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여행에서는 이 아이가 나를 변화로 인도해 주리라
여행에서 돌아와서 일주일 후 복직을 했다. 3개월의 출산휴가, 1년의 육아휴직, 1년의 무급휴직까지 마치고 2년 4월 만이다.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쓴 거, 아이를 돌보기 위해 무급일지언정 1년 더 휴직을 할 수 있었다는 거, 그러고도 돌아갈 직장이 있다는 것이 직업전선에 있는 모든 출산여성이 누리는 권리가 아닌 현실을 생각한다면, 난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에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직장이라고 하더라도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에서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다. 업무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고, 특히나 세상 돌아가는 정보나 정책을 발 빠르게 파악하고 대응해야 하는 직업 성격 때문에 세상과의 단절이 주는 두려움이 더 컸다. 아이는 혼자 크는 것이 아니다. 갓난쟁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의 시간에 세상에 시선을 돌릴 여유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온통 아이의 소리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니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나는 아이 속에만 갇혀 있었다.
한 달간 아이와 세상에 없을 경험을 하고 돌아오지 않았다면 자신이 생기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긴 터널을 아이를 안고 혼자 지나왔고, 터널이 끝나더라도 제대로 세상과 마주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회사에서 퇴근하면 다시 육아로 출근해야 하는 일상, 아이가 잠들면 비로소 육퇴를 하지만, 산더미 같이 밀려있는 집안일과 내일의 준비까지 마쳐야 오늘이 끝난다는 것. 쓰러져 잠들고, 6시면 일어나 배고프다고 흔드는 아이의 재촉에 부리나케 일어나 2인분의 준비를 혼자 다하고 지각 걱정을 하며 다시 출근하는 생활, 그리고 이것이 무한반복.
아이 키우는 엄마라는 게 나만의 특수한 조건은 아니지만, 주말과 밤낮이 없는 근무특성과 양육해야 하는 아이가 아주 어린 싱글맘이라는 교집합이 흔한 경우는 아니다. 어떤 날은 아이에게 미안해서, 어떤 날은 아이 때문에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없는 내 조건이 분통 터져서, 소리 죽여 얼마나 많은 밤을 울게 될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모든 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내가 우려하고 두려워했던 모든 일들을 복직한 뒤 나는 실제로 겪었다. 이 사회가 아직 그랬고 내가 아무리 거부하려고 발버둥 쳐봐도 세상 안으로 들어간 이상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다. 기저귀 찬 27개월 아들과의 배낭여행이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고 용기를 주었지만,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 행동하고 더 강해지기로 했다.
그것이 살아있는 한 여행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복직을 하고, 그로부터 일 년 반 뒤 연휴와 연차를 모아 우리는 베트남 북부로 열흘간의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지중해 주변국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하하는 더 이상 엄마가 짜주는 스케줄에 수동적으로 결합하는 0.5인이 아니다. <WHY시리즈>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편을 사주었더니 몇 번씩 다시 읽었고, 어디서 이런 책을 봤는지 <보물찾기 시리즈>도 읽고 싶다고 하길래 또 사주었더니 터키 그리스 이집트 이탈리아 편을 여행순서대로 차례로 읽으며, 가보고 싶은 곳들에 표시를 해 두었다.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는 20권을 이미 정독하기를 몇 번이다.
"엄마, 터키에서는 마시는 차가 발달을 했잖아요. 차를 계속 따라주거든요? 그만 마시고 싶을 때는 숟가락을 컵 위에 올려두세요."
첫 배낭여행 이후 5년이 흘러 지금 하하는 7년 3개월째를 살고 있다. 이제 앞으로의 여행에서는 이 아이가 나를 변화로 인도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