요. 원래 그런 아이가 아닌데... 엄마 아빠가 이혼한다니까 스트레스를 받는걸까요? 

이변: 음..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면 사춘기에 들어갈 시기에요. 그냥 그런 시기인 것 같은데요... 



일생일대의 이벤트를 겪으면서 얼마나 불안할지 이해가 되고, 나 역시 딸 앞에 서면 약자가 되는 '엄마'이기에 되도록 진심의 말의 건네려 노력한다. 

  

나의 말이 모든 이들의 마음에 와닿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에는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위로의 말들을 연습한다. 



사진: Unsplash의Anna Kolosyuk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K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저는 대학교와 로스쿨을 수석졸업했어요.

많은 분들이 수석의 비결이 뭐였냐고 많이 물어봤지만, 한번도 솔직하게 답하지 못했어요. 


사실 수석의 비결은 제 안에 있던 '결핍'과 '간절함', '모자람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었어요. 


저희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던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빠듯한 집이었어요. 


빠듯한 살림에 엄마는 항상 집에서 머리를 잘라 주셔서 나는 언제 한 번 미용실에 가서 이쁘게 머리를 잘라 보나 생각했죠. 부모님은 자동차를 사는 것도 낭비라고 생각하셔서 편하게 부모님 차를 타고 학원에 오는 친구들이 참 부럽기도 했어요. 저는 15분 이상을 걸어서 학원에 가거나 친구네 차를 얻어타야 했거든요. 또 주말에는 돈이 들지 않는 뒷 산이나 공원에 가서 시간을 보냈기에 대학은 꼭 서울로 가서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어요.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열심히 공부해서 그래도 좋은 대학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서울생활은 참 돈이 많이 들더군요. 

학비에 생활비를 보내주시는 부모님 생각에 장학금을 꼭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다 보니 제가 수석졸업이었어요. 

제가 학비 걱정을 안 했다면 아마 수석졸업도 못했겠죠. 때로 결핍은 이렇게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로스쿨 때는 더했어요. 

대학을 마치고 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빨리 취직해서 밥벌이를 했으면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아니까 일단 취직을 하고, 나중에 더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지요. 


그런데 3년간 열심히 학비를 모아 로스쿨에 가려고 할 때 아버지가 암선고를 받으셨어요. 

암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지금 직장을 그만두고 로스쿨을 가도 되나, 이 집에 돈 버는 사람이 나 밖에 없는데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닌가, 정말 잠을 못자고 고민했어요. 

결국 저는 이기적인 년이 되기로 하고 로스쿨에 갔지요. 


그렇게 로스쿨에 갔는데 제가 어떻게 공부를 안할 수 있었겠어요. 

배가 부르면 졸릴까 3년간 배 부르게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네요.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했고, 졸업할 때 보니 제가 수석졸업이더군요. 

저에게 간절함과 어려움이 없었다면 아마 수석졸업을 못했겠죠. 때로 어려운 상황은 극한 상황에서도 한 발을 더 가게 만들어 주는 힘이 됩니다. 


물론 결핍은 불편하고, 때론 서럽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덕분에 제가 잘 컸으니 부모님이 밉다거나 원망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빠듯한 형편에서도 항상 최선을 다한 부모님이 존경스럽고 고맙습니다.


그래서 저도 제 아이가 너무 귀하고 사랑스럽지만 제 아이에게 모든 것을 해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장난감이 몇 개 없어도, 좋은 학용품을 가지지 않아도, 때론 엄마 손이 부족해도 그 속에서 아이는 성장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미안해 하지 말아요. 

좋은 곳에서 외식하지 않아도, 좋은 곳을 가지 않아도, 엄마의 따뜻한 밥 한 그릇에 아이는 잘 자랄 겁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K와 아이의 행복을 기도할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전세 사기를 당한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위로의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