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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끽 Aug 22. 2021

부모님 MBTI 를 했다.

이혼했으면 이미 수십번을 했을, 엄마아빠는 도대체 어떤 성격 유형일까?

20210815 집에 다녀와서, 다시 회사가 내 일상을 점령하기 전에 집에 다녀온 감정을 기록한다.




엄마아빠와 함께 있으면 정신적 에너지를 상당히 많이 쓴다. 

마치 통역 알바를 했을 때처럼 온 신경을 엄마와 아빠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다. 

또 싸움이 나지는 않을까… 아빠가 한마디 툭 하면, ‘아, 저 얘기는 엄마가 싫어할 텐데...’ 이 생각을 하는 동시에 엄마가 0.1초 만에 화가 나서 홱 쏘아붙인다. ‘아 엄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심한데요…’라는 생각이 들면 아빠의 얼굴은 어김없이 구겨져 있다.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내가 끼어들 타이밍인지 아닌지를 정확하게 알고 적당히 끊고, 적당히 말 돌려야 하는 게 내 일이다. 이 고도의 눈치 생활 10년 차 이지만 아직도 너무너무 어렵다.

10대 때는 파도가 더 거칠었고, 나도 중심을 세우기 더 어려웠고, 20살 너머서부터는 집을 나와 있었으니, 내가 엄마아빠와 활발한 소통을 하기 시작한 건 겨우 몇 년 안 된다. 그것도 일주일에 한두 번 전화로 각각 통화하며 안부를 묻고, 일 년에 3~4번쯤 내려와서 하루 이틀 겪는 게 다니까. 굳이 일수로 따지자면, 1년에 4번 x 2일 x 10년 = 80일 정도의 수준이다. 내 인생에서 고작 80일. 엄마아빠의 통역 혹은 중재자를 하고 있다. 나 스스로 맡은 역할이랄까. 딸딸 아들의 둘째 딸로 태어나면서 집에서 그 어떤 기대도 받지 않아 아무런 역할이 없었다. 아, 10살 이전까지는 마냥 귀여운 ‘이쁜이’라는 이름은 있었다. 그래도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맏딸’로 강요받는 언니나, ‘아들’로 강요받는 동생의 역할보다는 수백, 수 천배 가볍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이런 새로운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다.




평소에 (말 섞지 않으니) 싸울 일도 없는 엄마아빠 사이가, 내가 집에 들렀기 때문에 싸우는 것은 막고 싶으니까. 그리고 서로 그토록 이해되지 않는 두 분에게, 조금이라도 자신을 풀어서 설명하면 조금은 이해되지 않을까 했다.

그토록 이해받고 싶고, 또 그토록 외로우면서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가 안 되는 그런 엄마아빠의 관계를 보면서 나는 자연스레 대화 방식, 타고난 성격 차이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했다.

벼르고 벼르던 엄마아빠의 MBTI 검사.

두 분 다 귀찮은 건 질색에다 빨리빨리를 외치는 분들이라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문항들을 소리 내 읽고 두 분은 말로 답했다. 나는 엄마의 답을, 하마씨는 아빠의 답을 휴대폰으로 기록하며 항목에 답해갔다.

중간에 위기도 많았다. 뭐 이리 오래 하냐며 자리를 뜬 아빠나, 아빠가 얘기하는 답에 콧방귀 뀌는 엄마나, 서로 말싸움으로 이어지기 전에 바로바로 대화를 끊어 빠르게 테스트를 진행해나갔다. 항목을 이해시키랴(이게 번역투라 헷갈리는 질문이 많다), 대답의 정도를 구별하랴, 엄마아빠 말리랴 일촉즉발.

1시간 같은 20분이 지났다.

두구두구두구!




결과는,

나와 같이 인생 즐기는 ESFP가 나올 줄 예상했던 엄마는, INFP 열성적인 중재자가 나왔고, 보수의 끝판왕 아빠는 역시 예상을 뛰어넘지 않고 ISTJ,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가 나왔다. 결과를 읽어드리자, 두 분은 앞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집중력으로 내 말에 귀를 기울이셨다. 엄마아빠가 동시에 내 얘기를 이토록 집중해서 듣는 건 아마 처음이지 않았을까? 평소 뭐든 잘 믿지 않는 엄마아빠인데, 이번엔 맞장구를 치며, 하나하나에 고개를 끄덕이고 신나서 얘기했다. 엄마아빠가 공통적으로 이렇게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처음이라 나는 좀 놀랬다. 아까 테스트할 때는 빨리 끝내라며 엄청 투덜거리셨는데. ㅋㅋ 읽어드린 성격 특성의 80%가 본인과 맞는다면서, 엄마아빠는 자기 얘기를 신나게 또 하셨다. 역시 본인 이야기, 심리테스트가 즐거운 건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D




의외였던 부분도 많았다.

‘종종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정당화시켜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에서 별로 남 말 신경 안 쓸 것 같은 호방함의 대명사인 엄마는 ‘매우 맞음’을 선택했고, 늘 뭔가에 꿍해 있는 아빠는 ‘아니오’를 선택했다.


‘재미있는 책이나 비디오 게임이 종종 사교모임보다 더 낫습니다.’라는 항목에서도.

늘 주변에 사람이 많은 엄마, 한 유머 하는 엄마는 어떤 모임에서든 늘 환영받는 사람인데 여기에서 Yes를 외치셨다. 그리고 평소에 늘 혼자 TV로 시간을 때우고, 어찌 보면 모임에서 그닥 환영하는 캐릭터는 아닌 아빠는 사교모임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다. 와우…! 이건 정말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늘 활발해 보이고 인기 많은 엄마는 늘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기 때문에, 그런 모임이 어찌 보면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가 아니었을까? 평소에 남 얘기는 무심하게 흘려서 가끔 남에게 불쾌를 주기도 하는 아빠는 그렇게 거칠 게 없기 때문에 모임이 좋은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정말 아이러니다.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이 고픈 시기가 되면 모임이 더 낫고, 그런 모임이 많아지면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니까.




아빠의 ISTJ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는 한국인 중에 제일 많은 25%, 보수적인 성향으로 특별히 유명한 사람은 없었고 정치인이 몇 있었다. 아빠는 이게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딱히 유명인이 없는 게 당연하다고 하셨는데, 아빠의 보수성을 여기서 확실하게 글로 만나게 되니, 조금은 이해가 되었고, 막연히 답답한 게 아니라 성격의 일종으로, 다양한 부분 중에 하나로 조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엄마의 INFP (열성적인 중재자)는 아이유부터, 유명한 연예인들이 끝없이 나왔다. 엄마는 예술가였다. 어렸을 때 문학소녀였다고 했는데 생활고로 지금 여기까지 거칠게 흘러올 수 밖에 없으셨던 거다. 맞다. 엄마는 속은 참 여린 분인데 겉이 너무 거칠다 보니 나조차도 가끔 나오는 그 거침에 당황스러워 한걸음 물러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겉바속촉이 아니라 겉빠속촉이랄까. 그래도 제일 힘든 건 본이이겠지… 아무튼 우리 엄마 예술가 기질을 지금이라도 펼쳐드리게 하고 싶다. 엄마 말대로 지금은 거칠 게 없고, 언제까지 지금 건강이 유지될지 모르니까. (올해 초 녹내장 진단을 받고 눈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 개선이 없는 병인 녹내장은 진행 상황을 늦추는 거 밖에 방법이 없다는데, 이 일로 굉장한 충격을 받으셨다. 그리고 인생의 유한함도)



진짜다. 그렇다. 인생은 유한해.

엄마아빠를 이렇게 알게 되니 좋다. 부모님의 MBTI를 알게 되니, 대화가 풍부해지는 건 물론, 엄마아빠가 아닌, 그냥 한 명의 인간이 보인다. 그래, 그들도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일 뿐. 부모님 MBIT 과정은 힘들었지만 의외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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