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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가을 Jul 04. 2022

월요일 지하철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

월요일의 지하철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 사람이 많아 앉을자리는커녕 손잡이를 잡고 서있을 공간도 없는데 덜컹덜컹, 치익지하철이 출발하고 멈추고 문이 열리는 소리만 들린다. 사람들은 저마다 책을 보거나 창밖을 보거나 휴대폰을 보며  주를 맞는 자신만의 의식을 치른다.


오늘도 사람들의 고요한 물결 속에 서서 회사로 실려 가는 중이었다. 같은 칸 안에 유난히 색이 밝은 할아버지가 계셨다. 노약자석에 앉아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와 즐겁게 통화를 했다. 그리고 동작역. 치이익 문이 열리고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칸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할머니의 허리가 채 칸 안으로 들어오기도 전이었다. 할아버지는 벌떡 일어나더니 오랜만에 만난 누님이라도 된다는 듯 할머님을 손수 모시고 와 노약자석에 앉혀드리는 것이 아닌가. 아, 월요일 아침부터 마음속에 따뜻한 것이 퍼져 나가려던 참이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우선 스몰토크를 시도했다. 자신의 나이는 벌써 일흔이고, 지금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당신은 아침 일찍부터 어딜 가는 길인지 궁금하다. 등 사소하고 부드러운 질문으로 시작했다. 상대가 대화에 응하자 할아버지는 타짜 못지않은 훌륭한 실력으로 대화 판을 ‘아담과 이브’로 빠르게 바꿔 버렸다. 할머니에게 태초의 인간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었고, 질문으로 시작한 대화는 금세 일장연설이 됐다. 지하철 한 칸 전체를 강의실로 만들어 버리는 큰 소리로 어떤 종교에 관한 이론을 나열했다. 결국 할머니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한다”며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고, 할아버지는 금세 두리번거리며 다음 타깃 물색을 시작했다.


그렇다. 인생은 이런 거다. 공짜 점심은 없다. 선심과 선의도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에 버금갈 만큼 어렵다. 안 주고 안 받고, 쉽게 상상하지 않고, 나 역시 상대에게 기대를 심어주지 않는 일상. 서른한 살 어른은 오늘도 데워지려다 미적지근하게 식어버린 마음으로 출근을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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