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estas Aug 03. 2023

멜하바, 이스탄불!

42일간의 배낭여행 1 : 이스탄불

"숙소에 들어오니까 울고 싶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모르겠어요. 그냥 저는 좁은 방에 있으면 울고 싶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12시간 비행 후 공항버스 Havaist-12를 타고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려 악사라이역에 도착해 다시 트램으로 갈아타 숙소에 겨우 도착했을 때 하하가 한 말이다. 나는 어쩐지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것 같았다. 문닫힌 좁은 방이 주는 우울감, 을 우울이라는 단어도 그 의미도 모를 7살 아이가 표현했다. 내 이해는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이 아이에게 나는 최대한 늦게, 아주아주 늦게, 그 단어를 이해시키고 싶다.


방이 사이트에서 봤던 이미지 보다 조금 좁기는 했다. 어차피 에어비앤비 호스텔이었고, 하하를 고려해서 나는 방도 방이지만 공용공간을 중요하게 봤는데, 공용공간의 접근성도 좀 불편해 보였다. 42일간의 장기여행이라, 내 유일한 동행인 아이가 무엇에 어떻게 느끼는지가 중요하다. 전체적으로 숙소 후보 리스트를 다시 점검하겠다고 맘먹었다. 그래도 신시가지에서는 가장 핫한 슐탄아흐멕 광장 쪽 숙소다. 톱카프 궁전까지도 도보이동이 가능한 7만 원대 숙소. 지금 튀르키예는 리라 가치가 폭락하면서 6개월이 길다 하고 외국인 입장료를 많게는 두 배씩 올리고 있었다.


튀르키예의 첫인상은 그다지 낯선 느낌은 아니었다. 슐탄아흐멕 광장쪽에 숙소를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에서 첫 숙소는 보통 가장 핫한 지역에 잡는 편이다. 여행객들이 모이는 곳,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머릿속에 여행지 지도가 거미줄을 치며 그려지고 안전하게 새 지역에 적응하게 된다. 인천공항에서 10시 25분 출발했고 숙소도착 시간이 현지시각으로 7시 30분, 한국시간으로 새벽 1시가 넘었다. 비행기에서 한 번을 안 자고 놀다가 도착 전 한 시간 정도 자더니 공항버스에서도 졸았고 그 이후부터는 조금 힘들어 보이던 아이였다. 눈이 충혈되는 것 같아서 저녁은 가져간 누룽지로 먹이고 9시부터 재웠다.


마일리지 항공권은 진작에 끊어 놓고, 하하한테는 여행 국가 서적들을 사주고선, 정작 나는 일에 쫓겨 얼마나 여행준비를 안 했냐면, 튀르키예를 2주 일정으로 잡았으면서 뮤지엄 패스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고, 7살 아이와 여행을 하면서 6시간 시차를 사전에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이스탄불의 아침은 어떤 모습일지, 첫날밤 내 머릿속은 혼자 분주했다.  




새벽 3시, 9시부터 잠들었던 하하가 눈을 떴고 더 자려고 하지 않았다. 한국시간으로 9시니 그럴만하다. 하하가 태어나고 만 7년을 넘기는 동안, 수면리듬에 대해선 과할 만큼 철저히 신경썼다. 나야 세 시간이나 잤을까 싶지만, 하하에게는 너무 당연한 생체리듬이기에 할 수 없이 일어나 옥상과 공용공간을 어슬렁거리다 새벽 거리로 나갔다. 거리를 가득 메웠던 여행객들이 각자의 숙소로 들어간 한적한 거리는 어제 보지 못한 이스탄불 신시가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어제 저녁 혼돈의 거리에서 단지 이국적으로만 보였던 모스크가, 그제서야 웅장하게 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슐탄아흐멕 광장, 튀르키예에서 딱 하루가 주어진다면 있어야 할 곳이 바로 이곳이다.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를 걸어서 갈 수 있는 곳, 튀르키예를 찾는 세계의 여행자들이 출발지로 모이는 곳. 조금씩 시가지의 구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날이 밝자마자 이른 조식을 먹고,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를 연이어 갔다. 개방시간에 맞춰 갔지만 사람들은 금세 불어났다. 블루모스크를 먼저 보고 아야소피아를 갔으니 망정이지, 순서를 바꿨으면 블루모스크가 밋밋할 뻔했다. 아야소피아의 화려한 성화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역사 때문이리라. 대립의 역사일 수도 공존의 역사일 수도 있다. 처음에 성당으로 지어졌다가 오스만제국에 정복당한 후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된 곳이니까. 성화에 회칠이 칠해졌다가 벗겨지고, 돔 천장의 성모상이 흰 천으로 가려지는 등 건립 이래 지금도 계속해서 아야소피아는 역사의 물결을 타고 변화하며 다채롭게 빛나고 있었다.


이달 초 터키 최고법원은 1935년 이래 박물관으로 쓰인 아야소피아의 지위를 다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되돌리는 판결을 내렸다. 국부로 추앙받는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가 아야 소피아 내부에서 무슬림의 예배를 금지한 세속주의 정책을 뒤엎은 것이다. 지난 24일 아야소피아 안팎에서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모스크 전환 이후 첫 예배가 열렸다. 무슬림은 열광했으나, 세계 최고의 건축유산이 지닌 다문화 공존과 관용의 역사는 상처를 입게 됐다.                         

- 2020년 7월 한겨레 기사 중 발췌

블루모스크 내부 천장 돔
아야소피아 내부 전경. 천장 돔에 흰 천이 성화를 가리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중해 여행 일주일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