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
새해 증후군. 알람을 맞춰 놓은 건지 연초마다 기민하게 알아채고 튀어나온다. 괜한 걱정부터 불안, 피로감을 동반한 냉소적인 성격을 기본 옵션으로 장착하게 된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에 스스로 지치는 건 물론 주위 사람들도 꽤 피곤할 것 같다. 어제는 뱀을 피해 도망치는 꿈, 오늘은 현관문이 고장 나는 꿈을 연달아 꾼 덕에 불안감은 2단계나 상향 조정됐다.
수년간 쌓아온 경험과 데이터를 분석해 본 결과, 원인은 생각보다 명확했다. 해가 바뀌는 큰 이벤트에도, 내 일상은 어제 그제와 다를 게 없다. ‘작년보다 잘 해내야지’하는 압박감은 나를 짓누르고, 장대하게 세워놓은 계획은 내가 내딛는 발걸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 그리고 눈앞에 올라야 하는 태산이 그 원인이다.
이 반복되는 증상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미 알고 있다. 그냥 하면 된다. 계속 나아가서 목표하는 것을 이루고, 장애물을 깨부수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면 된다.
하지만 직장 생활만으로도 진이 빠진 나는 퇴근 후 침대에 털썩 누워 버린다. 천장을 보고 누워있다가 곧 파도처럼 밀려오는 생각에 잠식된다.
계속 나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올까?
계속되는 불안감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끊임없이 밀려오는 생각들은 다 필요한 걸까?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나면 온전히 행복만 느끼게 될까?
만약 그렇다면 성취와 행복은 동일한 것일까?
이 질문들에 명확한 답을 해줄 수 있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사실 명확한 정답이라는 건 없을지도 모른다. 평소에 하루 종일 끼고 사는 자극적인 숏폼은 내 질문에 대답을 해주지 않고 빠르게 지나가 버리고, 직장에서는 그저 무언가를 끊임없이 쏟아내기에 바쁘다. 친구들을 앞에 두고 “인생이 뭘까?”, ‘나는 누구일까?” 하는 질문은 민망하기 그지없다.
만약 내 질문에 소크라테스와 임마누엘 칸트, 공자, 니체, 애덤 스미스가 대답을 해준다면 어떨까? 철학자들은 내가 원하는 바를 뾰족하게 캐치해 답을 내어준다. 끙끙 앓고 있던 물음에 대한 명확한 조언이다.
“성취와 행복을 둘 다 누릴 수는 없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답한다. “행복과 성취를 구별하는 기준은 괴로움이다. 성취를 이루면서 동시에 압박감에 시달리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부담에 짓눌릴 수 있다. 그럼에도 계속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제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아야 한다.”
성취는 행복과 같은 의미가 아니며 하고자 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살아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삶의 목표를 '행복'이 아닌 '성취'로 삼았던 고대 그리스인처럼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대로 좀 더 폭넓은 현실주의와 야망과 인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겠다. 누워서 숏폼을 보는 행복감보다 목표를 차근차근 이뤄가는 과정이 더 짜릿할 테니.
“그럼 우리는 괴로움이 반복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거네요?”
알베르 카뮈는 우리 삶을 시지프 신화에 빗대어 말한다. 참고로 신화에서 시지프는 형벌로 인해산 정상에서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산 정상에 밀어 올리는 일을 영원히 반복하는 인물이다.
카뮈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카뮈는 삶이 견딜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는 갖가지 이유를 그 자신과 우리에게 일깨우고자 글을 썼다고 한다. 관계, 자연, 해변, 휴가, 축구, 여름밤 등 삶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허무감으로부터 우리를 가장 잘 보호해 주는 재료들을 활용해서 말이다.
“불안감, 두려움이 계속되면 어떻게 해요?”
고대 그리스 철학은 “지혜로운 사람은 아주 별것 아닌 시간일지라도 평온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기민하게 알아챈다.”며 “지혜로운 사람은 적어도 인생의 반은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알기에 늘 광기에 대비하며, 그들이 원하는 고상한 방식과 원하는 방식대로 돌아가지 않기 일쑤인 망령된 현실의 끊임없는 충돌을 바라보며 웃을 줄 안다.”고 덧붙였다.
앞선 철학자들의 조언과도 결이 같다. 인생의 반은 비이성적이며 광기가 넘실대는 곳이며, 세상이 만사가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들은 무엇이든 전부 쉽고 다 잘되리라는 기대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행복은 영원하지 않고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니 만약 그 순간을 만나면 최선을 다해 알아채 누리라는 것이다.
2500년을 넘나드는 주요 철학자와 그들의 사상을 모두 담아 놓은 저서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은 '배움을 다시 삶의 한가운데로'라는 알랭 드 보통의 모토 아래 삶의 본질적인 물음에 대해 다뤘다.
책의 주제는 자기, 불안, 관계, 사회 네 가지로 나뉜다. 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일상적인 문장으로 풀어 놓은 것도 큰 장점 중 하나다. 침실 옆 테이블에 두었다가 생각이 깊어 지는 날이면 종종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기에도 좋다. 마치 마음 영양제 같은 역할을 한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탐색하고 해석하는 것은 철학자가 된다는 의미의 본질이다. 철학자들의 안내에 따라 나의 삶과 미래, 감정, 관계에 대해 사유하며 철학자가 되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