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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rewriter Dec 24. 2020

편의점 도시락에 대한 단상

2017년 겨울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게 익숙한 나는 편의점 도시락을 자주 먹는다. 도시락은 라면보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라면은 스프를 넣고, 끓는 물을 붓고, 면이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취향에 맞게 물을 조절하는 ‘세심함’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라면이 참 만만한 음식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라면보다 요리과정이 단순한 편의점 도시락을 찾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처럼 손이 짧은 사람에게 라면은 끓여 먹기 귀찮은 음식이 되었다. 이젠 라면마저 내겐 귀찮았다. 언제나 엄마가 해준 밥, 식당에서 차려준 밥만을 고수한 내게 편의점 도시락은 때 아닌 반가운 음식이 됐다. 얼추 밥맛을 흉내 내면서도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하게 해주기 때문에 일석이조다. 할 일은 딱히 없는데 그냥 바쁜 대학생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음식, 도시락. 나처럼 아무것도 해먹을 줄 모르는 사람을 위로해주는 도시락. 전자레인지에 2분이면 김을 뿜으며 속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도시락. 어떤 청춘이 도시락을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이런 생각은 오래지 못했다. 도시락은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고, 배고픔을 더 키웠다. 허겁지겁 방구석이나 편의점에서 한 끼 식사를 게걸스럽게 해치우는 동안 누구 하나 내게 말을 걸지 않아 좋았지만 또 한편으로 외로움을 삼켜야 했다. 도시락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뱃속은 자극적인 도시락 맛을 기억했고 더 많은 밥을 원했다. 이 상황을 나만 겪는 건 아니다. 가난한 취준생의 끼니가 그랬다. 취준생 A는 하루 식비를 2000원으로 제한했다. 그는 아침을 굶고, 점심은 컵라면, 저녁은 배를 채우는 커피믹스로 하루를 버틴다. 계속 배가 고픈데도 A의 체중은 1년 새 10kg이 넘게 불어났다(시사IN의 기사를 보면서). 배고픔과 비만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젊은이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사회가 그렇다는 걸 나도 몸소 느끼고 있다. 도시락을 먹은 배는 뭔가 헛헛했고 뱃살은 늘어지고 있으니까.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편의점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함을 느꼈다. 이런 서러움, 배고픔을 일시에 잠재우는 인스턴트의 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반듯한 얼굴의 주방장옷을 입은 백종원을 마주한다. 비닐을 벗기고, 뚜껑을 열고 전자레인지에 2분을 돌리면 어렵지 않게 밥을 먹을 수 있다. 난 백종원이 그려진 포스터를 구겨 휴지통에 버렸다. 젓가락으로 한 번, 또 한 번 밥을 떴다. 도시락은 까만 바닥을 보였다. 기름에 반짝이는 도시락의 까만 바닥을 보면서 고개 숙이며 걸었던 어두운 골목이 생각났다. 그 거리에 젓가락으로 미쳐 건져 올리지 못한 찬밥처럼 나는 걷고 있었다. 까만 앞길, 불투명한 미래가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더욱 흐려지고 있었다. 밀려오는 찬바람에 고개를 숙이며 겨우 버티고 있는 앙상한 내가, 그런 내가 살이 찌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루를 버티는 힘이 과연 밥심에서인지 알량한 자존심에서인지 분간이 안 가는 오늘 하루, 난 뭔가 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도시락을 비우고도 춥고 배고픈 저녁, 나는 집으로 간다.    

 

p.s : 구겨진 백종원의 얼굴은 아직도 웃고 있다. 그렇게 세상이 자기를 짓이겨 놓더라도 미소를 잃지 않는 주방장이 무섭다. 미시마 유키오의 말대로 우리는 살갗으로 된 가면을 쓰고 있는 게 분명하다.

     

2017년의 첫눈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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