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시작한 첫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아침에 눈을 떠 하루 일과를 시작한 히라야마의 모습에서 지독한 일상에 갇힌 현대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어떤 자극도 없는 적막함 속에서 몸을 일으켜 정해진 순서대로 사소한 행위들을 해치우는 그의 몸짓이 고독하고 조금은 괴롭게 다가왔다.
이불을 개고 양치와 세수를 하고, 수염을 다듬고, 화분에 물을 준다. 다시 옷을 갈아입고, 동전과 키를 챙겨 나가기까지 내 눈은 감정선을 읽을 수 없는 그의 동선을 바삐 따라다녔다.
으레 인생에 던져지는 뾰족하고 둔탁한 것들을 견디다 무뎌진 어른의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삶의 무게를 간신히 견디고 있는 그런. 하지만 곧 이 예상이 편협한 사고라는 걸 깨닫는다.
문을 열고 나온 그는 하늘을 보고 옅은 미소 짓는다. 자판기에서 뽑아낸 음료수를 마시며 음미하고, 무슨 노래를 들을까 카세트테이프를 고를 때도 신중하다. 곧이어 잡동사니가 가득 쌓인 차 안에서는 올드팝이 울려 퍼진다.
그는 인생의 다양한 것에 순수하게 웃어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늘과 산들거리는 나무 잎사귀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빛, 어린아이의 손인사, 작은 식물, 하이볼 한 잔, 책 한 권에도 주변 공기를 은은하게 물들이는 그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노년에 접어든 주인공 히라야마는 공중화장실 청소 일을 한다. 과묵한 그는 동료의 지각에도 불평은커녕 화장실을 닦고 광내는 일에 만 몰두한다.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닌 종교 의식에 가까워 보인다.
그의 일상은 일하는 날, 그리고 쉬는 날 두 종류로 나눠진다. 그리곤 양쪽에 맞춰진 같은 패턴대로 일상을 지속했다. 안전하고 단단하게 구축된 세계였다.
일하는 날에는 새벽같이 눈을 떠 일련의 준비 과정을 거치고 일터로 간다. 점심시간에는 공원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슴 팍에 지니고 있는 필름 카메라로 그 일렁이는 나뭇잎의 반짝임을 담는다.
일이 끝나곤 목욕탕에 갔다가 자전거를 끌고 역사 음식점에 간다. 하이볼을 한 잔 마시고 집에 와서는 안경을 끼고 나무 관련 책들을 보다 잠이 든다.
또 쉬는 날에는 빨래방에 가 유니폼을 세탁하고, 점심시간마다 촬영했던 사진을 현상하고, 헌책방에 가 100엔짜리 책을 구입한다. 이어 단골집 이자카야에 가 술을 마시곤 자전거로 집에 돌아온다.
놀랍도록 단순하고 반복되는 일상인데, 왜 이 사람의 삶은 이토록 충만할까.
이유를 찾기 위해 히라야마의 일상을 두 눈으로 바삐 쫓아다녔고, 그 힌트를 그가 휴일마다 찾는 이자카야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여주인이 불러주는 구슬픈 듯 애절한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고 조용히 감상에 젖은 그의 모습에서.
반복되는 일상은 같은 모양이지만 그는 매일 그 속에서 다채로운 색상의 예술을 하고 있었다.
사전적 의미로의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의 활동’이다. 그는 매일 하늘 아래 반짝거리는 잎사귀를 촬영한다. 그리고 매주 현상한 사진을 기간 별로 정리해 차곡차곡 모아둔다. 그가 기쁨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반복되는 것에 무뎌지지 않고 눈을 뜨고 마음을 열고 아름다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20대쯤 되어 보이는 웬 여자애가 볼에 치기 어린 입맞춤을 하고 도망친 날에도 그의 꿈에는 여자 대신 무성한 나뭇잎이 나왔을 뿐이다.
이 영화의 차분한 여운은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오늘은 출근길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평소 버스를 놓칠세라 바삐 발걸음을 옮기던 길목이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의 모습에서 시선을 조금만 위로 올리자 잔잔하게 흘러가는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엔 히라야마가 보던 잎사귀 사이의 반짝임이 있었다. 괜히 미소가 배시시 흘러나왔다.
그렇게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의 단조롭지만 충만한 삶을 통해 일상에서 예술을 그리는 방법을 알려준다. 잔잔하지만 여운이 짙고, 고독하지만 기쁨이 묻어있다.
고요함 속에 쌓인 반짝이는 선물 받은 기분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 한껏 차서 가득한 기분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7월 3일 극장으로 향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