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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rewriter Dec 22. 2020

2020년 8월 20일

살찌지 않는 마음

 엄마는 5월 말에 아프기 시작했고, 아빠는 8월 초에 아프기 시작했다. 하루 벌고 하루 버티는 삶은 금방 무너졌다. 둘은 일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자연히 수입도 끊어졌다. 당장 9월부터 생활비가 없다. 없이 사는 것처럼 지긋지긋한 건 없다. 나는 그것을 잘 안다. 고등학교 때 밀린 급식비가 150만 원이 넘었다. 거의 3년 치다. 지금이야 무상급식이라 사람들이 굶지 않지만, 그땐 참 급식비도 가계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좋은 담임선생님을 만나게 되어서 급식비를 내라고 혼나진 않았다. 아무튼 고달팠다.


 급식비만 부담이 되었던 건 아니다. 진짜 부담이 되었던 것은 ‘수학여행 경비’다. 아직도 기억한다. 49만 몇 천 원이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수학여행으로 4박 5일 중국을 다녀왔다. 우리 집은 당장에 그 돈을 구할 수 없었다. 엄마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나는 한참 위축이 되어서 꿍해 있었다. 엄마는 동네사람에게 돈을 꿔 왔다. 4만 9천 원. 나는 그것을 교무실에서 알았다. 선생님은 4만 9천원이 입금되었다면서, 연신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왜 미안해야 하는 것이 선생님인지 알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담임 선생님이었다면, 위축된 제자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49,000원과 490,000의 차이는 0 하나 차인데, 0,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결국 엄마는 동네 곳곳을 쏘다니면서 이 집 저 집 돈을 구했다. 그래서 나는 겨우 수학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중국을 다녀온 것 같은데 지금은 거기에서 뭘 했는지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는 중국에서 뭘 했을까. 거기 있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느낌만 남아 있다. 그게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나는 그렇게라도 다녀왔지만, 2살 어린 내 동생은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빈 교실에 남아서 자율학습을 해야 했다.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건가’, ‘왜 우리 집은 이 모양일까’ 하는 질문은 교실에 홀로 남겨진 동생의 몫이었겠지, 하고 짐작해본다. 그래서 ‘돈’ 얘기만 나오면 참 예민했다. 불편했다. 말을 돌리고 싶었다. 


 그저 잠자코 앉아 옛날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정도로는 살고 있지만, 부모를 부양할 만큼의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게 야속했다. 생활안정자금 대출에 관한 것들을 알아보았다. 햇살론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웹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것저것 찾으면서 한숨을 푹푹 쉬다가, 자연히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그렇게 어려우면 왜 물불 가리냐’
 ‘너는 왜 막일이라도 하지 않는 거냐’

 그 질문에 답하기 어려웠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불볕더위를 참으면서까지 공사현장으로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태양에 익은 철근을 만질 자신이 나는 없었다. 나보다 약하고 가냘픈 엄마, 아빠는 그 짓을 수십 년 했다. 점점 소진되어 가는 몸을 보면서 나는 덜컥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아니, 난 절박하지 않는 것이다. 나밖에 모르는 놈이기 때문이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누군가를 쉽게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한 나의 오판이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이 가난하지 않으면 됐지’

 이 말이 참 원망스러웠다. 내 마음은 충분히 가득 차 있다. 차고 넘친다. 할 수 있다, 나는 잘 될 거다, 나는 언젠가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거다. 이런 다짐을 하루에도 몇 번을 삼킨다.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세상을 바꿀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좋은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근데, 근데! 그게 어쨌다는 건데! 그렇게 시집이나 철학서를 가슴팍에 끌어안고 다니면 무슨 소용이냐 이거다. 내 마음은 살찌지 않았다. 결국 이런 지긋지긋한 생활 앞에서 나는 더 가난해졌고, 나의 부모와, 나와, 이 세상과, 사람들을 미워했다. 그리고 배가 고팠다. 헛배나 만졌다. 내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 앞에선 유구무언이다. 나는 내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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