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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끽 Sep 01. 2021

여름 끝물

여름을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여름과일을 조금이라도 더 즐기고 싶어 지난주 망원시장에서 참외와 복숭아를 샀다.


한 달 전만 해도 참외가 제일 앞 줄이었고, 그 참외가 들어가기 시작할 때 즈음 복숭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요즘의 과일가게에는 포도와 사과가 주인공.

참외 파는 곳은 거의 없고, 복숭아는 그래도 있다. 가격은 한창때보다 훨씬 비싸지만.


그래도 여름을 잡고 싶었다.


평소 같으면 완전 탱탱한 과육에 껍질째 먹는 나이지만, 이건 사놓고도 며칠을 지났으니 껍질이 금세 주글주글 주름이 갔다.


껍질을 깎고, 반듯하게 접시에 잘라

한껏 부푼 기대와 함께 한 입 했는데


아아... 한창때의 그 맛이 아니다.


물은 풍부하지만 어딘가 부족 한 맛. 참외는 좀 더 상했는지 끝에서는 웬 이상한 쓴맛도 났다.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냉장고 깊숙이 다시 넣어두었다. 언제 손이 갈까?


여름을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지금  순간도 계속 흘러가겠지.


20대 초반엔 별생각 없던 호주 워홀이,

20대 후반에는 그렇게 가고 싶다가도

30이 넘은 지금은 다시 생각이 없어졌다.


뭔가를 하고 싶은 때도, 사실 그 시점을 지나면 흐릿해지기도 하고,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고 얘기하기도 애매하기도 하다.


어떤 분의 피드에서 신문 사설의 #철든다 라는 표현이 계절(철)을 안다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 걸 봤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이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건

대충 이런 느낌일까.


지금 하고 싶은 게 나중에는 다시 별생각 없는 것처럼 될 수도 있다. 20대의 호주 워홀이 그랬듯이. 그리고 후회를 하게 되겠지.

지금 인생을 더 다채롭게 살고 싶어서 퇴사하고 1년간 이것저것을 도전해보고자 한다. 한 달 전에 먹은 마음이 벌써부터 옅어짐을 느낀다. 사실 매년 느껴왔던 감정.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러 이 시간을 다시 후회하게 될까?


지금을 만끽해야겠다고 곱씹어 본다.

생각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또 여름처럼 너무 아쉽게 보내기는 싫으니까.


아무튼,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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