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은 아침부터 출근하듯 반지하 B101을 찾아온다.
제이는 민의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는다.
주인을 하루종일 기다린 강아지 마냥.
하지만 반가운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바로 문을 여는 법이 없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여는 날이면
오히려 민이 제이를 타박한다.
내가 신호를 보내기 전에 문을 열면 어떡하냐고
혹여나 모르는 사람이거나 나쁜 사람이면 어떡하냐고.
제이의 엄마라는 사람을 포함해
반지하 B101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늘 과격했다.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잡아먹을 듯
마구 눌러대는 벨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려댄다.
그럴 때마다 어린 제이는 귀를 막은 채
이불을 덮어쓰고 있곤 했다.
그렇기에 울려대는 B101 벨소리와
쾅쾅쾅 울려대는 문소리는
마치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전조 같다.
그러니 이 소리는 도망가라는 소리다.
살고 싶다면 도망가!
민은 반지하 B101 문 옆 임시로 붙여둔 자그마한
싸구련 벨을 누르거나 혹은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큰 소리가 끊이지 않는 집에서
조용하길 원하는 제이의 마음을 민은 알고 있다.
민은 제이집 문 앞에서 전화를 한다.
혁이 그랬던 거처럼.
"제이! 나 집 앞."
제이는 민이 전화를 하기도 전에
그가 왔다는 사실을 안다.
마치 자신의 모습이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다.
제이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웃겨
'풉' 하고 혼자 웃는다.
하지만 제이는 자신의 뺨을 두 손으로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두세 번 두드리고는
화장실 세면대 앞 낡은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오늘 같이 유독 부어 버린 날이면
민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다.
그래서 거울을 한번 더 보느라
문 여는 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늦어진다.
문을 여니 오렌지빛 민이 서있다.
민은 종이가방 하나를 제이에게 내밀었다.
청바지에 흰색 티, 체크무늬 남방을 대충 걸쳐 입었어도
제이의 눈에 민은 예뻤다.
민 : " 배달 왔습니다."
경쾌한 민의 목소리와 민의 뒤로 들어오는 햇살 때문인지
민의 반짝이는 모습에 잠시 멍했던 제이는
민이 가져온 종이 가방을 내려보았다.
제이는 민이 내민 것이 무엇인지 안다.
민의 어머니가 해주신 반찬일 테다.
민은 매번 반찬 받기를 망설이는 제이를 대신해
성큼성큼 들어와 냉장고에
반찬들을 정리해서 넣기까지 한다.
그런 민을 가만히 보고 있던 제이는 말했다.
제이 : "미안해."
민은 이 반찬은 깻잎 장아찌고
이 반찬은 어묵볶음 자신이 가지고 온
반찬들을 설명하며 냉장고에 넣는다.
그러면서 제이의 미안하다는 말에
도통 뭐가 미안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로 대답한다.
민 : 응 ~뭐가?
제이는 사실 너를 놓지 못하는 건
나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하지만 민은 제이를 부드럽게 쓰윽 보더니
무슨 생각인지 아주 잠깐 굳어졌다.
분명 제이가 울다 잠든걸 눈치챈 모양이다.
하지만 묻지 않는다. 재촉도 하지 않는다.
민 : " 응, 연기 연습은 나에게 하지 마. 정말 발연기였어."
다만 민은 이렇게 말한다.
제이는 그런 민이 고맙다.
구질구질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니...
가만가만 민을 보던 제이는 민에게 묻는다.
제이 : " 왜 내가 너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민 : " 제이가 나 밖에 없을 거란 생각하지 않아."
제이 : " 그럼?"
민 : " 단지......"
민의 귀가 붉게 달아올랐다.
제이 : " 단지...?"
잠깐의 침묵 후 민은 제이를 쳐다보지 못하고
반찬을 다 정리한 후 빈 종이가방을 만지작 거리며
말을 한다.
민 : " 단지 내가 너밖에 없어."
제이는 가장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너밖에 없는 이유와
네가 나 밖에 없는 이미 벌어진
말도 안 되는 가능성에 대해.
민의 귓불이 발갛다.
그런 민의 귓불이 따뜻한 사과 맛이
날 것 같다고 제이는 생각했다.
그리고 제이는 맛이 날 것 같은
민의 귓불을 보며 자신의 아랫입술을
질근거리는 것으로 그 충동을 참고 있다.
그렇게 민과 제이는 그 누구도
사랑이란 단어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민의 귓불이 사랑을 말하고 있다.
제이는 그만 눈물을 뚝뚝 흘린다.
민의 귓불 때문에.
따뜻한 사과맛이 날 것 같은 그 귓불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