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estas Jan 20. 2024

두 번 가세요, 아크로폴리스

42일간의 배낭여행 10. 아테네

(이 지중해 여행기에 방문한 도시들의 유적에 대한 역사적 설명은 거의 생략입니다. 이미 많은 정보들이 인터넷상에 있고, 많은 여행기가 또 그런 정보들을 들춰가며 복사해 와 쓰였기 때문에 비슷비슷합니다. 이것은 여행기 발간을 위한 목적이나 현지 정보제공이 아니라 여행경험과 감정의 기록에 더 가까운 글입니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나올 때 하하가 작은 돌멩이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는데, 마주쳐 지나가던 관리인에게 제지당했다. 이곳의 돌멩이 하나도 반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 그 돌은 입장하기 전부터 하하가 손에 쥐고 있던 거라 해프닝이었지만, 아테네 시민들이 자국의 유적을 어떤 마음으로 지키는지 알기에 충분했다. 그리스 다음 여행국가였던 이집트 유적지 일부에서 받은 인상과 대조적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테네에 머무는 내내, 지나쳐온 그리스 섬들과는 또 다르게, 시민들에게서 자국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을 읽을수 있었다. 어디서든 그리스 국기가 위풍당당 휘날리고 있었다.


아테네에서는 통합권을 끊었다. 어린이 할인이 없이 1인 60유로라 이득일지 손해일지 반신반의했지만, 아크로폴리스를 두 번 입장했으니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원래는 통합권으로 유적지 한 곳 당 한 번밖에 입장 못하고, 아테네에서 가장 중요한 볼거리이자 가장 입장료가 비싼 유적지는 아크로폴리스다. 여력이 된다면 가이드의 도움을 받는 것이 확실히 좋았을 거다. 그러나 우리가 42일간 방문할 튀르키예-그리스-이집트-이탈리아 4개국 모두 입장료가 현지 여행비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들이라 전체경비의 부담이 컸고, 어느 한두 곳만 가이드를 고용하는 선별도 불가능했다. 첫 번째 아크로폴리스를 다녀와서는, 사람도 많았고 어리둥절하여서 뭔가 꼼꼼히 보지 못하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복사해 간 지식들을 실물과 맞춰보는 그런 수준에 머무른 듯한. 아 파르테논 신전!, 기둥간격이 정말 균일하게 보이나?, 이게 바로 여섯 소녀상이구나, 이건 이오니아 장식 이건 도리아 양식 이건 코린토스 양식... 압도되어 정신없이 둘러보다 숙소에 돌아오고 나니,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보고 와서 자료들을 찾아 읽으니 더 선명해져 꼭 다시 보고 싶은 것들도 있었다. 작정을 하고 다음날 다시 갔다. 입구의 직원은 이미 여기서 사용한 통합권임을 확인했지만 나의 간절한 눈빛을 읽고는 "Last!" 하고 당부하고는 기분 좋게 들여보내 주었다.


디오니소스 극장, 헤로데스 아티구스 극장을 다시 보고, 아크로폴리스의 관문부터 전체를 다시 꼼꼼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춤춘다는 표현을 좋아하는데, 좀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첫날의 거대한 돌덩이들이 두 번째 날에는 신화로 춤추고 있었다.


아크로폴리스는 그 안에서도 멋지지만, 밖에서 볼 때도 멋지다. 리카베투스 언덕에서 바라본 아크로폴리스, 필로파포스 언덕에서 바라본 아크로폴리스,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에서 본 아크로폴리스, 그리고 신타그마 광장에서 아크로폴리스로 향하는 길에서 골목을 돌자 눈앞에 나타나던 아크로폴리스 조차도 숨이 멎게 멋졌다. 그렇게 보고도 하하와 나는 아테네의 마지막 밤에 다시 조명 켜진 아크로폴리스를 보러 가자고 약속을 했다.

 



아테네 마지막날 숙소가 고민이었다. 다음날 아침 7시 비행기라 5시까지는 공항에 가야 하는데, 새벽 3시부터 준비해 4시에 출발하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공항 라운지 4시간과 공항노숙이 어떨까 싶었다. 하하에게 노숙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괜찮아요. 전태일도 경찰서 노숙을 한 적이 있어요, 술주정뱅이 아빠 때문에."

<Why?> 책에서 읽었나 보다.  

"근데 노숙한 거 친구들에게 얘기해도 돼요?”

아이에게 너무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주는 것은 아닐까? 여러 고민을 하다 신타그마 광장 근처 도미토리를 잡았다. 실은 노숙보다도 오전 11시 체크아웃을 하고 밤까지 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이에게 무리라 생각됐기 때문이다. 37~38도의 강렬한 태양이 내게는 한편 에너지였는데, 아이에게는 아무래도 컨디션 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아테네 대성당,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하드리아누스의 개선문,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 소크라테스의 감옥, 필로파포스 기념비가 있는 언덕,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 아고라와 도서관까지 둘러보며 꽉 채운 4일을 아테네에서 알차게 보내고, 아침 7시 비행기로 카이로로 출발했다. 하하는 <Why?> 국가 편 외에도 <만화로 보는 그리스 신화> 전권을 여러 번 읽고 여행에 간 터였다.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되었고 내 지식을 넘어서는 부분도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하하는 전권을 다시 한번 읽었고, 이후 당근거래로 필요한 주인에게 양도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기가 아테네로구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